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아바이들, 여성존중 하기요”

80년대 평양의 신혼부부 모습 (사진:연합)

북한에도 지역적 특성이 있다. 크게 봐서 위쪽의 ‘함경도적’인 것과 아래쪽 ‘평안도적’인 것으로 구분이 된다. 그것은 다시 북쪽의 대도시인 ‘함흥적인’ 것과 평안도의 대도시인 ‘평양적인’ 것으로 나뉜다.

함흥적인 것과 평양적인 것의 대표적 특징은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양쪽에서 보이는 여성관의 차이다.

즉 평양 쪽에서는 저자바구니(장바구니)를 아내 대신 들거나 기저귀를 빠는 것과 같은 가사 일을 꺼림 없이 거드는 신세대 남성들을 ‘문명인’ 혹은 ‘현대인’으로 보는 풍토가 압도적인 반면, 함흥 쪽에서는 ‘줏대 없는 남자’로 폄훼하는 문화가 암암리에 존재한다.

평안도 남자, 함경도 여자가 이상적?

함흥인과 평양인의 여성관의 차이는 양쪽의 혼수문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평양에서는 총각이 가구를 준비하고 처녀가 부엌세간을 갖추는 풍습이 일반적 관례로 되어 있는 반면, 함흥 쪽은 여성이 살림살이 일체를 준비하고 남성은 팬티바람으로 장가가면 된다고 하는 속설이 80년대 중반까지 흔하게 있었다.

“평안도 남성은 함경도 여자와 살면 이상적이다”는 혼담설도 평양사람들의 화제에 자주 오르내리곤 했다. 이는 얼핏 보면 살림을 알차게 하고 음식솜씨도 훌륭한 ‘함경도 여성에 대한 예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함경도 남성에 비해 평안도 남성들이 비교적 무난하다는 의미도 담고 있는 것이다.

평안도 출신으로 함경도 남성을 남편으로 맞아 결혼생활을 해본 일부 중년 여성들 중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북쪽 남자와 혼담이 있는 여자는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내가 양쪽 여성관의 차이를 직접 느끼기 전의 일이었고, 실제로 함경도 여성들이 당하고 있는 가부장적 풍토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였을 때는 평시 상상해오던 것 이상으로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

여학생, 남학생 겸상 안하는 황당한 풍경

1995년 겨울의 일이다. 나는 함흥시에 현지출장 갔다가 함흥화학공대 학생들의 졸업연회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20여 명이 참가한 졸업연회는 대학 교수의 사택에서 치러졌는데, 약속된 시간이 되어 7~8명 되는 여학생들이 들어오자 나는 본능적으로 반가움을 느꼈다. 그들과 대화하고 싶어 여러모로 기색을 살피며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곤 했는데, 그녀들은 하나같이 묵묵부답인 채 방 한쪽구석에 몰려 앉아 푹 처진 어깨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괜히 짜증이 생겼다.

둥근 밥상 두 개가 펼쳐지고 음식그릇이 양쪽 상에 들어왔다. 그러자 흑백이 갈라지듯 남녀가 딱 갈라져 상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는 것이었다. 일부러 남자들 속에 앉은 내가 여대생들에게 이쪽 상에 함께 앉으라고 해도 누구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평양의 여대생들은 이런 자리에 남학생들과 잘 어울려 술도 마신다며 말을 건네도 막무가내였다. 여성의 권리는 누가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고 어조를 강하게 바꿔도 몸짓을 한번 움씰해 보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남자들이 술 마시고 덕담을 나누고 하는 사이 부지런히 음식을 먹어버린 그녀들은 여물을 배불리 먹고 구석에 드러누워 새김질하는 암소마냥 다시금 뒷구석에 쭈그리고 앉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그녀들에게 정이 확 떨어지며 이상하게도 그녀들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평양사람보다 자기들이 훨씬 더 많은 문명인 기질을 지녔다며 ‘함경도인의 우월론’을 줄곧 떠들던 북쪽 남자들 모습이 갑자기 어른거리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그 모든 말이 말짱 헛말이었다는 깨달음이 불쑥 들었다. 이렇듯 여성을 우매화 시키는 문화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문명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동방예의지국에서 어떻게 남성을 시장에 보내나?

또 한번은 함흥 출신의 소설가 한 명이 신포(함흥 근방)에 출장나가 옛 애인을 만나고 온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렇게 황당할 수가 없었다. 신포 여성이 십 년만에 만난 첫사랑 앞에 했다는 첫 인사말이 이러했다.

“아니, 평양에선 여자들이 남자들을 시장에 내보낸다면서? 그게 어디 동방예의지국에서 사는 여성의 행실이야?”

그런데, 더한 가관은 함흥출신 남성 소설가가 자기의 첫사랑이 했다는 이 말을 큰 금언(金言)이나 되는 듯, 돌아다니며 극찬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하도 기가 막히고 화가 치밀어 “아니, 남자는 뭐 공기만 먹고 사는 부처님이나?” 하고 맞받아치면서 그 맹랑한 말을 생각 없이 전달해준 여자 소설가만 그 자리에서 한바탕 닦달해댔다. 함흥출신 남성 소설가에게 그대로 전달하라는 뜻이었다.

함경도의 이른바 지체 있는 남성들이 아침 출근을 하다 젊은 여성이 앞을 가로 지나가면 그 자리에 걸음을 딱 멈추고 서서 “아, 오늘 첫 시간부터 재수 없다!”며 한숨을 푹 내쉰다든가, 심하면 상대 여성에게 시비를 걸기도 하는데, 함흥 쪽에서 이런 일들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남의 집 살림까지 웬 참견?

한국에 온 내가 함경도 출신 탈북 남성으로부터 우리집에 잠깐 들리겠다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무심결에 집안을 흩어보니 아들의 방이 흐트러져 있었다. 조금 전 방을 정리해주었는데 한참 장난이 심할 때라 금방 어질러져 있었다. 방을 치워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별로 큰 손님이 아니고 내 일도 바쁘고 하여 그냥 손님을 맞았다. 그가 집으로 들어오다 웃방을 건네 보고 “응, 집이 왜 이렇게 어지러워?” 하고 미간을 찡그리며 인상을 쓰는 것이 아닌가?

‘남의 집이 어지럽든 말든 손님인 제가 무슨 상관이야?’ 하는 반발심이 이는 것과 동시에, 함경도 남자들이 저런 식으로 자기 아내를 다스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일었다. 저런 식으로 남자의 권위를 세우려 들고, 저런 식으로 여자를 매일매일 기죽이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자 소름이 오싹 끼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남성은 살인적인 아내 구타로 아내가 두 번째로 집을 뛰쳐나간 뒤였고, 우리 집에도 그 문제로 온 것이었다. 북쪽 출신인 그의 아내는 집안을 호텔처럼 꾸미고 음식솜씨가 출중했고, 미인인데다 부부관계가 원만하다고 자부심이 그렇게 높던 여성이었다.

‘함경도 여자들이 살림솜씨 깐지고 음식 잘한다’는 말에 의문부호가 새까맣게 일었다. 그쪽에선 여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자들 등쌀에 배기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그 말이 해석되었다.

북한의 여성 지위 남한에 잘못 알려져

얼마 전, 여성학회 월례회가 이화여대 교육문화회관에서 있었다. 발표회가 끝나고 회식자리가 마련되었는데, 음식을 먹으며 여러 여성학자들과 사담을 나누던 내 입에서 느닷없이 이런 말이 나왔다.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한국사회의 의식을 문명화하는 데 아주 커다란 역할을 했어요”

물론 페미니즘의 역할 증대와 함께 뒤따르는 부작용적 요소들을 내가 아주 무시해서 한 말이 아니었다.

여성의 인격이 소외되는 북한에서 40여 년을 살다온 나는 여성에 대한 의식수준이 해당 사회의 문명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척도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한쪽 성(性)이 다른 성(性)을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중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인간문명의 긍정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진이/ 前 조선작가동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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