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방북에 기대보다 우려가 큰 이유

“우리(카터 대통령 자신과 부인 로잘린 카터)가 앞으로 북한을 다시 방문해 평화협정을 위한 협상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로잘린과 내가 카터센터 프로젝트를 위해 수많은 외국을 방문했지만 아마 가장 흥미있고 중요했던 일은 한반도 전쟁의 참화를 막기 위한 우리의 시도였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04년 출간된 자신의 회고록 ‘행복한 시간을 나누며(Sharing Good Times)’를 통해 1994년 당시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과 협상했던 상황을 상세히 소개한 뒤 재방북 의사를 피력했다. 이후에도 북핵 사태가 교착 국면에 처할 때마다 비핵화 중재를 위해 방북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지난해 8월 카터 대통령은 다시 북한을 찾았다. 방문 목적은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아이잘론 곰즈를 데려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심 김정일과의 면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에 특별한 공적을 쌓겠다는 의지를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방북한 다음날 김정일은 홀연히 중국 방문에 나섰다. 카터는 방북 일정을 하루 연장하면서 김정일을 기다리는 굴욕을 보였지만 회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다시 정상급 원로들을 대동하고 북한을 찾는다.


카터 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방북을 앞두고 애틀랜타 카터센터에서 가진 회견에서 “방북시 비핵화회담 재개와 현지 인도주의 문제 등을 도울 방법을 찾는데 집중하겠다”며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이) 한국, 미국과도 평화협정을 맺도록 도울 것”이라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평화협정, 한반도 비핵화, 식량난에 따른 인도주의적 위기상황 등을 도울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94년 방북 당시 평양에서 북한 김일성과 두 차례 회담을 갖고 핵확산금지조약 (NPT) 잔류의사 확인, 북한 핵개발 잠정동결, 미·북 3단계 회담재개, 남북정상회담 주선이라는 성과를 끌어내 영변 폭격 위기까지 갔던 한반도 위기의 먹구름을 걷어내는데 일정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카터는 이후 자신의 회고록이나 각종 발언을 통해 미국과 북한의 전쟁의지가 확실한 상황에서 자신의 중재로 한반도가 전쟁의 참화를 피해갔다고 평가해왔다. 자신의 국제 분쟁 중재 사례 중 1994년 방북 당시를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내세우고 있을 정도다.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의 토대가 됐던 그의 방북 이후 17년 간 핵문제를 두고 협상이 시도돼 왔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로 플루토늄 방식의 핵개발이 중단되자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가동했고 이는 2차 북핵위기의 시발점이 됐다.


이후 북미 양자회담과 6자회담, 그리고 9·19 공동성명과 같은 합의가 몇 차례 있었지만 북한 핵개발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 사이 북한은 두 차례 핵실험에 ICBM 발사 실험까지 했다. 북한이 그 동안 핵개발 중단을 빌미로 협상장에 나왔지만 이는 연막에 불과했고 결국은 핵보유국 등극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과거 미국의 북한 접근론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강해지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도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반영하고 있는 정책이다. 결국 카터와 김일성의 회담 결과도 사실은 진실성이 결여된 위기 탈출용 퍼포먼스였다는 의심이 짙어지고 있다. 김일성은 1992년 솔라즈 하원 의원이 방북했을 때도 ‘핵무기를 보유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바 있지만 이것도 거짓말로 드러났다.


이러한 상황은 최근에도 지속되고 있다. 부시 정권에서 ‘김정힐’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대북 유화기조를 유지한 크리스토퍼 힐 전(前)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는 지난해 북한의 농축우라늄 시설 공개에 대해 “북한이 지난 몇 년 동안 어떤 종류의 우라늄 농축 계획에도 관심이 없으며, 우라늄 농축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부인해 오다가 이번에 농축 시설을 공개한 것은 북한의 좋지 않은 특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난했다.


북한의 집요한 핵무기 보유 시도에 대해 러시아 마저 비난 대열에 참여하고 있지만 카터는 협상을 통해 북한 핵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여전히 천명하고 있다. 물론 과거와 같지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대화를 통한 비핵화와 미북 평화협정, 대북지원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94년 상황에 대해서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미국 정부의 무분별한 정책이 교착상태를 몰고 왔다”면서 “미국은 조그맣고 고립돼 있으며 가난하고 불가사의한 공산주의 국가를 유엔을 통해 경제적, 정치적으로 심각한 제재를 가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북한은 미국에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며 “그 메시지는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시설 전부를 IAEA의 감시하에 둘 수 있으며 1953년의 ‘임시적인’ 정전협정 대신 영구적인 평화 조약을 수립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아무도 북한의 정확한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최근의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나 23일 연평도에 가해진 포격은 북한이 그들의 미래가 달린 협상에서 존중되기를 바라고 기획된 것”이라고 판단하며 “미국은 미묘한 외교적 교섭과 파멸적인 대립을 피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보았다. 북한은 여전히 약자이며 협상을 통한 핵무기 폐기를 원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게 묻어 난다. 


또한 카터 전 대통령은 “(뉴욕채널을 통해) 북한 당국자들은 나에게 이 원심분리기들도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며 “우라늄 농축 시설은 1994년 합의에서는 다뤄지지 않은 것”이라고 말해 제네바 합의 파기 책임에서 북한을 분리하고, 우라늄 농축 문제도 협상을 통해 해결될 필요가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북한은 핵개발을 일관되게 추진하면서 이를 잠시 중단하거나 우회하는 방법을 통해 국제사회의 경제지원을 받아왔다. 북한은 대화 제스춰를 통해 남한으로부터 사실상 통치자금의 상당액을 챙겨왔다. 미국은 그 동안 대화와 제재 두 가지 방법을 취해왔지만 북한 핵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분명한 것은 국제사회가 이 과정에서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집착이 대화를 통해 포기되는 것이 어렵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핵무기를 없애고 감시 시스템을 원상복귀하지 않는 한 협상과 지원은 없다는 원칙론을 차선책으로 유지하고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이 1994년 당시와 같은 북핵 인식틀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방북할 경우 이는 1994년의 재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은 고립 상황을 탈출하기 위해 그의 방북을 요란하게 선전하고 대화 중재를 이끌어내는데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결국 미국내 여론과 국제사회 동정여론을 등에 업고 북한은 대남 도발에 대한 사과나 핵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진전 조치 없이 협상장으로 돌아오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최소한 북한 문제에서만은 카터 전 대통령의 분별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카터 대통령은 재임 시절에는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퇴임 후에는 국제분쟁의 해결사를 자임하고 각종 봉사활동을 통해 빈민 구제활동을 벌이는 등 퇴임 후가 더 아름다운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노벨 평화상도 수상했다. 카터의 선의가 북한에 통하지 않는다는 점은 유감이지만, 중재라는 이름 하에 아흔 살을 앞두고도 북한의 핵 전략에 나이브(naive)하게 접근하는 그의 모습이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오바마 행정부는 ‘카터 전 대통령이 어떤 형태의 정부 메시지도 가져가지 않는다’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한반도 국민들도 카터의 방북에 기대보다 우려가 더 크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카터 전 대통령이 김일성에 이어 아들 김정일, 손자 김정은에게까지 ‘쓸모 있는 바보’가 되는 상황을 지켜봐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