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대한민국 유권자 신임 물어라

한나라당이 정체성 논란을 하든 말든 그것은 그들의 문제다. 그러나 유권자의 시각에서는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고진화-원희룡 씨와 김용갑 씨 정도의 멀고 먼 사이라면 왜 굳이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을 하는지, 그리고 그럴 바에야 아예 합의이혼을 해 버리는 게 옳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큰 정당에는 물론 좌-우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파임을 전제로 한 좌-우파, 그리고 좌파임을 전제로 한 좌-우파이지, 한나라당의 경우 같은 것이 아니다.

지금 한나라당에는 정위치라 할 만한 것도 없고, 당의 일관된 노선이라 할 만한 것도 없을 뿐 아니라, 일례로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이 무엇이며, 김정일에 대한 인식과 대처가 무엇인지조차 확실하지가 않다. 각자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당의 통일된 공식노선 같은 것은 있어야 할 터인데 도무지 그런 것이 없으니 말이다. 예컨대 햇볕 정책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식견해가 무엇인가? 원희룡-고진화 씨의 견해가 무엇이고, 김용갑 씨의 견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있겠는데, 한나라당의 견해가 무엇인지는 정히 알 길이 없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한나라당이 충분히 통합된 정치적 결사가 아닌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서로 동지가 아닌 것이다. 민주정당 내부의 관계가 공산당이나 파시스트 당처럼 단일노선이나 유일주의로 획일화 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처럼 “저 사람들이 왜 굳이 같은 정당에 몸담고 있나?” 할 정도로 지리멸렬해서도 곤란하다. 도대체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놓아둔 상태에서 당의 정체성이 무엇이냐, 우파로 갈 것이냐 중도로 갈 것이냐의 정체성 싸움을 벌이는 정당이 이 세상 어디에 있는가? 그런 것도 아직 매듭짓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유권자더러 표를 찍어 달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명박 씨나 박근혜 씨도 그런 싸움에서는 초연해 있으려 하고 있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는 물론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그 누구로부터도 미움을 사고 싶지 않고, 그 누구로부터도 표를 얻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그들의 그런 어정쩡한 정치적 처세를 일일이 다 이해해 주어야 하고 헤아려 주어야 한다는 법은 절대로 없다. 아니 유권자들은 그들에게 물을 수 있고, 물어야 하고, 또 그들의 분명한 답변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귀하들의 정체성은 대체 무엇이며, 그 답변은 과연 무엇이냐고? 그런 초보적이고도 근본적인 사항도 제대로 모르면서 무작정 표를 달라는 대로 줄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한마디로 한나라당 사람들에게는 적(敵)의 개념이 없다. 자기네들끼리는 지금 물론 적과 적처럼 싸우고 있다. 그러나 정작 대한민국의 주적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그들은 아무 말이 없다. 그들은 김정일이 아무리 ‘반(反) 한나라당-반보수 진보대연합’을 외치며 달려들어도 쓰다 달다 대구가 없다.

왜 그들은 자기네들끼리는 적처럼 할퀴고 때리면서 유독 김정일과 그 추종자들과 수구좌파 앞에서는 그토록 숨죽이려 하는가? 그런다 해서 김정일, 김정일 추종세력, 수구좌파가 그들에게 표라도 보태줄 것 같은가?

득표 작전, 화합, 통합, 다 좋다. 그러나 김정일 세력과 수구좌파에 대해 일전을 각오한 많은 유권자의 눈에는 그들이 지금까지 이렇다 할 이념적 정체성조차 확정짓지 안 하거나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더 이상 우물우물 적당히 넘어가려 하지 말고, 당의 공식 노선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밝히고,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유권자들의 신임을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 세력은 싫어도 한나라당을 찍었지, 너희들이 달리 갈 데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모욕은 그들에게 엄청난 부메랑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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