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1만6천톤 준 ‘수석대표 접촉’, 성과 있을까?

▲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실무대표회담 (2005년 8월12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실무대표회담 수석대표접촉’이라는 다소 긴 이름의 군사회담이 오는 2월 3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열린다. 그동안 남북간의 군사관련 회담에 대해 알아보고, 이번에 수석대표접촉이 열리게 된 배경과 전망을 살펴보자.

◆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전 군사회담

한국전쟁 이후 남북은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 사이의 회담을 통해 군사적인 문제를 해결해 왔다. 남북의 군사당국자가 따로 공식적인 회담을 가진 것은 1992년 3월부터 9월까지 8차례에 걸쳐 열린 ‘남북군사분과위원회’가 처음이다.

이 회의는 1992년 남북간에 체결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 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계기로 열렸다. 합의서에 따라 남북은 총리급을 수석대표로 하는 ‘고위급회담’을 열었고 산하에 ▲남북정치분과위원회, ▲남북군사분과위원회, ▲남북교류 ∙ 협력분과위원회를 구성했다.

당시 남북은 군사분야의 고위당국자를 수석대표로 내세워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와 불가침 이행을 위한 각종 합의서를 제출하고 논의했으나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군사회담

1) 남북국방장관회담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측은 통일부장관, 북측은 내각책임참사를 수석대표로 하는 장관급회담이 개최되어 왔다. 2000년 7월에 열린 제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측이 남북군사당국자간 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했고, 8월에 열린 제2차 장관급회담 합의문에 “쌍방 군사당국자들이 회담을 조속한 시일 내에 가지도록 협의한다”고 발표했다. 그리하여 9월 제주도에서 남측은 국방부장관, 북측은 인민무력부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남북국방장관회담이 열렸다.

2) 남북군사실무회담 & 남북군사실무접촉

남북국방장관회담은 그 후 다시 열리지 않고 있다. 대신 2000년 11월부터 2002년 9월까지 7차례에 걸쳐 ‘남북군사실무회담’이 열렸다. 남측에서는 준장급, 북측에서는 대좌급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는 주로 남북간에 철도와 도로를 잇는 공사에 수반되는 군사적인 문제가 논의되었다.

2003년 9월부터 12월 사이에도 2차례의 군사실무회담이 열렸는데 남측에서는 대령급, 북측에서는 대좌급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회담 주제는 과거와 비슷한 실무적인 문제였다. 한편 같은 시기 10여 차례에 걸쳐 ‘남북군사실무접촉’이 열렸는데 보다 실무적인 문제인 지뢰제거, 통신선 연결, 문서교환 방식 등이 논의되었다. 통신선 연결과 관련된 실무접촉에는 남북의 공사현장 실무책임자가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3) 남북장성급회담 & 실무대표회담

남북장성급회담은 제13차 남북장관급회담(2004년 2월)에서 “쌍방 군사당국자회담을 조속히 개최한다”고 합의하면서 구상되었다. 제14차 남북장관급회담(2004년 5월)에서 똑 같은 내용의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5월 26일 금강산에서 제1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이 열렸다. 남측에서는 준장급, 북측에서는 소장급이 수석대표로 나왔다.

이 회담에서 남측은 서해상에서의 무력충동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의제로 내놓았으며, 북측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선전활동 중지와 선전수단 철거를 의제로 주장했다. 회담은 특별한 합의가 없이 이견만을 확인한 채 끝났다.

제2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은 2004년 6월 설악산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밤샘 협상을 통해 「서해해상에서 우발적 충돌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됐다. 서해상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서로 공용주파수를 설정하고, 남북간의 선전활동을 즉각 중단하면서 선전수단을 3단계에 걸쳐 철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합의서를 이행하기 위한 실무대표회담이 2004년 6월부터 2005년 8월 사이 4차례에 걸쳐 열렸다. 제3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을 개최하는 문제도 논의되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2004년 7월에는 개성에서 실무대표회담 수석대표접촉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 이번 수석대표접촉 … 아스팔트 피치 8,000톤 + 8,000톤으로 받아낸 회담

▲ 2000년 이후 남북 군사회담 주요 의제

내달 3일 열리는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실무대표회담 수석대표접촉’은 위와 같은 군사회담의 연장선에 있다.

1~2차 장성급군사회담을 통해 합의된 주요 내용은 서해상 충돌방지와 쌍방 선전수단 철거였다. 합의결과에 대해 남한에서는 “북한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합의내용”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북한은 서해상 출동 방지와 관련한 각종 합의사항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고 NLL침범을 계속한 반면, 남한은 압도적으로 우월한 대북선전수단을 무조건 자진 철거하는 ‘백기투항’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동안의 군사회담 결과는 북한의 수익이 훨씬 커 보인다.

이번 수석대표 접촉은 “군사당국자회담이 개최되어야 한다”는 제15차(2005년 6월), 제16차(2005년 9월) 장관급회담의 합의문에 따라, 제3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을 개최하는 문제를 논의하게 된다.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는 “제3차 장성급군사회담을 백두산에서 개최하기로 한다”고 개최장소까지 구체적으로 합의했으나 북측은 그동안 백두산 삼지연 도로 포장공사 지연과 남한의 을지포커스렌즈(UFL) 훈련 등을 이유로 논의를 미적거렸다.

결국 북한은 1월 9~11일 열린 백두산 시범관광 협상에서 ‘백두산 도로 재포장을 위한 아스팔트 피치 8,000톤’을 요구했다. 북한은 지난해에도 백두산 도로 포장을 위한 명목으로 아스팔트 피치 8,000톤을 가져갔는데 거기에 결함이 있다고 재포장을 해야 한다며 다시 8,000톤을 요구한 것이다. 부실공사를 해놓고 남한보고 또 달라는 것이다.

최근 남한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여 올해에도 아스팔트 피치 8,000톤을 지원하기로 했으며, 통일부는 남북협력기금에서 48억 원을 꺼내 그 예산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번 수석대표접촉은 북한에 이러한 지원을 해주는 대가로 받아낸 접촉이나 다름없다.

◆ 장성급회담, 이벤트 이외의 성과는 없을 것

그럼 이번 수석대표접촉으로 장성급회담이 열릴 수 있을까? 또한 장성급회담이 열린다면 무슨 내용은 논의할 수 있을까?

사실 당장 군사적인 부분에서 특별히 제기되는 의제가 없다. 지금까지의 군사회담은 남북 철도와 도로를 잇는 문제에서 제기되는 각종 군사적 문제를 논의하느라 실무회담 형태로 계속 진행되었고, 서해상 NLL 문제와 상호 선전방송 문제 등이 거래됐는데, 이제 그 이상 논의할 내용을 찾기 어렵다.

조만간 장성급회담이 열린다고 해도 1년 7개월 만에 남북의 ‘준장급 고위 군인’이 다시 만난다는 이벤트를 넘어서는 성과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이번에는 어떤 ‘뜬금없는’ 의제를 들고나올지 하는 것이 하나의 관심사항일 뿐이다. 비무장지대 내 경계초소(GP) 철거 문제 정도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남북군사회담에서 논의할 수 있을만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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