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핵실험> 현역전문인력 3천명 추산

북한의 핵관련 현역 전문인력은 3천명 정도이며 그 가운데 핵무기 생산관련 핵심인력은 200명 정도일 것이라고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남북협력팀장이 추산했다.

그는 지난 15일 발간된 정책보고서에서 북한이 그동안 양성한 핵관련 전문인력 5∼6천여명중에 현재도 활동하는 인력을 이같이 추산하고 북한에서 핵물리학 연구의 선두기관으로는 역시 북한의 양대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을 꼽았다.

1955년 김일성대학 물리학부에 핵물리 강좌가 개설됐고, 1956년에는 과학원 수학물리연구소에 핵물리실험실이 설치됐다.

이어 1973년 김일성대학 물리학부에 핵물리학과가, 화학부에 방사화학과가 개설됐고 김책공대에는 핵재료학과, 핵전자공학과, 원자로학과, 물리공학과, 응용수학과의 5개 학과를 가진 핵물리공학부가 출범했다.

1980년대 중반에 김일성대의 두 학과는 원자력학부로 통합됐고, 응용분야를 담당하던 김책공대는 응용수학과와 물리공학과를 기초학부로 이전시키고 핵전자공학과와 응용분야는 모두 영변에 설립된 물리대학으로 이전했다.

영변지역 근로자들의 자녀교육을 위해 1980년 설립된 물리학원을 토대로 1980년대 말에 세워진 물리대학은 핵재료, 핵전자, 원자로 등 3개학부에 10개의 학과를 두고 있다.

이춘근 팀장은 “물리대학은 영변지역의 대규모 설비를 활용한 실무교육을 강조하고 마지막 학기는 대부분을 현장실습으로 진행한다”며 “이 대학은 북한군 소속으로 상세한 편제는 비밀이어서 다른 지역 학생들은 이 대학의 존재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이러한 전문인력을 총괄 지휘해 핵개발을 주도하는 핵심 인물은 서상국(71)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 강좌장(학과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 교수는 1966년 28세에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로 구 소련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김일성대 교수로 복귀한 뒤 북한의 핵개발을 주도해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8년 11월30일 당시 60회 생일을 맞은 서 강좌장에게 이러한 공로를 평가해 환갑상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서 교수가 “이국에서” 태어나 광복 후 북한에서 고급중학교와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녔다면서 “그는 지난 30여년간 후대교육 사업과 과학연구 사업을 벌이면서 ‘양자역학’, ‘소립자이론’ 등 40여 편의 저서와 100여 건의 가치있는 소논문을 집필했으며 8명의 박사와 20여 명의 학사(석사)를 키워냈다”고 소개했었다.

서 교수의 공식직함은 김일성대 강좌장이지만 국방위원회의 극비 위원으로 핵실험을 포함해 북한의 핵관련 정책을 총괄적으로 입안하고 추진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강의는 거의 하지 않고 영변 핵시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러시아 지역을 홀로 여행하면서 과거 소련 유학 시절의 인맥을 활용해 핵관련 시설이나 부품을 북한으로 반입하는 역할도 수행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걸맞게 그는 ‘특별대우’를 받고 있으며 그가 사는 아파트는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철저히 경호하고 있고,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프랑스 등 서방국가에 가서 치료를 받고 오는 정도라고 한다.

서 교수는 소련 유학시절 수재로 소문이 나 소련측의 귀화 종용을 받을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은 그를 본국으로 소환한 뒤 ‘혁명화’ 차원에서 지방에 내려보내기도 했으나 핵개발을 위해 다시 소환한 것으로 전해졌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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