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이제 너흰 정말 아니야”

한총련 학생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는 모습

기자는 대학졸업 한 학기를 남겨두고 있다. 기자가 대학에 입학했던 99년 당시의 일을 떠올리면 다시 생각해볼 일들이 있다.

갓 고교를 졸업하고 부푼 기대를 안고 대학에 첫발을 디뎠던 2월. 입학식 전에 있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게 되었다. 신입생이면 대부분 참가해보는 오리엔테이션, 흔히 ‘새터’라고 불리는 행사다.

당시 기자는 대학의 정치성이나 운동권에 대한 선입견은커녕 아무런 관심조차 없었던, 말 그대로 ‘순수한 새내기’였다. 하기야 막 고교생활을 끝낸 새내기들이 정치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기자뿐 아니라 대다수의 신입생들은 ‘새터’라면 아마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대했을 것이다. 대학동문 졸업생 중 저명한 인사가 입학을 축하한다는 말과 모교 자랑을 하고, 대학생활에 대한 교육 등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나름대로 필요한 내용들 말이다.

착각도 유분수, 신입생 ‘새터 교육’

하지만 그 기대는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새터 장소에 저녁 늦은 시간 도착하여 방 배정 등 자질구레한 일로 첫날을 보내고 바로 둘째날 아침부터 본격적인 ‘신입생 교육’이 시작되었다.

주최측은 비디오 상영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이었다. 대학 총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를 당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몰래 활동하며 고생하고 있다는 내용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은 영상물이었다.

그것이 신입생들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무리 같은 대학 총학생회장이라 해도 일면식도 없는데다, 그걸 보여줘서 신입생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신입생들은 어땠을지 모르나 솔직히 기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어지는 오후 교육. 오전의 영상물로 충분히 ‘워밍업’이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이제는 아예 한총련의 활동에 관한 영상물을 상영한다. 현재 누가 구속되어 복역중이고 수배중인지, 한총련은 어떤 조직이고 한총련이 맞서 싸우는 대상은 무엇인지를 선전하는 내용이다.

영상물 상영이 끝난 후에는, 정말 지나가던 소도 웃을 만한 상황이 벌어진다. 주최측은 신입생들에게 엽서를 나눠준다. 엽서의 수취인은 이미 정해져 있다. ‘○○○교도소 ○○○번 수감자 ○○○앞’으로 된 엽서다. 한 사람당 3장씩. 물론 각기 다른 3명에게 보내도록 되어있는 엽서다. 엽서의 한쪽 면에는 엽서의 수취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사진과 함께 ‘나의 사랑 나의 조직 한총련’이라는 글귀가 인쇄되어 있다. 그리고나서 엽서 작성 시간을 준다.

신입생들이 한번 만나보지도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바로 어제까지도 별 관심이 없던 사람이 영상물 한번 본 것으로 신입생들의 가슴속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인가?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한총련 동지가 옥고를 겪고 있으니 정성스러운 엽서를 써서 옥중에서나마 즐거움을 드리자’고 하는 것인가?

뭔가 착각해도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옥중에서 고생을 겪고 있으니 인간적으로 뭔가 위로의 말 한마디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한총련은 그들의 조직이지, 아직 실체도 정확히 모르는 신입생들의 조직은 아니었다.

앞뒤 안 맞는 한총련 행태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새터 대표자가 나와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신입생들의 호응을 유도한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세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들에게 ‘선배’의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 그 선배가 바람직한 모델이건 아니건, 새내기들은 대학생활의 경험자인 선배들의 행동을 모방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그런데 대학생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새터에서부터 새내기들을 상대로 그런 선전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새내기들의 사고 자체를 일방통행식으로 만드는 행위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한총련은 스스로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외치면서 왜 정작 다른 사람들의 사상의 자유는 인정하지 않는 것인가? 그들의 사상에 동조하지 않고 활동에 동참하지 않으면 당장에 대학사회의 비주류로 낙인찍어 소외시키는 것이 사상의 자유를 외치는 자들이 할 수 있는 행위인가.

한총련 설자리 이제 정말 없다

어떤 조직이든 스스로 이념과 행위에 정당성이 있다면 굳이 그런 식으로 억지선전을 하지 않아도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받게 되어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새터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점점 자신들의 지지기반이 없어져 가는 한총련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순수한 신입생들을 상대로 ‘최후의 발악’을 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그런 ‘발악’도 무의미하게 됐다. 대학사회에서 한총련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고, 한총련은 마지막 보루로 대학 총학생회의 권력만큼은 절대 놓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 새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실에는 눈을 감고, 자신들에 대한 비판에는 귀를 막으면서도 조직을 동원해, 순수한 새내기들에게는 자신들의 사상과 활동에 동참할 것만을 강요하는 한총련. 그들이 그토록 타도하고 싶어하는 파쇼 독재가 바로 자신들의 행태와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한총련이 진정한 진보를 표방한다면 당장 새내기들을 상대로 한 ‘세뇌교육’을 그만두기 바란다. 그것은 새내기들에 대한 인권 침해이며, 사상적 파쇼 독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열심히 세뇌교육을 했는데도 대학사회에서 한총련에 대한 지지기반이 꾸준히 줄어드는 것을 보면, 그것도 그리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한총련 여러분들, 이제 쓸데없는 짓은 그만하고 자신의 주장에 스스로의 행위를 비추어 보기를 바란다.

김인희 대학생 인턴기자(고려대 행정학과 4년) kih@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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