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반출 지휘 前부주석 이종옥

“일부 사람들이 동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시비한다지? 그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동무를 100% 믿소. 아니 200%, 300% 믿소.”

김일성 주석이 이토록 전폭적으로 신임한 인물은 누구일까. 바로 6.25전쟁 후 북한 경제를 일선에서 진두지휘한 리종옥(1916-1999) 전 국가 부주석이다.

15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노동신문은 “한평생 과학기술 영역, 국가 경제분야에서 땀흘려 온” 리 부주석의 삶을 한 면에 걸쳐 실어 눈길을 끌었다.

리 부주석이 김 주석을 처음 만난 것은 1947년 9월 함경북도 청진방적공장(현 청진화학섬유공장) 지배인으로 있을 때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김 주석의 부인 김정숙의 소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정숙이 광복 직후 청진에 머무를 때 문전걸식하던 한 처녀를 도운 일이 있었는데 이후 청진방적공장에서 일하던 그 처녀가 공장 지배인의 곤란한 처지를 하소연했다.

리 부주석이 당시 일제시대 한 지식인의 입당 보증을 서고 기사장으로 추천한 것이 문제가 됐다. 김정숙은 김 주석에게 이 사실을 말해 함경북도 현지지도 때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이뤄졌다.

사실 김 주석은 첫 대면 이전부터 그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부수상 겸 산업상을 지낸 김책(1903-1951)은 “똑똑한 지식청년을 한 명 찾아냈다”며 기뻐했고 청진지역 책임자였던 안길(1907-1947)은 “파악있는(사리분별이 뚜렷한) 기술자를 입당시켰다”고 보고했다.

여기에 오백룡.김려중 등 ’혁명 1세대’가 광복 전후 그의 반일애국 활동을 보증하면서 리 부주석은 출세가도를 달렸다.

이듬해인 1948년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을 시작으로 1949년 산업성 국장, 1950년 산업성 부상에 발탁됐다.

특히 6.25전쟁 당시 산업성 전권대표로 서울에 파견돼 리승기 박사 등 수백명의 과학자.기술자를 데려갔으며 1800여권의 조선왕조실록을 북송해 다시 한 번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이후 경공업상(1951), 국가계획위원장(1956), 당 중앙위원(1957), 내각 부총리(1960), 금속화학공업상(1962), 과학원장(1965), 광업상(1972), 정무원 총리(1977) 등을 두루 거쳐 1984년 최고인민회의 제7기 3차회의에서 국가 부주석에 올랐다.

노동신문도 이날 “광복 후 공장지배인에서 내각 참사, 상, 부수상, 내각 총리를 거쳐 국가 부주석에 이르는 체계적인 성장의 길을 걸었다”며 그의 화려한 경제관료 경력을 소개했다.

신문은 리 부주석에게도 시련이 있었지만 모두 김 주석의 각별한 애정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김 주석은 1970년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토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그에게 “준비를 잘 하라고 그렇게도 말했는데 고작 그게 다요”라는 비판했고 1982년 정치국 회의에서 광산실태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 강하게 질책했다는 것.

하지만 리 부주석에 대한 신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까지 계속됐다.

그는 1994년 7월 김 주석의 장례식에서 김 위원장,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강성산 총리에 이어 네 번째로 주석단에 올랐고 1998년 9월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명 예부위원장이 됐다.

신문은 김 위원장이 올해 2월 리 부주석의 자녀가 보내온 편지를 받아본 뒤 ’리종옥 동지는 수령님께 무한히 충실했던 우리 당의 훌륭한 동지였다’는 친필을 남겼다고 덧붙였다.

리 부위원장은 1999년 사망해 평양 애국열사릉에 안장됐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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