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대 쥔 구세대와 시장 지향 신세대 근본대결”[1]

▲평양 골목에 형성된 장마당. 제공: Apress

질문: 현재 북한의 경제진로에 대해 내부 경제일꾼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먼저 말해달라.

계명빈: 현재 조선(북한)에는 자기 나라의 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사회주의 국가적 계획 경제가 허울만 남은 상황이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현재 조선의 경제의 실질(현실)은 ‘실리주의’와 ‘독립 채산제’의 미명 하에 형성된 ‘장마당 경제’뿐이다.

근래에 와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위한 경제 활동 일절을 위법으로만 정의해 내는 현 경제제도가 사회주의적이냐 자본주의적이냐 하는 판단의 기로에 스스로 도달하고 있다. 전후에 태어난 신세대에게는 (제도적인)시장 경제의 체험도 지식도 없으나, 현실에서는 장마당(시장) 경제 이외의 삶의 방도는 차려지지(형성되지) 않고 있다.

반대로 일제 시기의 자본주의 지식도 있고 시장경제의 맛도 보았으며 현재 기득권을 장악한 구세대는 핵무기 등 ‘국가 총대’를 쥐고 명색뿐인 이 ‘우리식 사회주의 제도’를 지구상 최후까지 유지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사회주의를 버리느냐, 고수하느냐라는 이 양자간 대결은 본질적으로 사회대결로 승화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나갈 길 찾는 광범위한 토론 필요

하지만 지금 최약체화 된 조선의 경제 현실은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정치적 결론만을 더 이상 앉아 기다릴수 없게 됐다. 사회가 파탄돼 국가가 망하느냐 마느냐 하는 민족의 운명적 문제로 그 성격이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서, 유엔성원국으로서 조선의 ‘국가적 성격’은 매우 희박해졌다. 인민이 국가를 재건해야 한다는 문제조차 제기 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국가는 잘못 버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나서는 가장 절박한 과제는 무엇인가? 우리 인민 모두가 각자 자기 자신을 알고 나라를 알고 세계를 알고 이에 기초해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한 광범위한 토론을 벌리는 것이다. 나는 그 첫 걸음으로서 부족하지만 우리 경제에 대한 소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질문: 지난해 1월 김정일의 방중 이후 국제사회가 조선의 (개혁개방)움직임에 대해 주시했다. 당시 조선 내부에서의 움직임은 어땠는가?

계명빈: 각 기업소마다 담당 부총리에게 제기해 중국에 가서 관련기업소의 기술설비 견학이라도 하고 오겠다는 승인을 받느라 야단법석이였다.

‘이제야 겨우 중국처럼 발전할수 있게 되는가보다!’고 지금껏 억눌려왔던 갈망이 터진것이었다. 특히 당시 (김정일이)중국의 남부지방을 방문했으니 그것이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고 국내의 기대는 아주 대단했다.

‘중국은 공산당 독재를 유지하면서도 비교적 평화적으로 개혁을 해냈다. 로므니아(루마니아)처럼 폭동적이 아니었다. 아마 거대한 중국의 요구와 정세로 하여 그렇게 되었을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아마 그걸 모방해야 하지 않을까…’
간부들부터가 은근히 이렇게 기대하였다.

그런데 방문 이후 내려온 공개적인 조직적 지시는 무엇이었나. ‘더 강력히 조이라!’였다. 사람들의 실망은 대단했다.

사실, 우리 국내에서는 2003년의 시험과정을 거쳐 2004년부터 ‘새로운 경제관리체계(7.1 조치)’가 도입 됐다. 그 체계에서 핵심적인 것은 이전처럼 국가가 기업소의 생산전액을 회수하는것이 아니라, 생산액의 30%를 지배인에게 기업소 경영자금으로 주어 자유 처분하도록 한 생산물 판매의 허용권이다.

국가가 총생산계획 30% 무조건 징수해가

기업소는 그 자금으로 설비자제를 갱신하여 생산적 투자를 더 하라는 의도였다. 지금까지 기업소는 그 판매권을 가지지 못했다. 국가 상업기관이나 자재기관만이 기업소의 생산물을 팔고 국가가 그 판매고를 국가 이득금, 기업소 유지비, 종업원 생활비, 지방 유지비,자체 유지비, 기업소 이윤으로 분할했던 것이다.

하지만 2004년의 새체계(7.1조치) 하에서도 현존 기업소들은 생산을 아무리해도 이윤이 나지 않게 되었다. 열악한 현 조건에서 원 단위(생산 원가)가 전혀 맞지 않아 적자가 나는데도 국가가 기업소 총 생산계획의 30%에 해당한 금액을 무조건 징수하기 때문이다.

지금 국내 경제상황은 7.1 개선조치 전후와 조금도 다름 없을뿐더러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개혁이 더 철저했어야 했다.

지금 국가는 간부들의 사상무장을 바싹 조이고 드는데 그 이유는 늘 있는 상투적 사전준비 수법으로서, 특구 설치라든가 대외관계에서의 일정한 변화가 있을때마다 일어난다.

개혁개방은 결국 국가도 추종할 수 밖에 없어

겉으로는 개혁개방을 절대 안하겠다고 하나, 이제는 장마당의 경제법칙에 의해서만 경제를 비롯한 사회가 움직인다는 것을 국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되였다. ‘개혁개방이다!’ 이런 공식적 발표는 없지만 국제교류는 교류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자본주의 경제개념인 ‘이윤’을 더는 부정할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른 제도정비는 없이 개혁이 된듯한 현실이 무질서하게 펼쳐지면서, 결국 그러한 혜택을 암암리에 독점하려는 기득권 세력이 ‘간부들을 더 강력히 조이라’고 김정일의 입을 통하여 지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개혁개방은 이미 싹트고 있는 바 일반 간부들과 인민들의 지향이 이미 거기로 설정되었고, 이제는 좋든싫든 국가도 그 방향을 추종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과거의 경제방법이 완전히 부정될때 사회적 합의는 결국 새로운 사회이데올로기의 싹으로 된다. 물론 이 사회의 운동은 싫도록 굼뜨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주관적 욕망으로 결코 이 역사를 앞당길 수 있겠는가. 좀 더 고생해야 할 것 같다.

질문: 북한 경제는 90년대에 왜 파탄 상황을 맞이했나?

답: 조선 경제의 파탄 동기로 나는 ’13차(제13차세계청년학생축전)’를 들 수 밖에 없다. 식량난 혹은 경제위기로서의 ‘고난의 행군’은 1987년부터 이미 지역적으로 시작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부터 벌써 함경북도, 양강도에서는 미공급(국가 배급 중단)이 시작되었다. 경제 이상 현상의 현저한 징후는 당시 13차 준비 기간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88서울 올림픽에 대항한 ’13차’의 평양 유치는 경제적으로는 절대 무리하나 북남 대결상 필요한 정치행사였다.

동서 화해 협력의 추세를 막아 보려는, 일개 소국으로는 너무나 힘겹고 무리한 모험이었다. 하기에 이 행사준비는 사로청(현 김일성주의청년동맹)을 내세워 당중앙이 배후 조종하면서 국가의 계획 경제를 파괴하면서도 강행 추진됐다.

그 결과 함경북도나 양강도에서 무책임한 미공급이 이미 묵인 방치되기 시작했다. 미공급구역을 축소시키는데 성공하지 못하자 그 전선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남하를 지속하여 1991년 드디어 평양에 입성하였다.

‘미공급’이란 전국 근로자들의 로동에 대한 보수(식량과 임금 등)를 미불(지급하지 못함)하여 국가가 인민에게 진 빚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사회주의국가 경제윤리의 타락을 의미한다.

미공급 사태는 국가윤리의 타락

법의 최고 수준에 있는 경제윤리를 일탈한 국가적 상황은 걷잡을수 없는 관료집단의 전면적 부정 부패를 촉진시켰다. 물리적으로는 전력주파수가 허용치 이하로 떨어져도, 철도운행의 도착 지연 현상이 만성화되어도 고칠수 없는, 현상으로 접수 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공화국 창건 이래 처음으로 갓 입대한 인민군 군인들 속에 영양실조자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군(수)품 보장에 대한 군부의 강한 반발이 일면서 이 기회는 군 총참모부로 하여금 직접적 경제활동 참여를 유발시켰다.

이처럼 당과 근로단체, 군부 등 특권기관들의 경제 침해 현상이 극도에 달한 결과 계획경제는 무능력하고 약체화된 부실기구로 전락되였다.

계획위원회와 자재공급위원회, 건설위원회, 인민봉사위원회가 다 유명무실 해졌다. 사회주의국가의 경제주체는 사실상 소멸된 셈이였다. 비개혁적인 경제제도는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경제활동을 위법시하는 경제적 질곡으로 전락 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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