北 금융관료들의 訪美가 주목받는 이유

▲ 기광호 재무성 대외금융국장

북한의 금융담당 관료들이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해 국제 금융시스템 배우기에 나서 비상한 주목을 끌고 있다.

기광호 재무성 대외금융국장을 단장으로 한 6명의 북측 금융실무회의 대표단은 16일(현지시각) 전미외교정책협의회(NCAFP)와 코리아소사이어티가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 미국의 금융 전문가들을 만난 데 이어 17일에도 월가 금융기관 관계자를 만났다.

도널드 그레그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회 의장은 세미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북한 대표단에 ‘왜 여기에 왔는지’를 묻자 북측 관계자가 ‘어떻게 해야 국제금융체제에 접근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면서 “특히 세계은행 같은 국제금융기구에 들어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인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북한 대표단의 이 같은 행보는 북핵 6자회담 진전과 함께, 미국이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가 검토되고 있는 데 따른 국제금융체제로의 편입을 위한 발빠른 행보로 보인다. 실제 국제금융체제 편입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확인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1987년 KAL기 폭파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포함된 북한은 금융문제와 관련, 국제사회로부터 여러 제약을 받아왔다. 미국 정부로부터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면 국제금융기관법, 대외원조법, 대적성국교역법 등에 의해 제재를 받게 된다.

국제금융기관법은 테러지원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등에 차관제공이나 지원을 요청해 이들 기관이 자금을 집행하려할 경우 미국측 집행이사가 이에 대해 의무적으로 반대하게 되어 있다. 대외원조법은 수출입은행 신용대출을 금지하고 있고 대적성국교역법은 이들 국가와 교역 및 금융거래를 금지한다.

때문에 북한은 북핵 6자회담 등에서 미국에 테러지원국 삭제를 줄곧 요구해왔고, 지난 ‘10.3 합의’에서는 북한 영변 핵시설 불능화와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삭제를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입각해 병렬적으로 연계시켰다.

오죽했으면 김정일이 지난 2000년 8월 방북한 남측 언론사 사장단에 “테러지원국이라는 고깔만 벗겨주면 그냥 (미국과) 수교합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베트남, 동유럽 등 일부 사회주의 나라 대부분이 국제금융기구의 지원을 받아 세계경제에 편입될 수 있었다. 국제금융기구의 직간접적인 북한 개입은 북한의 경제적 신뢰도를 제고할 수 있고, 민간기업의 프로젝트 및 사업 참여, 국제사회의 원조 유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다고 해서 당장 북한이 국제금융기구로부터 돈을 빌리거나 정상적인 국제 금융망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세계은행이나 IMF 등에 가입하기 위해선 시장친화적인 경제개혁을 추진해야 가능하다.

지난 남북정상회담에서도 확인됐듯이 김정일 정권은 개혁개방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경제재건을 위해 일정 정도의 개혁개방은 불가피하다. 김정일이 관심을 보인 베트남 모델도 결국, 개혁개방 없이는 경제재건을 위한 토대 마련이 불가능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 경제 전문가인 미국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마커스 놀란드 연구원도 14일 “북한이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에 해제돼도 국제 무역시장에 자동 진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테러지원국 해제에 따른 완전한 경제적 혜택을 누리려면 광범위하고 실질적인 개혁개방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일로선 정치체제의 변화는 최소화 하면서 중국, 베트남과 같이 경제분야에 제한적인 개혁조치를 시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체제유지에 위협이 된다면 언제든지 원위치 할 것이기 때문에 북한의 이같은 국제금융체제로의 편입 노력이 효과를 낼수 있을지는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한편, 19~20일에는 북한의 요청에 따라 뉴욕에서 미북 금융실무회담이 열린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의 국제금융체제 접근에 영향을 미쳐온 국제 금융계의 공인된 관행과 문제들을 북한 측에 숙지시키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의 초점은 미북간의 전반적인 금융관계 정상화에 모아지고 있다. 북핵 협상의 진전에 맞춰 금융분야에서도 북한이 과거 불법활동을 청산하고, 정당한 국제 금융계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북한의 불법 금융활동과 달러화 위조의 근절이다. 따라서 북한이 달러화 위폐를 얼마나 발행해 어떤 경로로 유통시켰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폐기하고 재발을 막을 수 있는지가 핵심 의제가 될 전망이다.

아울러 미국이 북한을 본격적인 국제금융체제로 끌어들이는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지도 관전 포인트이다. 북한이 일단 국제금융망으로 들어오게 되면 북한의 본격적인 시장체제로의 변화는 그만큼 쉬워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번 북한대표단의 방미가 매우 주목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