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는 ‘오렌지 민주주의자’…김정일이 부럽나?

노무현 대통령의 김정일에 대한 평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노대통령은 11일 기자 간담회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국정 구석구석을 소상하게 꿰뚫고 있었고, 체제에 대한 분명한 소신과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좋다 나쁘다 같은 의사 표현이 분명했다”면서, “과연 진짜 권력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과민한 것일까? 권력과 돈, 이데올로기를 한손에 움켜쥐고 북한 주민의 생사를 좌우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절대 권력자의 모습에 대한 ‘부러움’이 미묘하고 은근하게 배어 나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실, 그런 마음이 생길 만도 하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뜻을 몰라주고, 여론은 쉼 없이 비판해대고, 임기 말이 되자, ‘백년 정당’의 동지들마저 대통령의 등에 칼을 꽂았다. 그들이 얼마나 야속했겠는가?

생각해보면, 법이 정한 제한된 권한만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나라의 진로를 개척해 나가야 하는 민주국가의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외롭고 고달픈 자리다. 우리 사회는 특히, 성과에 인색하고 오류에 냉정하다. 그러니, 반대와 비판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충성과 찬양만 존재하는 사회에서 수령독재국가에 대한 소신과 선군통치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을 갖고 국정 구석구석을 소상하게 챙기며 일하는(사실은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해버리는) 김정일이 부러울 만도 할 것이다.

김정일에게 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대통령에 대한 우려가 앞선다. 김정일에 대한 노대통령의 평가 내용에 대통령 자신의 정확하지 않은 정치관과 애매한 신념, 부족한 자신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김정일에 대한 노대통령의 평가는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평가를 빠트린 채, 지엽적이고 부차적인 평가에 그치고 있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국민의 이익과 나라의 발전을 실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김정일에 대한 평가의 시작은 그가 북한 주민의 이익과 북한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따져보는 것이다. ‘구석구석을 소상히 꿰뚫고 있었다’는 식의 업무 스타일 평가나 ‘소신도 있고 자신감도 있었다’는 식의 ‘개인적 기질과 정신자세’ 평가는 그 다음 문제다.

물론, 기자회견이 김정일에 대한 본질적 평가를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자리였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김정일을 의식해서 의도적으로 ‘절제’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늘 ‘솔직함’을 자랑하며 솔직함 때문에 국민의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일도 마다 않던 노대통령인 아닌가. 유독 김정일에 대한 본질적 평가에 인색한 것이 혹시, 대통령의 불확실한 정치관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둘째, 노대통령은 김정일의 소신과 자신감, 치밀함 속에 담긴 ‘성격’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눈에 비친 김정일의 소신과 자신감, 그리고 치밀한 일솜씨는 주민의 이익과 국가의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개인의 권력 유지를 위해 주민의 생명과 자유를 박탈하고, 국가와 사회를 파탄시키는 데서 발휘되는 정신 자세와 업무 스타일이다. 대통령이 만약,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이며 반국가적인 김정일의 정신 자세와 업무 스타일의 속성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 칭찬 비슷한 뉘앙스로 “진짜 권력자답다”고 평하기 쑥스러웠을 것이다.

셋째,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노대통령의 자신감이 부족해 보인다. 대통령은 “이번에 가서 느낀 것은 ‘만만치 않은 나라다. 여간 해서 쓰러지지도 굴복하지도 않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고난의 행군 시대는 지나간 것으로 보이고, 변화가 늦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말도 했다.

독재체제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주민의 이해와 요구에 반하는 체제라는 점이다. 그런 체제는 주민과의 대립과 갈등을 피할 수 없고, 그 대립이 팽창 폭발하는 순간, 붕괴하고 만다. 이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자 법칙이다. 대통령은 김정일의 당당하고 자신 있는 언행에 주눅이 들어 이와 같은 역사의 진리를 순간적으로 망각한 듯 하다.

또, 북한의 수령독재체제는 90년대 이후 붕괴의 길로 접어들었다. 오늘날 북한은 속이 새까맣게 썩은 ‘밤’과 같다. 딱딱한 껍질 때문에 썩어버린 속이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외부의 지원이 없다면, 단 한 순간도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체제의 생명력을 잃었다. 대통령은 아리랑 공연에 압도되어 북한 사회가 직면한 현실을 깜빡 잊은 듯하다.

노대통령에게 민주주의 신념 안 보인다

만약 우리 대통령이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어떠했을까?

북한 사회의 발전전망과 한반도의 진로에 대한 뚜렷한 비전에서 비롯된 자신감을 가진 대통령이었다면, 김정일을 만나고 와서 주눅이 들거나 자신감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김정일 독재는 더 이상 북한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의 진정한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확신이 굳어졌을 것이다.

노대통령은 북한이 총체적 국민역량이 상당하기 때문에 발전전략만 잘 채택하면 빠른 속도의 발전이 가능한 나라라는 평도 덧붙였다. 모처럼 정확하게 지적했다. 문제는 올바른 발전전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현재까지는 민주화와 시장경제 이외에는 검증된 전략이 없다.

우리의 당면 과제는 김정일 독재를 종식하고 북한의 민주화와 시장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종합적인 설계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 민주화 세력과 남한 정부,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민주정치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지 않으며, 북한을 민주화할 자신감이 없는 정치 지도자는 이와 같은 민족적 과제를 주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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