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차관보 “체어맨 김정일”

올초만 해도 거칠기만 했던 북미 상호간 수사(修辭)가 갈수록 유화적이고 ’상호존중’의 표현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제4차 6자회담의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27일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6자회담 전체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면서 김정일(金正日) 위원장을 ’체어맨 김정일’로 불렀다. 그동안 나왔던 ’미스터(Mr.)’라는 표현과는 다른 호칭이다.

체어맨이라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대외 공식직함(위원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의장’이라는 뜻이 가미돼있다. 따라서 서방세계에서 흔히 연장자를 호칭하거나 존중의 의미로 말하는 ’미스터’에 비해 김정일 위원장의 공식직함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는 것이 현지 외교 소식통들의 해석이다.

특히 체어맨은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식하고 있다는 미국의 방침과도 맥을 닿아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13개월만에 가까스로 재개된 6자회담의 배경에는 미국이 북한의 최고수뇌인 김정일 위원장을 ’미스터’라는 호칭으로 배려한 것도 한 요인으로 거론된다.

북한측에서 ’미스터’를 ’선생’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는 후문도 있고보면, 이번에 나온 ’체어맨’은 북한측을 더욱 ’생각해준’ 것이라고 현지 소식통은 전했다.

이 소식통은 “사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호칭이나 표현도 관심대상에 포함돼있다”면서 “체어맨이라는 호칭은 가급적 협상의 모멘텀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의지가 담겨있다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호칭은 그 만큼 북미관계의 흐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난 1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의회 인준청문회에서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규정한 것이 상황악화의 시발점이었다. 북한은 이 발언을 사과하지 않으면 6자회담에 나올 수 없다고 강력 반발했다.

이후 3월말 한.중.일 순방에 나선 라이스 장관이 북한을 ’주권국가’로 지칭, 다소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부시 대통령이 4월29일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을 ’위험한 사람’ 또는 ’폭군’, ’허풍쟁이’로 불러 상호 비방전은 가열됐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다음 날 부시 대통령을 ’불망나니’나 ’도덕적 미숙아에 인간 추물’, ’세계의 독재자’로 비난했고, 노동신문 등도 ’특등 전쟁 미치광이’, ’히틀러 2세’ 등 원색적 표현까지 동원했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5월9일 CNN과의 회견에서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한다는 발언을 재확인하기도 했지만 사흘후 CNN과의 인터뷰에서는 또다시 북한을 ’무서운 정권’이나 ’북미 기본합의 파기자’로 비판했다. 북한도 뒤질세라 라이스 장관을 ’무식쟁이’나 ’거짓말만 일삼는 철면피한 여자’라고 맞받았다.

평양방송은 아예 라이스 장관을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바닷가 암캐’, ’암탉’ 이라고 ’성적 조롱’까지 퍼부었다.

이런 험악한 분위기는 부시 대통령의 ’미스터’ 발언으로 급반전된다. 지난 달 10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폭군’ 대신 ’미스터 김정일’로 불렀다.

이어 김정일 위원장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만나 얘기하는 도중 부시 대통령에 대해 “각하라고 할까요”라며 ’각하’라는 극존칭까지 언급했다. 어찌보면 본질과 거리가 있는 ’수사’에 민감해야 하는 것은 그 만큼 북미관계가 미묘한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는 게 현지 외교소식통들의 분석이다./베이징=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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