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前유엔대사

▲ 미국 워싱턴 시내 미국기업연구소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한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급선회한 것이 국무부의 관료주의 때문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상주의와 원칙을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 동아일보

《2·13 베이징(北京) 합의 핵시설 폐쇄 이행 시한이 열흘이나 지났지만 사태 진전은 가로막힌 상태다. 미국 내에선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자금 송금이라는 기술적 문제 때문에 빚어지는 사소한 차질’이라는 시각과 ‘2·13 합의 시스템 자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비관적 시각이 엇갈린다. 본보는 대북 강경파의 대표적 인물인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를 만나 강경파는 왜 그토록 2·13 합의에 비판적인지, 그들이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인지를 들었다. 이어 조만간 미국 내 진보파 인사의 인터뷰도 게재할 예정이다. 당초 강온파 대표적 인물의 견해를 동시에 소개하려 했으나 진보파 인사들은 BDA은행 문제의 가닥이 잡힌 뒤 인터뷰하기를 희망했다.》

“애당초 북한은 비핵화를 이행할 의도가 없다. 지금 빚어지는 일은 단지 북한이 앞으로 벌일 긴 게임의 시작에 불과하다.”

존 볼턴 전 유엔대사는 나직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북한은 궁극적으로 합의를 통한 비핵화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접근법은 사실상 2·13 합의 내용의 재협상을 시도하는 것과 같다. 앞으로도 계속 자신들이 이행해야 할 것은 줄이고 외부로부터 받을 지원은 늘리려 할 것이다.”

―기술적 문제 때문에 빚어지는 일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는데….

“북한은 BDA은행 문제를 좋은 구실로 사용한다. 전형적인 북한의 협상전술이다. 미국에 더 큰 상처를 줘서 더 많은 걸 끌어내려는 것이다. 북한 자금을, 더군다나 미 재무부가 불법적 행위에 연루됐다고 밝힌 계좌주인의 돈까지 돌려주기로 한 것이 실수라고 내가 생각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국무부는) BDA은행 문제 해결을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의 전제조건으로 하는 데 동의하는 인상을 주어 결국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을 허용했다. BDA와 2·13 합의 이행 의무는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BDA은행 문제는 결국 풀릴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가 많은데….

“중단기적으로 북한은 부시 행정부의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릴 것이다. 실질적인 이행을 미룰 것이란 뜻이다. 그들은 민주당이 집권하면, 예를 들어 빌 리처드슨(뉴멕시코 주지사) 같은 사람이 북한 정책에 관여할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지속적으로 합의 이행을 회피할 것이다. 그들의 접근법은 적은 것을 포기하고 가능한 한 많은 지원을 얻으려는 것이므로 앞으로도 이번 같은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2·13 합의를 1994년 제네바 합의와 비교하면….

“뜯어보면 2·13 합의는 실패로 판명난 제네바 합의와 유사하다. 2·13 합의 지지자들은 이번엔 북-미가 아니라 6자가 합의했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6자 간의 나쁜 합의는 2자 간의 나쁜 합의보다 나을 게 없다. ”

―부시 행정부가 갑자기 스탠스(자세)를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

“국무부의 관료주의가 반영된 것이다. 지금 집행되는 이 정책들은 국무부가 6년 전에 하고 싶어 했던 접근법이다.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를 막았고 그것은 옳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대통령의 임기는 7년째에 접어들었다. 나는 여전히 부시 대통령을 지지하지만 지금의 정책은 일관성을 잃었다.”

―국무부가 주도권을 쥔 것은 딕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강경파의 영향력이 사라졌기 때문인가.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독재체제와 주민들의 비참한 상황, 그리고 북한 정권이 세계에 가하는 위협에 여전히 매우 강한 감정을 갖고 있다. 북한이 합의 준수 의도가 없음이 분명해지면 부시 대통령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북한 정권에 기회를 주려했지만 그들은 이행하길 거부했다. 그들이 의무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합의를 끝낼 것이다’라고.”

―하지만 강경파가 정책을 주도해 온 지난 몇 년간 아무 성과도 없었고 북한의 핵무장만 진전됐다는 비판이 있다. 미국의 태도 전환은 불가피하지 않았나.

“그렇지 않다. 미국이 중국과 북한에 더 큰 압력을 가했으면 성공 가능성이 더 컸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한반도의 분단 상태를 원한다. 중국은 미국과 한국을 막아 주는 완충 역할로 북한이 있는 것을 바란다. 북핵 문제가 해결될 유일하고 진정한 방법은 한반도의 민주적 통일이다. 나는 한국 정부가 북한의 인권 침해에 관해 더 많이 얘기하길 바란다. 김정일 치하에서 동료 한국인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한국 국민이 정확히 평가하기를 바란다.”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 북한이 더 움츠리고 문을 닫게 만들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때로는 진실을 얘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을 두려워하지 않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에 대해 갖고 있는 통제력에 손상이 갈 정도의 개방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정권의 종말을 의미하는데 그들이 자살을 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 많은 탈북자가 생기고 김정일의 수용소에서 주민들을 나오게 하는 것이 더 나은 치료법이며 건설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북한 체제의 급격한 붕괴는 남북한 모두에 재앙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면 단기적으로는 인도주의적 위기가 올 것이다. 그러나 1년∼1년 반 이내에 북한 사람 대부분은 북한으로 되돌아가고 한국에는 엄청난 투자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한국은 낮은 임금의 노동력을 얻게 되고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은 향상될 것이다. 통일 한국이 가져올 밝은 미래와 비교할 때 북한 체제 붕괴가 가져올 단기적 영향만을 두려워하는 것은 실수다.”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지난해 10월 북한 핵실험 후 초기에 한국의 반응은 바람직했다. 그러나 겨우 몇 달 만에 한국 정부가 ‘북한의 위협은 한국을 겨냥한 아니라 일본 미국과 지역 안정 등 전반적인 문제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는 데 놀랐다. 이건 동맹에 관한 얘기다.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가 세계적으로 위협을 가하고 있는데 누군가 그 정권의 유지에 도움이 될 지원을 제공하면…. 우리는 북한이 위협을 못하도록 ‘(동맹의 대열에) 함께 서야’ 한다.”

볼턴 전 대사는 이 대목에서 “북한 정권에 비현실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북한을 달래는 것(대북 포용정책)이 결국 이득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지만 역사상 어느 시대에도 달래기 정책은 장기적으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한미 동맹 관계의 현주소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미 동맹의 본질은 강한 상태로 남아 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같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에서는 때로 관계가 어려워질 때가 있다. 부침이 있지만 관계가 내려간다고 해서 영영 올라오지 않는 건 아니다. 성숙한 민주 정부들 사이의 관계에선 부분적으로 어려움도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걱정하지 않는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버지니아공대 사건이 화제에 올랐다.

볼턴 전 대사는 “엄청난 비극이지만 범인 개인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며 재미 한인 커뮤니티와는 관련이 없다. 범인의 (국적이라는) 배경이 한국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곤 전혀 생각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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