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석의 일기⑪] “붙잡을 수 없는 행복”

▲ 성적이 나빠 꾸지람 듣는 춘석

그런데 정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오 아저씨는 돈이 많은 부자였기에 우리들이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학교도 다닐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는 중국인이라는 증명이 필요했는데 가짜 중국 호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가짜 증명이기 때문에 계속 사용할 수는 없고 그 때만 잠깐 쓸 수 있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것을 산 덕분에 학교에 다닐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일을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친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무언가 쓸쓸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 집 할머니는 꽤 시끄럽게 말이 많았고 조금만 대꾸를 해도 당장 잔소리를 퍼붓곤 했습니다. 나는 때로는 그런 할머니에게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희선이는 할머니 마음에 들려고 청소나 요리를 부지런히 도와드리고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희선이의 그런 행동이 ‘아부’하는 것 같이만 보여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원래 희선이는 북조선에 있을 때부터 성실한 편이었습니다. 내가 장난을 치면 몹시 못마땅해 했고 어른들이 말하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 된다고 믿는 것 같았습니다.

희선이는 미래가 불확실한 우리를 집에 데리고 와 학교까지 보내주고 있으니까, 조금 고생스럽거나 못마땅한 일이 있어도 참고 순순히 복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고 때때로 반발하는 나를 미덥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할머니한테 간간히 욕을 먹기는 해도 그런대로 한동안은 잘 참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오 아저씨 집에 와서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마침내 큰 소동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학교에서 시험 답안지를 받아온 날의 일입니다. 시험점수는 25점. 내가 생각해도 참 한심한 점수였습니다.

북조선에 있을 때부터 공부할 형편이 아니었고 중국에 와서도 이곳저곳 전전하느라 공부 같은 것은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같이 생활해 온 희선이는 항상 시험점수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희선이와 비교하면 아무리 보아도 내가 태만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전혀 태만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예상했던 대로 이날 집에 돌아오니 할머니께서 핀잔을 주셨습니다.

“뭣 때문에 너는 항상 그러냐∼! 연연처럼 정신차려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처음에는 나도 적당히 대답했지만 얼마 안가서 화가 치밀어 올라 해서는 안될 말을 해버렸습니다.

“내가 몇 점을 받든지 할머니와는 관계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나에게 간섭을 합니까…”

그러자 할머니는 나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우리 집 친자식과 같이 생각하고 야단도 쳤는데 뭐라고? 관계가 없다고? 잘도 말한다…”

아뿔싸! 잘못 했구나 하는 순간 나는 할머니에게 꾸지람을 듣는 것이 싫어 뒷문으로 집을 도망쳐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젠 틀렸구나… 이제는 여기에 있을 수가 없구나…’

뒷산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동안 나는 그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쯤 있으니까 마음이 가라앉아서, 집에 들어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벌써 밤도 깊어져 있었습니다. 몰래 뒷문으로 돌아온 나를 보고 희선이는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나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용서를 빌고 “두 번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할머니만은 용서해주지 않았습니다.

The DailyNK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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