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파 알아야 한국 사회·정치 이해할 수 있다”

구해우 미래전략원구원 이사장은 현재 부정경선 의혹으로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당선인에 대해 “한 스테이지를 스쳐가는 인물일 뿐, 본질은 아니다”고 말했다고 28일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그는 1980년대 후반 주사파 NL(민족해방) 계열의 최대 계파 중 하나였던 자민통 그룹의 책임자였다. 


구 씨는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통진당 종북논란의) 본질은 북한 노동당이다. 그리고 사람의 사상은 절대 쉽게 바뀌지 않는다”며 “이번 사태를 매개로 한국 정치에 대한 주사파의 영향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주체사상과 결별하고도 주체사상의 잔영은 남아 있었다”며 “인간 중심의 자주적 세계관에 빠졌던 20대 청년에겐 (주체사상은) 마치 종교였다”고 전했다.


구씨는 그러면서 “주사파를 이해해야 한국 사회와 정치를 이해할 수 있다”며 “87년 KAL기 폭파 사건 당시 주사파의 주류 지하조직은 반미청년회(책임자 조혁)였다. 주사파는 ‘총책’이란 표현을 안 쓰고 ‘책임자라고만 했다. 중심은 오직 북한 노동당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중앙방송(단파 라디오)과 ‘구국의 소리’를 통해 지하조직에 ‘KAL기 폭파 사건은 미국 CIA와 안기부의 음모’로 규정하는 지침을 내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땐 그걸 진실이라고 믿었다. 조직의 방송팀은 방송 녹취록을 만들어 전국에 뿌렸다. 반미청년회 조직부장이던 안희정 현 충남지사도 그 일을 지휘했다”며 “주사파는 전략적으로 사회의 약한 고리를 치고 들어온다. 밑에서부터 의혹을 양산하고 사람들을 의심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는 “천안함 사건을 보면서 이때가 생각났다. 그런 의혹이 어디서 생산되고, 어떻게 확산되는지, 혹시 그 배후에 주사파와 북한 노동당이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KAL기 사건 때 주사파의 메커니즘을 직접 작동시켰던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다”라고 호소했다.


구 씨는 또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어 2001년 6월 SK그룹의 경협 업무 당담자로 평양을 방문한 사례를 전하면서 “하늘에서 본 북한은 온통 민둥산이었다. 헐벗은 북한, 그리고 젊은 시절의 이상향. 그 사이의 괴리감이 참담했다”며 당시의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구 씨는 평양에서 자신을 찾아온 한 간부에게 “김정일과 만나도 더 협의할 게 없다”며 “자주적으로 살려면 당신들 더 고민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하자, 이에 북 간부는 “너 이 새끼, 그냥 안 둔다. 평양에서 못 나가는 수가 있어”라고 협박을 받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한편, 그가 몸 담았던 자민통(자주민주통일) 그룹은 민족민주해방(NL) 학생운동 계열의 분파 중 하나로 1987년 이후 ‘반미청년회’가 해체된 뒤 ‘조통그룹(조국통일촉진그룹)’, ‘반제청년동맹’, ‘관악자주파’ 등과 함께 대학가 4대 NL 그룹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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