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운동가 봉태홍의 명복을 빈다

오늘은 한 운동가의 너무도 때이른 죽음을 추도하지 않을 수 없다. 


봉태홍(奉泰弘) 라이트코리아 대표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19일 저녁 고려대 홍관희 교수와 십수 년째 ‘열린 좌우 대화마당’을 개최해온 코리아글로브의 김석규 운영위원과 함께 장례식장을 찾았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봉 대표를 잘 모른다. 어느 행사장에서 명함을 한번 교환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봉 대표의 부음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의 나이 겨우 53세, 요즘 평균수명으로 치면 이제 장년 세대다. 너무도 일찍 떠나버린 것이다. 


봉 대표의 부음을 접하는 순간, 지난 2005년 워싱턴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재미(在美) 북한인권운동가 남재중(南在重) 박사가 떠올랐다. 고인도 당시 60세였다. 그때만 해도 북한인권운동이 대중적으로 막 시작된 시점이어서, 가뜩이나 세력이 약한 북한인권운동 진영에서는 남 박사의 때이른 죽음이 더욱 안타까웠다. 


봉 대표의 죽음도 비슷하다. 그는 시종일관 종북척결운동에 앞장 서왔다. 필자는 남한 내 종북척결운동이 완료되는 시점을 평양의 김일성 가문에 의한 전체주의 수령독재체제가 붕괴되는 시기로 보고 있다. 이 시점이 종북척결운동이 객관적으로 완료되는 시기일 것이다. 물론 그 이후에도 남북한에 각각 소수의 김일성 추종 잔존세력들이 있겠지만, 이미 사회역사의 큰 흐름이 바뀐 뒤여서 전세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 전체의 정치 지형은 자유·인권·민주주의·법치·시장 세력 대(對) 전체주의 수령독재·핵무기·반(反)인권·반개방·불법 세력 간의 투쟁이 엄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반도에 살고있는 7500만 민족 전체의 대표성을 놓고 다투는 권력투쟁은 아직 본게임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봉태홍이라는 유능한 장수를 너무 일찍 잃어버린 것이다.


그는 생전에 억울한 경우를 많이 당했다. 특히 사회역사가 어떻게 진보하는지조차 모르는 3류 지식인들이 봉 대표에게 ‘극우세력’이라는 딱지를 붙였는데, 이는 사상과 이념 문제의 기초도 안 되어 있는 건달 지식인들이 그에게 가한 일종의 ‘테러’이다.


‘극우’가 되려면 특정 인종·종교 등에 의한 배타적 우월성의 광신(狂信), 의회· 법치의 부정(否定), 폭력의 정당화 등 제조건들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도리어 봉 대표는 ‘김일성민족 제일주의’를 추종하는 남한내 변태적 극우맹동주의자들을 투쟁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전체주의 수령독재 추종세력과 싸운 것이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 운동가로서 그의 실체적 진실이다.


한국사회는 경제분야에 대한 지식의 수준에 비해서 사상·이념 분야의 수준이 많이 뒤떨어져 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배경이 있을 것이지만, 봉 대표가 투쟁해온 종북세력들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봐야할 것이다.


어느 사회든 보수계열과 혁신계열이 있기 마련이다. 사회역사는 보수와 혁신이 상호작용하면서 변증법적으로 변화발전하는 것이다. 보수와 혁신 간의 상호작용 결과, 사회가 진보하든가 퇴보(반동)한다. 사회가 안정되게 발전하려면 보수 주류세력이 존재하고, 혁신계가 보수 주류세력이 고인 물처럼 썩지 않도록 계속 자극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종북세력이 ‘진보’라는 가면을 쓰고 치고 들어와 사회의 안정된 변화발전 구도를 흩트려놓았다.   


자유· 인권· 민주주의· 법치· 시장 세력 안에서도 보-혁 갈등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지금은 보수진영 안에서 자기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보수가 어떻게 변화하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결국 북한문제가 보수의 자기 혁신을 추동하면서 한국사회의 진보 에너지를 획득해갈 것이며, 이는 한반도 전체가 자유· 인권· 민주주의· 법치· 시장으로 통일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오늘따라 눈보라가 심하다. 살아생전 터놓고 소주 한잔 나누지 못한 아쉬움에 봉태홍 대표의 영전에 찬 술 한잔 올리며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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