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민주화는 ‘판도라의 상자’

(동아일보 2006-03-03)
이라크전쟁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라크는 물론 중동 전역이 불안정하다.

먼저 이라크는 신헌법 제정과 선거를 거치면서 정치의 혼란이 오히려 심해졌다. 선거 결과는 확정됐지만 의회는 문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 2월 들어 시아파와 수니파가 상대방의 사원을 서로 공격한 사건은 내전을 피하는 것 하나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이라크의 현실을 보여 준다.

팔레스타인 의회선거에서는 예상을 뒤엎고 무장단체 하마스가 승리를 거뒀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거둔 세금을 넘겨주기를 거부하고 있어 잠정 정부의 재정파탄은 시간문제다. 전면전을 향한 초읽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란 정부는 미국과 유엔의 비난을 무시한 채 공공연히 우라늄 농축을 시작했다. 북한에 이어 또 하나의 핵보유국이 생겨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중동은 왜 이처럼 불안정할까. 민주화 때문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럴 리 없어. 민주화는 안정을 가져다주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전은 이라크, 나아가 중동의 민주화를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말 속에는 중동 여러 나라가 민주화만 되면 정치와 경제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고, 그 결과로 국제질서를 혼란시키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들어 있다. 부시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 중에도 민주화에 의한 중동의 안정을 기대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사실 중동의 민주화는 완만하기는 하지만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이라크 의회선거는 사담 후세인 정권 아래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민주주의의 첫걸음이었다. 비록 하마스가 이겼다고는 하지만 팔레스타인 의회선거가 부정선거 활동의 결과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는 적다. 정당성을 다툴 여지는 있지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선거로 뽑힌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원하는 정부를 만드는 것이다. 지역민들이 편견을 갖지 않았고, 전쟁을 싫어하며, 자본주의경제를 옹호한다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이 같은 전제조건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민주화된 정부가 대외적 편견을 갖지 않는다거나, 전쟁을 하지 않는다거나, 자본주의 규칙을 따른다거나 하는 기대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의견을 통치에 반영하는 것이라면 그 사람들이 안고 있는 공포, 증오, 대외적 편견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 중동의 민주화는 독재정권이 때로 억눌렀던 ‘외부세계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해방시키려 하고 있다.

민주화가 진전된다고 해서 종교가 후퇴하는 것도 아니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높은 도시민도 신앙이 점점 깊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서구에서는 민주화의 기초가 된 도시화, 공업화, 중산층 형성 등의 변화가 중동지역에서는 종교의식의 강화와 발전을 부를 가능성이 있다.

이라크에서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이 선거 덕에 순식간에 정치쟁점으로 떠올랐다.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보다 주민들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 그것이 하마스의 승리를 불렀다. 핵 개발 강행이 이란 국내에서는 외국에 휘둘리지 않고 자국의 안전을 위해 의연한 태도를 지키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민주화는 지역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정치현상이다. 다만 민주화가 좋은 정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중동의 민주화를 추진하자는 구호 아래 일어나는 일들을 보라. 이슬람교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고 이웃나라나 서구국가에 대해 편견을 가진 정치세력의 활동이 활발해지지 않았는가. 중동의 민주화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있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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