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질적 민주주의 발전의 주적이다

학술 NGO ‘교과서포럼’이 한국 근현대사 대안교과서 제정을 논의하는 심포지엄에서 어처구니 없는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30일 서울대학교 사범대 교육정보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4·19혁명동지회’ 등 4.19 단체 회원 30명이 난동을 부렸다. 이들은 책상을 뒤엎고 의자를 내던지며 원로교수를 비롯한 참석자들을 부상까지 입혔다.

문제의 발단은 연세대 K교수가 만든 교과서포럼 내부 토론용 자료가 자체토론이 완결되기도 전에 30일 아침 언론에 먼저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 토론 자료에서 ‘5·16은 혁명으로, 4·19는 학생운동’으로 표현한 구절이 등장했다. 이 때문에 4.19 단체 일부 회원들이 “교과서포럼이 4.19헉명을 학생운동으로 폄하했다”며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4.19에 관한 연구는 많이 있다. 아울러 4.19 혁명정신은 우리 헌법에도 명문화되어 있다. 동시에 각종 주장도 많다. ‘완결성이 있는 혁명’ ‘미완의 혁명’ 또 ‘학생운동’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4.19에 관한 의견은 누구나 낼 수 있다. 헌법에 명문화됐다고 해서 토론을 못하는 게 아니다. 지금은 중국조차도 공산당 규약에 마르크스주의를 명문화했다고 해서 마르크스를 토론 못하는 게 아니다. 하물며 민주화된 한국사회에서 무엇을 토론하지 못하겠는가?

심포지엄은 문자 그대로 ‘함께 모여 조화롭게 말을 나누는 자리'(symposium)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향연’이었다. 즐겁고 좋은 자리라는 뜻이다. 좋은 자리에서는 상대에게 말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서 하물며 폭력이라니? 4.19 단체가 아니라 하나님 단체라도 ‘말의 향연’인 심포지엄에서 폭력을 쓴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가?

질적 민주주의 발전에서 ‘폭력’은 주적

필자가 우려하는 대목은 ‘4.19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아니다. 이는 역사학자들의 몫이다. 문제는 김대중 정부 이후 북한문제가 매개가 되어 사상적 남남갈등이 증폭돼 오면서 급기야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가 됐다는 것이다. 통일연대, 한총련 등의 친북단체가 휘두르는 죽봉과 쇠파이프, 민주노총의 방화(放火)에서 우리사회에 찾아오는 파시즘의 파편들을 본다. 파시즘이 무슨 이론 체계를 갖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폭력(공포)과 정치조작에 의한 대중선동이다. 폭력과 대중선동은 얼굴만 다른 파시즘의 이란성 쌍둥이다. ‘4.19 정신’은 파시즘과 정반대다. 믿었던 4.19 단체마저 폭력을 쓴다면 우리 사회는 도대체 어느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폭력은 극좌, 극우가 마지막으로 도달하는 ‘문제해결’ 수단이다. 그중에서도 중국의 문화혁명, 크메르의 폴포트 정권 등에서 보듯 극좌 계급주의적 폭력이 가장 광범위한 해악을 끼친다. 계급적 폭력이 일상화 되어 하나의 ‘역사적 체계’를 이룬 것이 바로 북한 김정일 정권이다. ‘대외정책은 어디까지나 대내정책의 연장’인 만큼 조폭정권인 김정일이 대외정책에서 체계화된 폭력과 범죄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87년 민주화운동은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결정적인 촉매제 역할을 했다. 당시는 5공시절이었다. 그 사건은 중앙일보 사회면 2단짜리 기사로 처음 보도됐다. 얼마후 2단 짜리 기사는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제목으로 동아일보 사회면 톱 기사까지 올랐다. 이 기사는 당시의 학생운동을 시민운동으로 끌어올리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보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이 한 발언중 아직도 기억나는 게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고문은 ‘절대’ 안돼”였다.

그렇다. 한 사회가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법과 도덕, 관용이 반드시 필요하다. 동시에 ‘절대’ 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그것이 ‘폭력’이다. ‘폭력’은 철저히 동물의 잔재다. 폭력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진화가 덜 됐다는 뜻이다.

내년 대통령 선거까지 우리사회에 크고 작은 폭력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권을 지키려는 측과 정권을 찾으려는 측이 ‘말의 향연’인 정책대결에서 실패할 경우, 자연스럽게 폭력이 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폭력이 정치적 음모의 체계를 갖추면 ‘정치테러’가 된다.

지금 우리사회는 제도적,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내용적, 질적 민주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질적 민주주의 발전에서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것이 ‘폭력’이다. 이번 4.19 단체 일부 회원의 폭력이 백보를 양보해서 우발적이었다 해도 폭력을 행사한 당사자에게는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4.19 단체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해도 경찰이 구속수사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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