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는 미 제국주의가 유행시킨 옷”

▲ 북한 평양 룡성지구 순평 완구공장 내부 전경 ⓒ데일리NK

전편으로 바로가기(전편에서 이어짐) 두 달 후 평양 방문 때 청바지 견본과 천, 재봉바늘, 실, 일체를 준비하여 K사장에게 화장품 선물과 함께 보냈다.

K 사장이 직접 만들어 필자에게 선물한 양복이 ‘참 예쁘다’는 아내의 인사를 전해달라는 위로까지 곁들였다. 물론 아내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 정성이 고마워 인사를 전하기로 했다. 이때는 회사 이름이 ‘대성총국 락원피복합영회사’로 변경돼 있었다.

회사 이름이 바뀐 이유에 대해 안내원에게 물었다. 그는 “‘락원’보다 ‘대성총국’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앞으로 찬구 선생과 합영회사를 하려면 대성이 유리할 것 같아 상부기관과 의논해 바꿨다”는 것이다.

청바지 천을 보낸 뒤 며칠 후 두꺼운 천을 재봉할 수 있는 재봉기를 구할 수 없어 견본을 만들 수가 없다는 연락이 왔다. 딱한 일이었다. 현재 있는 재봉기로 몇번 시도해봤지만 재봉기 바늘만 부러진다는 것이었다. 바지를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기계 때문에 이번에는 안 되고 다음 번에 올 때 만들어 놓겠다고 했다.

“다음은 기계가 어디서 나오냐”고 묻자, 어떻게 해서라도 만들어 놓겠다고 한다.

“청바지는 미 제국주의 상징이라 생산 어려워”

이렇게 두꺼운 청바지를 만들어 본 일이 없어서, 평양에는 청바지를 만들 수 있는 재봉기계가 없다고 한다. 은하무역이 제일 큰 봉제 공장인데 거기도 기계가 없다고 한다. 참 딱한 일이다. 그런데 정말 딱한 소식이 왔다.

평양을 떠날 무렵 안내원이 “청바지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습니다”고 한다.
“왜!”
“상부에서 그 옷은 미 제국주의자들이 전 세계에 자본주의 상징으로 유행시켜놓은 옷이라 공화국에서는 만들지 못하게 한답니다.”
“그래? 이것 가리고 저것 가리고 언제 돈 버나?”
참으로 이상한 나라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몇 달 후 평양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중국 북경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대기 중인 대합실에서 K 사장을 만났다. 나는 순간적으로 얼마나 반가운지 소리라도 지를 듯이 반가운 표정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K사장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급히 일어서더니 다른 쪽으로 가버렸다.

‘잘못 봤겠지’하는 생각에 다시 그를 불렀다. 한 쪽으로 가더니 힐끔 필자를 쳐다본다. 나를 피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지난번 평양에서 그렇게도 반가워하고 양복까지 밤을 새워 만들어주었던 K 사장. 필자를 ‘오빠’라고 부르겠다고까지 했던 그 사람이 왜 나를 피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두 번째 만남부터 나를 피하는 K 사장

비록 청바지의 사업이 무산됐다고 해도 평양도 아닌 북경에서 만났는데 그렇게 피하다니 정말 이상했다. 인간세상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동이라 당황스러웠다. ‘그래 무슨 사연이 있겠지’하는 생각에 더 이상 접근하지 않았다.

평양가면 그 사연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평양행 비행기를 탔다. K 사장도 비행기에 탔다. 비행기 안에서도 서로 모른 척했다. 평양 순안공항에서도 우리는 남남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 후로 우리는 영영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이 지면을 통해서나마 K 사장에게 필자의 마음을 담은 글을 보내본다. 십년 가까이 흘렀지만 잊을 수 없는 K 사장의 눈동자를 기억하며 안부를 전한다.

K 사장님!

일본에 귀국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당신이 애처롭기도 합니다만, 이왕에 귀국하여 작으나마 자가용에 공장운영도 잘 하고 일본도 한번씩 다녀 올 수 있는 입장이니 그나마 다른 귀국자보다는 나은 형편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렵지만 그런 조건을 위로하면서 부디 열심히 살아주길 당부 드립니다. 저를 보고도 못 본 척해야 하는 사장의 심정을 이제는 너무나도 잘 이해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모른 척해도 괜찮으니 조금도 불편해 하지 말고 우리 사업 이야기를 아예 하지 않았던 것으로 잊읍시다.

저는 K 사장이 ‘오빠 동생’으로 지내자고 해 평양에 이산가족 하나 생겼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동생과 함께 봉제 사업을 크게 일으켜 볼 꿈을 꿨을 뿐입니다. 저도 이제는 없었던 일로 여기고 모두 잊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락원의 리 사장을 몇 번 만났지만 K 사장에 대한 말은 일체 하지 않아 더욱 더 좋았습니다.

일본 동경에서 조선신보사의 K 사장의 지인과 친척분들을 만나 술도 한잔 했습니다. 그러나 K 사장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안 했습니다. 부디 행복하게 생활하세요.

2006년 3월 10일 김찬구 드림
(계속)

김찬구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필자약력> -경남 진주사범학교 졸업 -국립 부산수산대학교 졸업, -LA 동국로얄 한의과대학졸업, 미국침구한의사, 중국 국제침구의사. 원양어선 선장 -1976년 미국 이민, 재미교포 선장 1호 -(주) 엘칸토 북한담당 고문 -평양 순평완구회사 회장-평양 광명성 농산물식품회사 회장 -(사) 민간남북경협교류협의회 정책분과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남대 북한대학원 졸업-북한학 석사. -세계화랑검도 총연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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