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까지 막전막후

“숱한 고비가 있었지만 판을 깨지말자는 공감대가 끝내 회담 재개를 이끌어냈다.”

마침내 6자회담이 재개된다는 중국 외교부의 공식 발표가 11일 오후 4시(한국시간)에 나오자 외교부 당국자는 `난산 속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반겼다.

지난해 11월 열린 5차 6자회담 1단계 회의가 이른바 ‘BDA(방코델타아시아) 암초’에 걸려 성과없이 끝난 뒤 6자회담은 1년1개월여간의 교착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사이 북한은 지난 7월5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맞춰 미사일을 발사했고 10월9일에는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실험마저 강행했다.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도 유엔 대북 결의로 맞서면서 한반도는 위기상황에 봉착했다.

으르렁대기만 했던 북미 대치상황이 돌파구를 찾은 것은 지난 10월 말 베이징(北京)에서였다.

중국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의 중재로 극비리에 머리를 맞댄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부장과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6자회담을 재개한다’는 원칙을 발표했다.

너무나 오랜 기간 교착상황에 만성화된 국제사회는 곧바로 6자회담이 열릴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북미 양측의 신경전은 갈수록 첨예화됐다. 결국 ‘판이 깨지고 마는구나’는 탄식이 나오려 할 즈음 북미 양측이 다시 베이징에서 회동했다. 이번에도 중국이 중재했다.

11월28일부터 이틀간 만난 북미 양측은 회담재개의 원칙을 구체화하기 위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회담이 열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미국은 북한측에 `조기이행조치’를 내밀었다.

미국이 첫날 회의에서 북한에 제기한 조기이행조치는 ▲영변 핵시설 가동중지 ▲국제원자력기구(IA EA) 사찰 수용 ▲핵 계획 신고 ▲핵실험장 폐쇄 등으로 요약된다.

특히 미국은 궁극적 목표인 ‘핵폐기’와 관련해 `2008년 중반’이라는 1차적 시한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내막적으로 ‘부시 행정부가 있을 때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라는 압박으로 풀이됐다.

대신 미국은 이런 제안을 수용하면 중단된 식량 지원 및 중유 등 에너지 제공은 물론 북한이 최고 협상 목표로 삼고 있는 북미 관계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적극 나서겠다는 강력한 약속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그러나 핵실험 강행에 따른 ‘핵 보유국’으로서의 처우를 원하며 미국측 요구에 대해 난색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둘째날 회의에서 중국이 중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에 공개된 내용을 놓고 추론해보면 중국은 북한이 취할 조치를 핵시설 가동 중지와 IAEA 사찰 수용 등 2개항으로 좁혔다.

대신 북한에 줄 카드로는 금융제재 문제에 관한 검토회의와 6자회담 공동성명에서 밝힌 미.북, 일.북 국교정상화, 경제.에너지 지원 등에 관한 검토회의 설치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제안에 대해 북한은 ‘검토할 만하다’는 의견을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북한과 물밑 접촉을 벌인 중국은 `연내 개최’를 목표로 삼은 뒤 구체적인 날자 택일에 들어갔다. 1차로 중국이 각국에 회람한 안은 ’16일 개최안’이었다고 외교소식통들은 전한다.

하지만 실무적인 이유로 북한이 다소 난색을 표했다. 미국 역시 16일 개최안을 받을 지 여부를 놓고 한때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초 16일 개최안이 언론에 전해진 직후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의 입장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그러던 미국이 결국 18일 개최안에 동의 의사를 밝힌 것은 의장국 중국의 전략이 주효했다는 후문이다. 중국은 관련국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문의를 1차로 한 뒤 구체적인 설명없이 전격적으로 당초 대안으로 내세웠던 `18일부터 회담한다’는 안을 회람시켰다.

상대국의 입장을 서로 타진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않은 중국의 의견수렴 방식에 각국은 반대의사를 피력할 경우 ‘판을 깬 장본인’이라는 오명을 쓸 우려가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국도 조기이행조치에 대한 북한측의 확답을 받지 않았으나 ‘이 정도에서 회담을 통해 결판을 내자’는 쪽으로 입장을 틀었다는 후문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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