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도 있고, 폭탄밥도 있어!

지난 6월 17일 평양을 방문한 남측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김정일이 ‘폭탄주’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럼 북한에도 폭탄주가 있을까?

북한에도 ‘혼합주’라고 하는 남한의 ‘폭탄주’에 버금가는 음주문화가 있다. 이름만 다를 뿐이지 섞는 방식도 비슷하다.

혼합주는 <중국산 빼갈+소주>, <맥주+소주>를 혼합한 것으로, 북한 고위급들이 사석에서 즐기는 술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술 종류도 도수가 높은 외국산(특히 중국산)이다.

북한 소주는 도수가 낮고 정제가 잘 안돼, 술을 마신 ‘후과’(남한식 표현으로는 ‘뒤끝’)가 좋지 않아 잘 섞지 않는다.

서민들은 술 섞어 마시면 “술도깨비”라 불러

북한 고위층들 사이에는 평소 마음이 맞아 “형님” “동생”이라고 서로 부르는 사람들끼리 만든 모임 같은 것이 있다. 종파주의, 가족주의로 낙인 찍힐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이름을 달지는 못하는데, 친목회와 같다.

직장동료 가운데 마음이 맞는 사람들, 비슷한 직급에서 상부상조 관계에 있는 고위층끼리 갖는 모임이다. 예를 들면 당비서 및 정치위원, 간부부장, 후방물자 공급소장과 같은 사람들이다.

북한에서는 직장의 단체 회식이나 돌, 회갑, 결혼 등 대사(大事)가 있는 집에 가서는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술 잘 마시는 사람’이라고 소문나면 ‘술질이 나쁜 사람’으로 경질 조치될 수 있다. 그렇게 대중이 모이는 곳에서는 잘 안마시고 ‘자기들끼리’ 마실 때는 그야말로 프로다.

모임은 명절이나 휴일날 고위층들의 집을 순회하는 방법으로 마주 앉는다.

먼저 앉아 간단히 취기를 올린 다음, 좌중에 코치가 맥주에 빼갈을 섞어 돌린다. 혼합주는 누가 더 술이 센가를 과시하는 일종의 시위다. 어떤 사람은 두 손을 뒷짐지고, 컵을 이빨로 물고 그 안의 혼합주를 깡그리 비운다. 이런 쇼가 연출되면 장안에는 환호소리와 함께 연거푸 박수갈채가 터진다.

‘못 마시는 사람은 술 10상자 내기’ 식으로 경쟁을 붙여 누가 술이 센가를 가르기도 한다. 임의로 여러가지 빼갈과 맥주를 섞으면 마신 뒤 후과가 나쁘기 때문에 술 종류를 따로 정해 놓고 마신다.

일반 주민들도 독한 술에 맥주를 섞어 마시는 경우가 있는데, 술이 귀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맥주에 독한 술을 섞으면 그 맥주가 모두 독한 술처럼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독한 술에 맥주를 섞어 술의 양을 불림으로써 취기가 빨리 오르게 한다.

하지만 ‘혼합주’ 문화가 일반화 되지 않아 어떤 사람들은 섞어 마시는 사람들을 가리켜 ‘술 도깨비’라고 비난한다.

주민들, 폭탄주보다 폭탄밥이 더 잘 알려져

대신 주민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것은 ‘폭탄주’ 대신 ‘폭탄밥’이다. 폭탄밥이란 군대, 돌격대 등 집체생활에서 공급되는 밥을 말한다. 폭탄밥은 군대나 돌격대에 동원되었던 북한사람들은 누구나 경험했을 만큼 일반화 되어 있다.

군대나 돌격대원들은 하루 정량 800g의 식량을 공급받는다. 그러나 식량을 책임진 군 후방장교와 사관장들이 군인들의 쌀을 빼내 장마당에 파는 등 다른 용도로 돌리기 때문에 항상 모자란다.

예를 들어 50명분의 식량을 가지고 70명의 군인들을 먹이라고 하면 식당근무에 동원된 군인들은 식기에 밥을 담고 젓가락으로 휘저어 밥알을 부풀려 세운다. 이것을 폭탄밥이라고 한다. 가운데가 움푹 패여 폭탄 맞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생겨난 말인즉 사전에 없는 조어(造語)다.

밥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서는 군인들은 제일 먼저 밥그릇부터 살펴본다. 밥량이 많으면 얼굴에 웃음이 피고 폭탄밥이면 얼굴을 찡그리며 “이번 식당근무는 도둑놈들이다”고 불평한다. 주민들이 폭탄밥을 먹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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