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고립…訪中 실패…김정일의 다음 카드는?

지난 칼럼에서 북한의 천안함 군사공격과 김정일의 변화된 생존전략을 언급했다.


요약하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된 김정일 정권이 앞으로 체제생존을 도모하려면, 지난 20년동안 핵개발을 매개로 하여 주변국의 도움을 뜯어내면서 살았듯이, 또 새로운 제2의 벼랑끝 전술을 전개할 대상이 필요한데, 그것은 미-북 평화협정을 강제하는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며, 그 방법은 남 북 미 중이 얽혀있는 서해를 국제 분쟁 수역화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리고 천안함 사건은 그 ‘신호탄’이라는 이야기다.  


이 부분에 대해 좀더 보충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한 국가의 대내외 정책은 자신이 현재 처해 있는 대내외적 상황과 인과관계에 놓여 있다. 다시 말해, 한 국가의 대내외 전략은 현재 그 국가가 처해 있는 상황의 총체적 발현인 것이다. 국제관계를 설명하는 금언인 “한 국가의 대외정책은 그 나라 대내정책의 연장(延長)”이라는 말은, 특히 수령주의에 근거해 있는 김정일 정권의 대외전략을 설명하는 데서 딱 떨어진다. 따라서 현재 김정일 정권이 처해 있는 대내외적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김정일의 대남 대외전략의 ‘용골’을 파악할 수 있다. 또 우리는 그 용골을 파악하고 있어야 정확한 대북전략을 전개할 수 있다. 


김정일은 대외전략에서 “적들이 우리를 모르도록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해야 한다”고 자주 말해왔다. 간단히 말해 “나는 적을 알고 있으면서, 적들은 우리를 몰라야 한다”는 소리다. 그래서 김정일은 90년대부터  벼랑끝 전술로 미국과의 핵게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대해 “저들이 무엇을 믿고 저렇게 강하게 나올까?”라는 의혹을 가졌었다. 특히 90년대 초 김정일은 마치 ‘안개 속에 있듯이’ 전략적 모호성을 중요한 전술로 사용했다.  


당시 북한이 핵개발을 하면서 내건 명분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면 우리는 핵을 만들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김일성도 1994년 평양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에게 그런 소리를 했다. 당시 김일성은 “우리는 핵을 만들 의지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고 했다. 이 말은 물론 거짓말이다. 그러나 외부에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파악되었다. 사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뭘 모르는 전문가들이 “북한 핵은 협상용” “자위권 차원의 핵개발” 식으로 잘못 파악한 데는 이같은 북한의 전술에 길들여진 측면이 있다.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벨상과 ‘통일 대통령’이라는 사적 욕망 때문에 남북 7천만 민족을 동시에 이용했지만, 노무현 정부 시기 일부 순진한 운동권 출신들은 “대미 자위권 차원의 핵개발”이라는 말을 실제로 확신한 것이다.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후 첫 미국 방문에서 “북한 핵개발은 일리 있으며 협상용”이라며 확신에 찬 발언을 한 것이다. 지금도 미국에 가 있는 노무현 정부 시기 어느 청와대 비서관 출신은 “천안함 사건은 북 소행이 아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가 무식하면 늘 당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김정일은 말하자면, “미국은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라”는 단 한줄의 구호를 밑천삼아 20년동안 핵개발을 매개로 하여 한반도 군사긴장 촉발→국제협상 진입→경제지원→핵 업그레이드 긴장 촉발→국제협상→경제지원의 순환고리를 통해 생존해온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의 핵을 포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6자회담을 진행시키는 동안 두 차례의 핵실험으로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었다.


지금 김정일 정권은 한반도 군사긴장이라는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먹고 살 길이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분란을 일으켜야 먹고 살 길이 생긴다. 그런데, 자신의 정권 생존을 위한 그 ‘무슨 수’는 김정일이 가장 자신 있는 ‘전공’으로 선택돼야 한다.


김정일의 최대 강점이 핵을 위시한 군사력이라는 사실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김정일은 군사력으로 남한의 약한 고리를 집중 두들겨야 한다. 남한의 최대 약한 고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평화’다. 평화를 지켜야만 경제안정과 중산층 확대로 사회 안정화를 유지할 수 있는 남한의 입장이 김정일이 볼 때는 최대의 약한 고리인 것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원래 학교 뒷골목은 학생들이 서로 장난이나 치며 지나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깡패가 등장하여 학생들을 위협해서 용돈을 뜯어내는데, 학생들이 조용히 돈을 주면 ‘뒷골목 평화’는 유지되고 돈을 안 주면 평화가 깨진다. 원래 평화롭던 뒷골목이 깡패가 등장하는 바람에 뒷골목의 성격이 바뀐 것이다.


이때 깡패의 생존을 담보해주는 것은 ‘뒷골목의 선제적 평화 유지권’이다. 깡패는 뒷골목에 대한 선제적 평화 유지권을 계속 장악하고 있지 않으면 살길이 없어지는 것이다.


현재 동북아의 평화를 선제적으로 깨뜨려야만 먹고 살길이 생기는 나라는 북한 외에 없다. 구체적으로 김정일 정권 외엔 없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은 모두 평화상태가 계속되어야 유리하다. 구체적으로 평화상태가 유지되어야 각국의 ‘정권’에 유리한 것이다.


북한과 세계 최대의 군사력 밀집을 보이고 있는 한국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중국 공산당 정권은 군사 외교적으로 중국 대륙의 주변이 안정되어야 내치(內治)를 안정되게 가져갈 수 있다. 미국도 종전(終戰)의 기약이 없는 對테러전을 수행하면서 피로가 누적되었다. 그런 점에서, 현재 ‘동북아에 대한 선제적 평화 유지권’은 김정일이 갖고 있는 것이다. 북한 핵문제가 꼭 그렇다. 북핵문제는 김정일이 풀지 않으면 아무도 풀 수 없다.


지금 중국이 당면한 최대의 문제는 계층·민족(종족)·빈부·도농·지역·세대간 격차다. 한마디로 ‘계급 갈등’ 가능성이 내재돼 있다.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 만약 문화혁명이나 천안문 사태 같은 사건이 또 발생한다면 그것은 끔찍한 악몽이다. 소위 ‘조화로운 사회'(和諧社會)는 중국 공산당이 안정되게 정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어젠더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륙의 국경선 주변이 불안정해지는 것을 중국 공산당은 극도로 경계한다. 현재 중국 대륙의 국경선 중에서 가장 취약한 곳이 바로 북한 지역이다.


하지만 김정일 정권은 한반도에 분란을 일으켜서 ‘동북아 안보불안’ 어젠다를 계속 선제적으로 가져가야 먹고 살 수 있다.


북한은  핵개발을 매개로 하여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면 우리는 핵을 개발할 이유가 없다”는 명분(?)을 걸었듯이, ‘핵 보유 이후’의 명분으로 ‘한반도평화협정’ 어젠다만큼 훌륭한 것은 없다. 또 한반도평화협정 아젠다는 북한정권이 일관되게 밀어부쳐온 근본 문제다. 또 김정일이 선택할 수 있는, 비교적 장기생존을 담보해줄 수 있는 어젠다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여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담보하자”는 요구가 한국 중국 미국, 그중에서 한국 내부에서 나올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또, 김정일은 ‘남조선’ 내부를 둘로 갈라놓아야 자신에게 향하는 대한민국의 힘을 분산시킬 수 있다. ‘평화’라는 용어는  남한 내부를 둘로 갈라놓는 데 매우 적절하다. 김대중-노무현 시기에도 김정일은 서해교전 등으로 한반도에 긴장 모드와 대화 모드를 바꿔가면서 ‘뒷골목 평화유지 비용’을 계속 챙겨갔다.


김정일의 신(新) 모험주의 전술도 별다른 게 아니다. 지금까지 해온 한반도 군사긴장을 수단으로 한 생존전략의 수준과 강도를 더 높여주는 것이며, 핵개발을 매개로 한 생존전략에서 직접적인 대남도발 쪽으로 전술적 방향전환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대남도발이 전면전을 상정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미연합 군사력이 존재하고, 중국도 한반도 안정화 때문에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결사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남 직접도발 외에 현재 김정일이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생존 대안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3차 핵실험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1,2차를 끝낸 마당에 3차 핵실험을 해서 어떤 효과가 있겠는가? 또 3차 핵실험을 해서 김정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호하다. 


김정일이 신모험주의 전술을 선택해야 할 이유는 여전히 북한 내부 사정 때문이다. 김정일의 대외정책은 “대내정책의 연장”임에 틀림이 없다. 김정일의 대내정책의 핵심은 수령주의 결사옹위다. 따라서 대외전략의 핵심도 수령주의의 결사옹위다. 북한이 6자회담에 돌아오는가, 개성공단을 유지하는가 폐쇄하는가, 남한과 긴장을 원하는가 대화를 원하는가 등등은 모두 이 각도에서 보면 답이 나온다.


나중에 좀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필자는 결국 김정일은 자신이 40여년 동안 만들어놓은 수령절대주의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망하게 될 것으로 본다. 지금 김정일이 대남 직접 도발을 전술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내재적 이유도 결국은 수령주의 결사옹위 때문이다.  


지금 김정일이 시급히 풀어야 할 문제는 여전히 달러와 식량, 에너지가 없는 ‘3난(難)’이다. 이미 20년이 넘은 해묵은 난제다. 그런데, 3난에 더하여 90년대 초에는 없었던 새로운 난제가 등장했다. 그것은 북한 내부의 시장확대와 정보화에서 기인한 ‘주민들 민심’이다. 90년대 이전에는 ‘민심’은 곧 ‘수령심’이자 ‘당심’이었다. 수령-당-대중의 일체화에서 따로 ‘민심’이란 게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300만명이 떼죽음을 당하고 15년이 지난 지금 김정일은 ‘민심’을 살펴야 할 입장이다. 김정일 입장에서 ‘민심’이란, 무슨 ‘민심은 천심’ 식의 고전적 의미가 아니다. 권력 주변의 의심 인물에서부터 시작해서 정권유지와 관련하여 자신을 공격할 수 있는 모든 잠재 요인들까지를 포괄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민들의 먹는 문제’다. 특히 화폐개혁 실패 이후 과거보다 민심 동향이 더 중요해졌다. 지난 2월 국내 언론에 보도된 김정일의 2.8 비날론 공장 재가동 10만 군중대회는 김정일 정권이 현재 처해진 어려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완전히 거덜난, 시쳇말로 늙은 홀아비의 다 떨어진 속곳까지 드러낸 광경이었다. 현재 김정일은 경제적으로 주민들을 먹여 살릴 아무런 능력이 없다.   


김정일은 지난 5월 중국 방문을 통해 이같은 ‘먹는 문제’를 돌파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김정일은 중국으로부터 원하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음이 확실해 보인다. 


김정일은 중국을 방문하면서 ‘김일성 마케팅’을 시도했다. 북한의 미인 배우들을 뽑아 ‘피바다 가극단’이 직접 만든 ‘홍루몽’을 베이징에 갖고 갔다. 그것은 한마디로 김정일의 중국 지도부에 대한 프로파간다(propaganda)였다. ‘홍루몽’은 마오쩌둥(毛澤東)이 가장 좋아했고, 특히 1960년대 김일성과 마오쩌둥은 베이징에서 ‘홍루몽’을 함께 관람하면서 북-중간 사상적 혈맹관계를 과시했다.


필자는 김정일이 ‘홍루몽’을 갖고 간 이유가 중국 지도부에 대한 일종의 무언의 압력 성격이 있었다고 본다. 다시 말해, ‘홍루몽’을 통해 김일성-마오 시절의 북중간 동지적 혈맹관계를 상기시키면서 ‘당신들은 개혁개방으로 변신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끝까지 변하지 않은 우리를 크게 지원해달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해석한다. 김정일이 텐진에서 굳이 김일성의 발자취를 찾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김정일은 중국 지도부에 ‘과거의 북중 특수 혈맹관계로 돌아가 통 크게 경제 지원을 해달라’는 요구를 한 것으로 본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핵폐기 프로세스에 진입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중국의 입장을 만족시켜주지도 못했을 것이며, 예의 ‘조선반도 평화협정’ 타령을 늘어놓았을 것으로 본다.


중국은 김정일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국과 상의하지도 않고 두 차례 핵실험을 했고, 더욱이 3월 26일 천안함 폭침사건을 일으켜 한반도 정세의 안정을 결정적으로 흔들어놓았으니, 이는 중국의 국익에 완전히 배치되는 행위였다.


그래서 후진타오 주석은 김정일에게 다섯 가지 제의를 하면서 “쌍방은 수시, 정기적으로 양국의 내정 외교의 중대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소통하자”는 거의 내정 간섭 수준의 발언을 했고, 거기에다 원자바오 총리는 오찬 자리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대북지원은 할 수 없다”며 “개혁개방 해라”는 요구를 직설적으로 한 것이다.


김정일은 이같은 중국의 입장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자신은 ‘홍루몽’으로 김일성-마오 시절로 돌아가자고 ‘애원’했건만, 중국 지도부는 냉정하게도 ‘한반도의 안정’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은 ‘홍루몽’ 관람도 때려치우고 ‘환송행사’도 없이 서둘러 귀국한 것으로 본다.


그리고 북한은 곧바로 수소폭탄을 의미하는 ‘핵융합 기술’을 발표했고, 얼마 전에는 “남조선 군대가 중국을 통해 우리를 공격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로 북-중 국경연선에 박격포까지 배치했다. 속된 말로 김정일이 중국에게 보낸 ‘엿 먹어라’는 제스추어다.


김정일은 중국에게 극심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고, 중국은 김정일을 “정말 수구꼴통”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또 28일 원자바오 총리는 한국을 방문,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누구도 비호하지 않겠다”고 했다. 중-북 관계는 천안함을 계기로 또 다시 균열이 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천안함 관련 한국정부의 대중 외교는 잘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동북아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북한의 대남 도발과 중-북 관계의 균열 전개,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미-중 간 전략대화가 주요 포인트가 될 것 같다.


김정일의 중국 방문 실패는, 변화된 중국 지도부를 잘 몰랐기 때문이고, 그보다 근본적으로 김정일이 ‘자기 생각’에만 파묻혀 있다는 것이다. 지금 김정일은 대내외 전략에서 새로운 ‘창조적 발상’이 어렵다. 또 대체로 사정이 급할수록 창조적 발상은 더 어렵게 되어 있다. 그래서 중국 지도부 입장에서 볼 때 김정일의 ‘김일성 마케팅’은 더 우스꽝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지금 김정일은 과거부터 해온 관성에 따라 대남전략을 가져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김정일이 처한 대내외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김정일이 살 수 있는 길은 두 갈래가 있다. 방한한 원자바오 총리가 언급했듯이 중국이 도와주고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가는 것이다. 동북아 각국이 바라는 코스다.


나머지 하나는 과거부터 해온 대남 대외전략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다. 대남도발을 통해 한반도 군사긴장을 한껏 높이고, 이에 따른 동북아 각국 이해관계를 이용해서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이른바 ‘주체 외교’라는 김정일에게 쉽고 익숙한 길을 가는 것이다. 김정일이 어느 길을 선택할지는 너무나 뻔한 것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가듯이, 김정일은 자신에게 익숙한 군사긴장을 일으키면서 생존해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은 향후 더 외통수로 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천안함 사건은 우리에게 “이제부터는 북한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주었다. 청와대 습격, 울진 삼척 공비사건, 현충문 폭파, 아웅산 폭파, KAL기 테러, 천안함 폭침 등에서 볼 때 지금 김정일이 선택할 있는 수단은 연속적 전면전이 아니라, 불연속적이며 비전면적인 테러 형태의 비정규전이며, 남북 미국 중국이 얽혀 있는 서해 NLL이 전술적으로 선택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김정일은 거기에 덧붙여 남한에 있는 친북세력을 추동하여 선전선동전을 좀더 적극적으로 전개할 것이다. 당면해서는 “한반도 긴장 조성이 되는 이유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선동을 계속 하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앞에 놓여진 중요한 어젠다는 북한문제와 사회통합 문제다. 이명박 정부는 이 두 가지 문제를 같이 해결하면서 전진해야 할 상황이다. 둘 다 난제 중 난제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선택은 무엇인가? 그것은 ‘대북전략의 전선을 북한 내부로 옮기는 것’이다.


청와대 습격, 울진 삼척 공비, KAL기 테러, 천안함 폭침 등은 모두 우리가 방어하는 입장에서 계속 당한 것이다. 축구시합으로 치면 북한은 계속 공격, 우리는 계속 수비하는 형태였다. 우리의 전략은 남북대화와 지원 외에 하프 라인을 넘어본 적이 없다. 햇볕정책이 교류 협력 방식으로  하프 라인을 넘자고 했지만, 교류 협력과 동시에 북한 정권의 평화적 교체와 북한 개방화 전략이라는 투 트랙 방식을 전개하지 못했기 때문에 김정일에게 역이용 당한 것이다.


대북전략의 전선을 북한 내부로 옮기는 것은 무엇보다 김정일에게 익숙한 대남도발을 원천적으로 막아내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김정일이 자신의 체제단속에 하루 24시간 골몰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서 대남 도발을 원천적으로 막아내자는 것이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공이 우리 편 진영으로 넘어오지 않고 상대편 진영에서 계속 공을 갖고 놀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대외전략의 전선을 우리 진영에서 상대편 진영으로 옮기는 것. 이 전략은 고대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사용한 전략에서부터 1980년대 미국이 구소련, 동유럽을 체제전환시킨 전략까지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전략의 근본이다. 우리의 대북전략을 상대편 진영으로 옮기는 구체적인 문제는 다음 회에서 취급한다(3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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