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나라도 숨어다니며 무슨 개혁개방인가?

▲ 덩샤오핑(좌)과 김정일

어느 형사가 수차례 절도 전과를 갖고 있는 사람의 집을 찾아갔다가 혀를 내둘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중 삼중의 방범장치를 갖춘 것은 물론 유명 경비업체의 서비스까지 받고 있더라고 한다. 그 경비업체의 경비망을 뚫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절도범이 정작 자신의 집은 그 업체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사실 도둑질을 많이 해 본 사람이 자기 집은 더욱 튼튼히 지키고, 소매치기가 자기 물건은 철저히 간수하며, 성추행범이 자기 딸에게는 몸가짐을 반듯이 할 것을 유난히 강조한다. 자기가 범죄를 저질러 본 적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해커들이 방화벽 구축에도 능숙한 원리와 같다.

김정일의 중국 밀행을 보면서 이런 원리가 옳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 자신이 수차례 테러를 계획하고 지시하여 봤기 때문에 김정일은 테러의 두려움을 누구보다 강렬하게 느끼고 있으며 그것을 피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 보라. 주인집 빵조각을 훔쳐 문 강아지인양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그의 모습을.

쇼는 이제 그만하고 ‘실탄’을 보여라

지금껏 그의 모든 외국방문은 사전에 예고된 바가 없었고, 그가 국경을 넘자마자 시차(時差)를 두고 보도되었다. 물론 북한 국내뉴스에는 이미 귀국하고 나서야 방문사실이 보도된다. 인민들이 무섭기는 한가 보다.

2000년 8월, 그가 장장 20여일 동안 러시아를 방문하였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그의 특별열차가 지나가는 모든 역은 통제되었고, 철로변 100m마다 경찰관이 배치되어 여기에 투입된 사람만 9만 3천여 명이었다고 전한다. 또한 정차역에 동원된 경호요원들을 합치면 10만여 명에 이른다고 하니 가히 ‘기록적’이다.

김정일씨가 지나는 곳, 머무는 곳은 철통 같은 경비와 ‘청소’가 이루어졌다.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저격병이 배치되었으며 주위의 모든 상점은 문을 닫고 주변 건물의 모든 옥상은 봉쇄되었다. 역사 주변 수백 미터 이내의 통행이 완전히 차단되고 모스크바 교외선까지 운행이 중단돼 2만 5천명이 열차운행이 취소되거나 지연되는 불편을 겪었다. 오죽했으면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가 이것을 “공산주의의 망령”이라고까지 표현했겠는가.

세계 어느 나라 원수가 방문을 해도 이렇게 삼엄한 경비를 취하는 경우가 없어, 러시아 정부기관지에 해당하는 신문조차 “체첸전쟁 때 대통령의 안전을 위해 펼쳤던 경비조치는 이해할 수 있지만 왜 다른 나라 국가원수의 방문에 우리가 불편을 겪어야 하느냐”고 불평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아마도 김정일은 이런 삼엄한 경호와 비밀행각을 즐기는 것 같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몸값을 높이고 대외적인 신비감을 조성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이번 방중(訪中)을 보건대 이제 그 ‘약발’도 다 한 것 같다. 북한문제에 유독 관심이 많은 일본 언론이나 원거리 망원렌즈와 비밀카메라까지 동원해 김정일의 행적을 추적하려고 난리법석일 뿐, 이제 국내외 언론은 특별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필자 역시 그렇다. 그가 어느 강에서 유람선을 타든 어느 호텔에서 고기를 먹든 술을 마시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혹자는 그의 행로가 1992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우창, 선전, 주하이, 상하이 등을 시찰한 남순(南巡)의 여정과 비슷하다며 이를 “북한 개혁개방의 신호탄”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말은 지난 2000년부터 해마다 있어왔다.

벌써 5년이 지나가는데도 언제까지 ‘신호탄’만 쏘아 댈 것인가. 이웃나라 방문하는 것도 무서워 벌벌 기어 다니는 사람이 문을 활짝 열어놓겠다는 신호탄을 5년 동안이나 쏘아대고 있다면, 허풍이나 쇼, 거대한 기만극(欺瞞劇)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중요한 건 ‘실탄’을 보여달란 말이다.

덩샤오핑과의 비교는 고인에 대한 무례

햇볕정책의 기획자들은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 식의 개혁개방 노선을 취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자꾸 춘풍(春風)을 불어넣다 보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김정일도 바보는 아니어서 개혁개방을 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계속된 김정일의 외국방문을 보면 북한이 초보적 개혁개방 조치마저 취하기 힘든 첫째 이유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웃나라조차 벌벌 떨면서 방문하는 사람이 무슨 개혁개방의 선도자가 된단 말인가.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추진할 때 그렇게 수만 명의 경호인력을 배치하고 기차로 타고 갔는지 비행기로 타고 갔는지 논란이 있을 정도로 숨어 다녔던가.

덩샤오핑이 역사적인 남순강화(南巡講話)를 몇몇 간부들만 불러놓고 몰래 숨어서 했던가. 김정일의 이번 행보를 덩샤오핑의 남순과 비교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무례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김정일이 지은 죄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는 덩샤오핑과 비교조차 될 수 없고, 김정일 치하에서 북한의 개혁개방 역시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망상(妄想)에 불과하다.

곽대중 논설위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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