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절경 ‘칠보산’ 여행기 “생전 처음 본 동해…”


<최근 중국 관광객의 방문에 따라 주민들의 접근이 제한된 칠보산은 북한 내 대표적인 휴양지로 꼽혀온 곳이다. 일반 주민들은 어려운 살림살이 탓에 매년 나들이를 떠나지는 못한다. 그러나 평생 1~2번 정도 가족, 동료들과 함께 유명한 명승지를 돌아보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낙 중의 하나였다. 칠보산도 그러한 곳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갈 수 없는 장소가 됐다. 최근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가 보내 온 칠보산 여행기를 싣는다. 칠보산의 절경과 여행 소감을 있는 그대로 전하기 위해 북한식 표현은 그대로 살려뒀다.>









‘함북 금강’으로 불리는 칠보산 내칠보의 개심사(上)와 칠보산 해칠보의 무지개바위(下) ⓒ연합

2010년 8월 25일. 얼마나 기다리던 날이었던가?


세상에 태어나 조선의 명승지인 백두산과 묘향산을 답사한 것도 가슴 뿌듯한 일이었지만 동생의 성의로 또 다시 이름난 유명산인 칠보산을 가보게 된 것은 너무나 기쁘고 행복한 일이다.  


항상 일에 쫓기고 고달픈 동생이 기업소 종업원 일동을 이끌고 이 곳으로 온 이유는 물론 지배인으로서의 체면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양강도 두메산골에서 일생 살아 온, 탈북한 아들 때문에 추방을 가 마음의 고충을 겪고 있는 이 늙은 언니를 위해 애쓰고 마련한 것이기도 하다.


아침부터 준비 때문에 분주했다. 배를 가지고 있는 기업소이보니 생물낙지(오징어)를 준비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불고기를 만들어 먹을 돼지고기와 배, 과자 등을 준비해 가지고 아침 9시 (칠보산이 위치한 명천군) 보촌리로 향했다.


그림이나 영화 화면으로만 보아오던 동해바다!


그 어떤 근심걱정도 없이 훨훨 날아다니는 갈매기인양 내 마음도 둥 떠 있었다.


모래밭 위에서 달리다가 바닷물에 뛰어들어 사진 촬영도 하는 등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불고기도 먹고 신나는 노래자랑과 육담(만담) 나누기 등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다 오후 3시가 되어 칠보산 답사 길에 올랐다.


말로만 들어오던 명산 칠보산을 직접 가게 된 기쁨으로 들떠있는 사이 우리를 태운 버스는 벌써 칠보산 입구 교양마당에 들어섰다.


교양마당에서 안내원이 칠보산에 대해, 특히 김정일이 칠보산을 몇 번 다녀갔고 인민들이 이 명산을 다 볼 수 있게 잘 꾸리라고 했다는 내용의 말을 듣고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도착한 곳은 전망대였다. 망원경으로 눈앞에 있는 듯 한 해칠보(칠보산에서 보이는 섬)를 감개무량한 심정으로 보고, 사진도 찍었다.


남녀가 마주 안고 있는 듯 한 바위가 있었는데 김정일이 수행원들에게 이에 대한 야한 농담을 해서 유명해졌다. 그 바위에는 여인의 한 쪽 손만 보이지 않는다. 전장에 나가 왜적을 물리치고 돌아오는 남편을 마중 나온 아내가 남편이 무사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사타구니를 만지느라고 여인의 손이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의 농담이었다.


개심사 또한 너무나 많은 여운을 남기는 곳이다.


이 절 관리인은 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면서 대를 이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먼 옛날 조선의 여인들이 이리 속고 저리 속으면서 이 절간에 와서 자기의 절개를 버려야 했던 비참한 시절을 눈 앞에 보이는 듯 설명하는 절 관리원의 말을 듣고 이 나라 여인으로 태어난 불우의 운명을 생각하게 됐다. 


옛날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절에 가 자기 손으로 찧은 쌀로 밥을 해 불공을 드리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해 수많은 여인들이 절을 찾았다. 중들이 그것을 이용해 유부녀들을 희롱했다는 것이다.


전설인지 김정일이 만들어 낸 말인지는 모르나 종교를 믿지 못하게 중들에 대한 나쁜 선전을 하기 위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칠보산을 답사하면서 잊지 못할 일은 옛날 장수들이 입었다는 갑옷과 왕족들이 입었던 옷들을 입고 사진을 찍어서 (나도 왕이다)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 본 것이다.


비록 입에 풀칠하기 위해 하루 종일 바빠야 했던 늙은이지만 짧은 시간을 이용해 조선에서 태어나 누구나 다 가볼 수 없는 칠보산을 동생의 성의로 가보게 되서, 단 하루라도 아무생각 없이 즐거웠던 것이 잊혀지지 않는다.


칠보산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김정일의 명석한 두뇌를 선전하기 위해 만들어 낸 말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인상적이고 맘에 와 닿는 말이다.


그것은 칠보산의 중이 산에서 밭을 일구던 한 여인을 쫓아 마을에 내려오자 동네 총각이 여인을 보호 했다는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숫자 1~10까지가 첫머리에 들어갔다는 십절가이다.


십절가의 내용을 묻자 관리인은 그 누구도 설명을 못하고 있는데 김정일이 그 답을 설명하였다고 하면서 천출장군의 비상한 지략이라고 김정일의 위대성을 선전했다.



(일) 하기 싫어하는


(이) 중 놈아


(삼, 사) 삼사월에


(오, 육) 오륙(팔, 다리)를 놀리기 싫어


(칠) 보산에 올라 와


(팔) 짱을 끼고


(구) 경을 하더니


(십) 시비는 웬 시비냐!



참 웃기면서도 재미나는 에피소드다.


이 늙은이가 다른 것도 눈에 선하지만 글로 쓰려니 잘 떠오르지 않아 더 쓰질 못하겠다. 그렇지만 끝도 없이 이어지던 숲의 모습만은 생생하다.


산턱에서 조금 내려오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나타났는데 그 물이 어찌나 맑고 시원한지…그 물속에서 자유로이 헤엄을 치면서 놀고 있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며 괴로웠던 마음들을 이 속에 다 씻어 내 버리고 싶었다.  


소나무 솔로 불을 피워 간단한 식사를 하고 귀로에 올랐다.


국가에서 발행한 전문 답사권을 가지고 안내를 받으면 구체적으로 했으련만 기업소에서 자발적으로 간 것이라 칠보산의 깊이를 다 파악 못한 것이 유감이다.


그 추억을 가슴에 안고 통일이 되면 그때 꼭 다시한번 가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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