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공화국 탄생

 

이번시간에는 제5공화국의 탄생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80년대 중순, 관가와 공기업, 금융계는 숨죽인 채 서슬 퍼런 군부정권의 풍향에 안테나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대대적인 숙정이 곧 있을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 때문인데요. 아니나 다를까 6월15일부터 숙정의 태풍이 시작되었습니다.
국보위 즉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주도로 실시된 ‘공직자 숙정’ 작업이었습니다.
5⋅17 계엄을 통해 권력을 다진 군사정권이 대국민 민심확보를 위해 동원한 카드가 이른바 ‘사회정화’였는데요. 삼청교육대와 비리 공직자 추방, 금융계 숙정 등 일련의 ‘사회정화’작업이 동시에 추진된 것입니다.

‘중단 없는 사정’, ‘투명사회 건설’ 등의 명분을 내세운 사정태풍으로 장관 1명,
차관 6명, 도지사 3명을 비롯한 2급 이상 고위 공무원 24명이 강제로 퇴진했고 9월 까지 정부, 공기업에만 8,8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해직됩니다.

숙정 회오리는 금융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한국은행에서 35명이 해직당했고,
1980년 7월에는 은행과 보험 ⋅ 증권사 임직원 431명이 쫓겨났고, 9월까지 은행과 국영금융기관 임원들이 40%가량 쫓겨났는데요. 이들의 해직 사유는 ‘비리’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무슨 비리를 저질렀는지 구체적인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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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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