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벨 전 체코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

(중앙일보 2004. 10. 17)

‘유럽의 양심’으로 칭송되는 바츨라프 하벨(68) 전 체코 대통령. 공산주의의 유일한 대안은 민주주의라는 굳은 신념으로 동유럽 민주화의 기수 역할을 했다. 1968년 ‘프라하의 봄’ 때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표방한 공산당마저 끝내 거부하며 타협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달 제7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건강 문제로 한국에 오지 못하고 지난 15일 체코 프라하에서 상을 받았다. 중앙일보가 시상식 직후 그를 단독 인터뷰했다.

뜻밖에 그는 수줍어 했다. 목소리도 나직나직하다.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의 첫 인상은 그랬다. 1989년 동유럽을 뒤흔든 ‘벨벳 혁명’의 주역. 해마다 거론되는 노벨 평화상 후보 0순위.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이 치켜세우는 체코의 영웅. 그는 작가 출신답게 질문마다 1~2분씩 골똘하게 생각한 뒤 신중하게 답변했다.

15일 오후 프라하의 젖줄인 블타바(몰다우)강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인터컨티넨탈 호텔 9층 특별접견실. 중앙일보와의 단독인터뷰에 응한 하벨 전 대통령은 한 시간 동안 이라크 문제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올해 서울 평화상을 받았고, 유력한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도 막판까지 거론됐다. 국제사회에서 훌륭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이유는 뭔가.

“좋은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류역사를 바꿨던 역사적인 사건과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 너무 고맙다. 당시 느꼈던 행복과 만족감이 앞서 치러야 했던 고통을 충분히 보상해 준다.”

-당신이’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라고 정적들은 비판한다. 스스로의 정치 스타일을 어떻게 보는가.

“이상주의자라는 평가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맞다 해도 나쁜 평가 같지는 않다. 주변 대부분의 정치가가 너무 현실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그 사이에 이상주의자가 끼어도 괜찮을 것 같다.”

-지난해 2월 대통령 퇴임 연설에서 “내가 실망시킨 국민, 내 행동에 동의하지 않았거나 미워했던 국민에게 사과한다”고 했다. 대통령 재임 당시를 되돌아봤을 때 가장 후회스러웠던 일은.

“퇴임 연설에서 밝힌 사과의 의미가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당시 구체적인 잘못을 의식해 사과한 게 아니다. 대통령 재임 당시 국민은 거의 매일 어디서든 나와 마주쳐야 했다. 모든 학교 교실에 초상화가 걸려 있었고 우표에까지 얼굴이 나왔다. 사람들은 사회의 모든 부조리와 개인적인 불행에 대한 책임까지 언론에 매일 등장하는 사람이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에게 싫증 났거나 싫어하는 감정이 생긴 분들에게 사과한 것이다.”

-가장 잘한 것은.

“체코 민주화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는 점이다. 특히 슬로바키아와의 평화적 분리가 기억에 남는다. 물론 체코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유럽연합(EU)에 가입하도록 주선한 것도 성과라고 본다. 체코를 민주주의 국가의 대열에 올려놓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과정에서 다소 비판받을 게 있더라도 원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본다.”

-또 다른 업적으로 꼽히는 게 화해와 용서의 정치를 펼쳤다는 점이다. 당신은 프라하의 봄을 진압했던 소련과 과거 정치적인 탄압을 했던 공산당 지도자들에게 정치적으로 보복을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화해와 용서는 어떤 의미가 있나.

“강박 관념이나 과도한 열정은 언제나 위험하다. 물론 무조건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되며 따라서 과거사 반성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분명한 범죄 행위가 있었다면 죄인의 신원을 밝히고 법에 따라 재판에 넘겨야 한다. 비록 나중에 사면하더라도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선 원칙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보복심에 눈이 멀면 위험하다. 증오와 보복은 또 다른 증오와 원한을 낳고 이렇게 되면 폭력과 미움의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에 기고한 ‘북한에 대해 행동할 때’ 라는 칼럼에서 북한의 인권탄압 실태를 고발했는데.

“비록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지만 전 세계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질 의무가 있다고 느낀다. 내가 온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의견을 내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인권문제가 제일 열악한 쿠바나 북한에 대해선 할 말은 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를 배반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국제사회의 인권 개선을 위한 구체적 활동계획은.

“우선 인권문제를 꾸준히 언급하고 거론하는 것이다. 이미 비정부단체(NGO)들과는 협력을 해왔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재단(People in Need Foundation)’이나 아내와 같이 운영하는 ‘비전 97(Vize 97)’이라는 재단 등 여러 단체와 협력 중이다.”

-장기화하고 있는 이라크 사태에 대한 해결책은.

“여러 실수가 이번 이라크 사태를 불러왔다. 내년 초 실시될 이라크 총선거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랄 뿐이다. 연합군은 테러에 엄정하게 대처해야 하는 동시에 거만한 침략자라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조심하고 자제해야 한다. 이라크 국민은 그런 문제에 아주 민감한 것 같다.”

-한국군이 이라크에 3000여명 파병됐다. 세계에서 넷째로 큰 규모다. 한국군이 앞으로 겪게 될 어려움은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라크 내에서 한국군은 무엇보다 군과 경찰의 양성에 노력하는 한편 재건과 복구를 돕는 일만 해야 한다. 한국군의 파병 목적이 무엇인지를 현지인들에게 뚜렷하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이라크가 필요할 때 도와 주는 것이지 결코 뭔가를 억지로 받아들이게 하거나 지배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신토록 해야 한다.”

-요즘도 창작을 하는가. 지금 읽고 있는 좋은 책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

“일정에 쫓기다 보니 내면적인 안정을 찾지 못해 글 쓸 여유가 없다. 꼭 뭔가를 써야 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지도 않지만 창작활동을 하고픈 욕망은 물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고민거리다. 책 볼 여유 역시 없다. 나에겐 10~15권의 책을 번갈아 가며 읽는 습관이 있다. 헌팅턴이나 후쿠야마가 쓴 현대 인류문명과 미래에 관한 도서를 많이 읽었다. 최근에 나온 소설책도 읽고 싶은데 아쉽게도 시간이 거의 없다.”

-당신은 훌륭한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대표작을 꼽는다면.

“스스로에 대해 늘 불만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옛 글을 펼쳐놓고 ‘참 잘 썼다’고 하기보다 ‘이게 내가 쓴 게 맞는가”라고 불만을 갖는 편이다. 그래서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할 만한 게 없다. 과거엔 주로 희곡을 썼는데 이후 수필도 많이 썼고 대통령 시절에는 연설문도 썼다. 반응으로 따지자면 최근 1975년에 후사크 당시 공산당 총서기한테 보낸 공개 편지가 체코 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무능한 자의 힘’이라는 글은 주로 외국에서 반응이 좋았다. 반응이 좋았거나 영향력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 글이 다른 작품보다 우수하거나 내가 그 글을 더 좋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비판은 가능하지만 내가 쓴 작품의 우선 순위를 매기거나 우열을 평가할 수는 없다.”

-하벨 대통령 하면 콧수염과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란 평이 많다. 요즘도 담배를 피우는지.

“의사의 강권에 굴복해 8년 전에 담배를 끊었다. 45년간 담배를 계속 피워왔기 때문에 지금도 마음 같아서는 계속 피우고 싶다. 그러나 폐암수술을 받아 폐 일부를 잘라냈다. 그래서 항상 건강에 조심하고 있다. 나로서는 너무 생소한 일이다. 예전에 나는 몸을 그저 정신을 운반하는 수단으로만 여겨 왔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한국 국민에게 해줄 이야기는.

“10여년 전 한국을 국빈 방문한 적이 있다. 대통령 재임 13년간 다른 많은 나라를 방문했는데도 한국 방문이 유독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되고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분단상황은 마음이 아프다. 한국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북한 내 자유화와 인권개선을 위한 활동을 지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전체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체제가 쉽게 통합될 수는 없다고 본다. 한반도의 통일은 민주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해서 이뤄지리라고 확신한다. 또한 북한 주민들에 대한 동정심 및 연대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좀 더 이른 시일 내에 북한 내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유권하 특파원 <프라하에서>

*** 하벨 전 대통령은

1936년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벨가(家)는 여러 세대에 걸쳐 프라하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집안이었다.

그러나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하벨은 출신이 자본가 계급이라는 이유로 정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화학실험실 견습생, 택시 운전기사 등을 전전하다 겨우 프라하 예술아카데미를 졸업했다. 이후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63년 희곡 ‘정원파티’를 발표하며 국제적인 극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이후 공산당을 비판하는 작품을 쓴 탓에 체코에서는 20여년간 작품 발표가 허용되지 않았다.

본격적인 반체제 활동에 뛰어든 것은 68년 바르샤바 동맹군의 무력 침공이 자행됐던 ‘프라하의 봄’ 사건 이후다. 77년’인권헌장 77’을 주도한 혐의로, 79년엔 공화국 전복 기도 혐의로 각각 투옥되면서 체코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89년 11월 ‘시민포럼’을 결성, 공산당 독재를 거부하는 대규모 시위를 통해 40년 공산독재를 무너뜨렸다.

유혈사태가 없다는 점에서 ‘벨벳’ 혁명으로 불린다. 90년 체코 의회에서 대통령에 선출됐으나 슬로바키아가 분리된 이후 사임했다. 93년 1월 체코 공화국 대통령에 다시 선출된 뒤 98년 재선돼 2003년 2월까지 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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