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眞일슬露’를 아십니까?

북-중 국경지역에 취재를 갔다. 북한이 건너다 보이는 두만강변 식당에서 지역의 한 인사와 식사를 했다. 중국에서는 점심식사 중 반주(飯酒)가 워낙 일반화되어 있는지라 ‘한 잔 어떠냐’는 상대의 제의에 흔쾌히 ‘커이(可以, 해도 된다)’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우리의 대화를 들은 아주머니가 쪼르륵 달려와서는 나더러 “한국 손님이냐”고 묻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니 “한국 술이 들어왔는데 한번 드셔보시지 않겠냐”고 권했다. 아주머니 손에는 ‘진로소주’가 한 병 들려 있었다.

‘오호~ 오랜만에 한국 술을!’

자동차까지 베끼는 ‘짝퉁’의 천국 중국

기쁜 마음으로 뚜껑을 열고 마주앉은 상대와 내 잔에 가득 따라 부었다. 가볍게 ‘깐베이(乾杯)’를 외치고 쭈욱 들이켰는데 어째 한국에서 느끼던 그 맛이 아니었다. ‘내가 중국에 온 지 오래 돼서 그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상대방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식사를 했다.

▲ 한국제품을 모방한 중국 제품들 ⓒ DailyNK

그렇게 한참 식사를 하다 무심코 술병을 봤는데, 허거덕~. 한국의 진로소주는 ‘참眞 이슬露’ 인데 우리가 방금 마신 그 소주는 이슬이 ‘일슬’로 쓰여있는 것이다. 술을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내가 취했나 하는 생각에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일슬. ‘내가 눈이 좀 나빠졌나’하는 생각에 다시 한번 눈을 비비고 봐도 일슬.

그때서야 이 술이 진로소주를 흉내 낸 이른바 ‘짝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중국에서 워낙 짝퉁을 많이 보다 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젠 소주까지 흉내 내는 것에 혀를 내둘렀다. 그것도 노골적으로 ‘참眞 일슬露’라니!

하긴 간 크게 자동차까지 모방하는데 소주 하나쯤이야……. 몇 해전부터 중국에 ‘QQ’라는 이름의 자동차가 부쩍 늘어나 지금은 택시의 상당수가 QQ인데, 처음 이 차가 등장했을 때 기자는 ‘마티즈가 중국에 판매할 때는 QQ라고 하나 보구나’하고 생각했다. 현대자동차도 중국에서는 HYUNDAI라는 상표대신 ‘北京現代’라는 회사를 만들어 현지화 전략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야 QQ가 마티즈를 본 딴 짝퉁임을 알고 어찌나 황당했던지…….

중국에 있어보면 상표권이나 지적재산권, 특허 같은 것은 완전히 무시하는 사례를 수도 없이 경험한다. 예컨대 음반이나 비디오 CD를 판매하는 업소에 가면 복사본이 99.9%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업원에게 “정품을 가져다 달라”고 하면 그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제품상태가 맘에 안 들어서 그러는 줄 알고 좀 더 깨끗한 것을 들고오곤 한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거두었다. 굳이 흑묘백묘(黑描白描)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그리고 속된말로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한다. 그 과정에 ‘짝퉁’도 많이 생겨나는 것 같다.

북한, 위조달러나 핵폭탄 만들 생각만 하지 말고……

처음으로 짝퉁 소주를 마셔본 기념으로 빈 병을 들고나왔다. 강 건너 북한 혜산시가 눈에 들어왔다. 취기가 약간 올라서일까, 울컥 눈물이 나오려 했다. 여기 거대한 대륙은 먹고 살기 위해 가짜 소주도 만들고 온갖 수를 써가며 몸부림을 치는데, 저기 저 땅의 ‘똥배’(김정일을 지칭-편집자 註)는 고작 만드는 것이 ‘가짜 달러’인데다, ‘진짜 핵무기’를 가져보려 온갖 수를 쓰고 있으니…….

물론 북한이 국제적으로 그 능력(?)을 인정하는 기술이 하나 있다. 바로 위조화폐를 만드는 일이다. 홍콩에서 북한상사들이 위조지폐를 찍다 적발돼 추방당하기도 했고, 1994년에는 23만 8천 달러 상당의 미달러화 위폐를 마카오의 아시아 델타은행을 통해 세탁하다 들통이 났다.

1996년 초 북한 외교관 여권을 가진 2명이 베트남에서 3백만 달러의 위폐를 소지한 채로 적발된 적이 있으며, 그 해 3월에는 요도호 여객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망명했던 다나카 요시미(田中義三)가 위조달러를 갖고 캄보디아 국경을 넘어 베트남으로 가려다 체포되었다. 당시 그는 북한외교관들과 같은 차량에 탄 상태였고, 북한외교관 여권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태국 국경지대의 아지트에서 2천만 달러나 되는 위폐를 찍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로,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조심스럽게 검토되고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재고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기도 했다. 북한이 미국에 대고 국교정상화를 주장해봐야 북한 스스로 이런 문제를 고치지 않고는 어림도 없다.

▲ 위조화폐 슈퍼K(위)와 참대술

생각할수록 한숨이 나온다. 제발 저기 북녘땅에서도 위조달러나 미사일, 마약 같은 것이나 만들 생각을 말고, ‘참진일슬로’여도 좋고 ‘새우깐’이어도 좋고 ‘초콜파이’여도 좋으니 인민들이 먹고 살만한 것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최근 북한 개성시 자남산 여관에 ‘참대술’이라는, 한국 소주를 똑같이 본 딴 소주가 등장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북한이 차라리 그런 짝퉁이라도 실컷 만들어 경제발전을 하려 한다면 정말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부르고 싶다.

북-중 국경에서,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해 본 생각이다. 중국산 짝퉁 소주를 한 손을 든 채.

중국 창바이(長白) = 김영진 특파원 k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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