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선입견 심는 ‘검정제’ 문제있어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지난 1월 8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주최 토론회에서 “역사는 한 가지로 권위있게 가르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다”고 말한 후 국정제냐 검정제냐에 대한 관심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가 싶었다. 어찌됐던 건강한 토론과 논쟁을 위해 현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 둘 필요는 있는 것 같다.


국정제를 비판하는 측은 “역사를 한 가지로 가르쳐야 한다”는 데 대해 심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역사 교육이 한 쪽의 관점으로 편중되고 특히 정치적으로 편향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를 막기 위해 검정제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검정제라면 그 현실은 어떨까? 이것을 한 번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그동안 두 번에 걸쳐 검정제 하에서 책을 펴냈다. 바로 2011년과 2014년이다.


검정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대두하면서 정부는 검정제를 확대하고 교육과정을 대강화하여 집필자의 재량권을 크게 넓히는 방향으로 해왔다. 지난 2014년 판의 경우 합격률 98%로, 출판사별 총 9권 중 8권이 국사편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였다. 사실상 인정제에 가까울 정도로 교과서 집필의 자유를 보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집필자들의 주관적 역사관이 과도하게 반영되고, 역사교과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현존하는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호불호를 유도할 수도 있는 몇몇 교과서가 대부분의 학교에서 사용되는 편중 현상을 빚었다. 또한, 자신들과 다른 역사관을 가진 교과서에 대해서는 실력 행사를 통해 채택을 철회하게 하는 등 정치적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보면, 역사관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대세를 이룬 가운데 검정제가 지속 시행될 경우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즉 자기들과 다른 성향의 교과서는 ‘친일·독재미화’ 교과서로 낙인찍어 채택률 0%를 이끌어냈으므로 앞으로 검정제를 유지한다면 이 교과서는 다시 나오기가 어려울 것이다. 


또한 높은 채택률을 보인 미래엔이나 천재 교과서의 시각을 따라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지 않고서는 검정을 통과하더라도 채택이 전혀 되지 않거나 채택거부 운동의 대상이 될 확률이 매우 높으므로, 앞으로 검정제 하에서는 모두 이러한 ‘대세’를 따라가는 교과서만 쓰게 될 것이 예상된다. 결국 검정제 본래의 취지인 ‘다양성’이나 선택의 자율권이 보장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현재의 ‘대세’는 미래엔이나 천재 교과서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검정제를 유지할 경우 이러한 교과서의 시각이나 서술 방향에 맞추어 쓰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이 교과서들의 경우 소위 좌우에 관한 ‘이념적 편향성’의 문제뿐 아니라, 현존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호불호를 유도하는 ‘정치적 편향성’이 내재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현 여당 정권에 대한 서술과 평가는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야당 정권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서술을 함으로써, 학생들의 정치적 성향을 한쪽으로 몰아갈 수 있는 여지가 제목과 내용 구성 면에서 뚜렷하게 보인다.


일례로 노무현 정권에 대해선 “권위주의를 탈피한 서민 대통령”이라는 제목 하에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싣고,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정책 강화와 왜곡된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바로잡고자 노력한 점 등을 강조했다. 반면, 이명박 정권 부분에서는 “경제성장을 앞세운 이명박 정부”라는 제목 하에 결과적으로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은 약속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하였고, 방송과 인터넷을 포함한 언론 자유가 크게 위축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는 정권별 집필자 개인의 평가가 은연중 투영된 결과로 보인다. 청소년들을 상대로 학교에서 가르치는 한국사 교과서가 현존하는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앞으로 검정제를 유지할 경우 채택률 1,2위를 기록한 이들 교과서의 시각을 답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현재로서는 검정제 유지가 다양성을 보호하기 보다는 오히려 다양성을 해치고, 특정 정당 편향성을 가진 교과서들이 학교 현장을 차지할 가능성 을 배제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에 이념과 정치세력에 편향적이지 않은 역사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국가가 책임지고 중립적인 시각의 교과서를 발행하여 역사교과서가 정쟁의 도구로 이용되는 일을 막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제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굳이 검정제를 국정제로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게 된 데는 이런 배경에 연유한다. 상황이 이럴 바에는 국정제를 통해 문제를 해소하자는 모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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