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老兵’ 랜토스 美 하원 외교위원장 타계

▲아웅산 수지 여사 연금 해제를 촉구하는 시위에 참석한 랜토스 위원장. 출처:lantos.org

미 의회 내 대표적인 지한파이자 국제사회 인권문제 해결에 앞장서온 톰 랜토스 하원 외교위원장(민주.캘리포니아)이 11일 향년 80세를 일기(一期)로 사망했다. 그는 북한에 2차례나 방문할 정도로 북한 문제에도 큰 관심을 보여왔다. 국내에 미 하원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주도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타계한 랜토스 위원장은 미국의 대북 접근 과정에서 대화 노선을 중시해왔다. 그는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측과의 정기적인 대화를 갖고 미국이 적대 감정이 없다는 것을 북한 지도부에게 납득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올해도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는 북한이 핵 불능화를 완료하고 모든 핵 계획을 포기한다면 연내에 관계정상화도 가능하다며 북측의 선 행동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관계정상화가 실현된다 해도 북한의 인권문제는 양보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랜토스 위원장은 2006년 북핵 관련 청문회에서 “북한은 전세계의 스캔들”이라면서 “최근 방북 때 만난 북한군 장성들이 최신형 벤츠 승용차를 타는 반면 북한 어린이들은 기아선상에서 영양실조로 허덕이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당시 유엔의 대북 사치품 금수 결의안을 지지하면서 “제멋대로인 북한 지도부는 개인적인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랜토스 위원장은 인권 문제만큼은 한 치의 양보도 보이지 않았던 인물이다. 인권에 대한 그의 각별한 관심은 독특한 성장 과정과 맞물려 있다. 1928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랜토스 위원장은 유대인으로 나치에 맞서 저항운동을 벌였다. 나치의 헝가리 침공시 노동수용소에 끌려갔다가 탈출해 ‘홀로코스트’를 가까스로 면한 랜토스 위원장은 당시 체험을 바탕으로 의회 내 ‘인권 코커스’를 창설해 20여 년간 공동의장으로 활동했다.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친선대사를 만나고 있는 랜토스 위원장. 출처:lantos.org

고인은 1년 남짓한 재임 기간에 수단 다르푸르 인권유린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부시 행정부가 반대하는 아르메니아 학살 결의안을 단호히 지지하는 등 전 세계 인권과 자유 신장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노구를 이끌고 수단대사관 앞에서 인권유린 항의 시위를 벌이다 체포되기까지 했다.

그런 그는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한인 인질 사태 때 한국 국회의원단이 그를 만나 도움을 호소하자 “한국인 인질 사태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면서도 “하지만 원칙이 훼손돼서는 안된다. 나는 내 손자가 잡혔어도 탈레반과는 협상하지 않겠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국제사회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일생을 뛰어온 그의 활동을 기리며 백악관은 그가 사망하자 조기를 내걸었다. AP통신과 NBC, CNN, 뉴욕타임스 인터넷 판 등 미국 유력 매체들은 그의 사망 소식을 긴급 뉴스로 전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도 애도 성명을 잇따라 발표했다.

1980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14선(2년 임기) 끝에 지난해 1월 하원 외교위원장에 오른 고인은 자신의 삶이 이 자리를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직무에 정열을 쏟았다. 그러나 불과 1년여 만에 세상을 떠나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대학 졸업 당시 기념사진. 출처:lantos.org

이에 따라 미 하원이 최초로 채택한 ‘위안부 결의’는 그가 재임 중 남긴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로 남게 됐다. 한인 유권자들이 많은 샌프란시스코 남서부의 캘리포니아 12선거구 출신인 랜토스 위원장은 한인 동포들과의 간담회에서 위안부 결의 통과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자신의 “의무”라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나치 치하에서 모친 등 많은 가족을 잃은 고인은 한 스웨덴 외교관의 도움으로 숨어 지내며 지하 저항운동에 가담했고, 2차 대전 후엔 동구권을 장악한 소련 공산당에 맞서 반공운동을 펼쳤다. 고인은 1947년 미국으로 이주, 교수를 지내다 정치에 투신해 1980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고인은 2005년 1월과 8월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한 바 있으며, 외교위원장이 된 지난해 이후에도 재방북을 적극 추진하는 등 북한 핵문제 해결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북한 인권문제를 적극 거론하면서도 북한 핵문제는 협상과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왔다.

고인은 2004년 리비아를 방문,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를 만남으로써 리비아의 핵폐기와 외교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텄던 경험을 살려 부시 행정부에 북한과의 대화를 권고해왔다. 지난해 말 식도암 발병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만 해도 김정일을 직접 만나 핵포기를 설득하겠다는 열망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