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민혁당 해체선언 이후에도 재건 활동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2번으로 출마한 이석기 후보가 법원에 의해 ‘김일성주의를 지도이념으로 하는 반국가단체’로 규정된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이 총책 김영환 등의 사상적 변화로 1997년 해체 선언된 이후에도 북한의 지령을 받아 활동한 하영옥의 지시로 조직을 재건하는 활동을 펼친 사실이 데일리NK 취재결과 29일 드러났다. 


민혁당은 1989년 조직된 김일성주의 청년 혁명조직을 표방한 ‘반제청년동맹’을 인적, 사상적으로 계승했다. 1992년 김영환, 하영옥, 박모 씨 등은 반제청년동맹을 계승해 종북 지하당인 민혁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1997년 총책 김영환을 비롯한 지도급 인사들이 북한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서 민혁당 해체를 선언했다. 


데일리NK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1997년 7월 민혁당 해체 당시 경기남부위원장이던 이 후보는 민혁당 해체 선언 이후 하영옥(서울대 법대 82)을 중심으로 조직 재건에 나섰다. 이 후보는 하 씨에게서 경기남부뿐만 아니라 영남위원회 조직까지 책임지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민혁당은 1997년을 기점으로 조직이 이분화 되는데, 이 후보는 사상적 전향을 거부하고 북한의 지도에 충실한 후기 민혁당에서 더 큰 중책을 맡게됐다. 그는 이후 공개적으로 자신의 사상적 전향 여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아왔다.


이 후보는 또한 민혁당을 이탈한 후배 박모 씨를 만나 “조직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는데 알고 있느냐. 조직 내부에 사상적으로 변절한 사람들(김영환 등)이 있어 전부 제명시켰다”면서 “제명된 인간들이 마치 조직의 중앙위원인양 행세하며 많은 동지들을 이탈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영환 등이 민혁당을 이탈하면서 북한 추종주의를 명확히 비판했지만 “북한을 추종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면서 오히려 이 문제를 사상적으로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하며 박 씨에게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후보는 민혁당 해체를 인정하지 않은 하 씨와 함께 활동하다 1999년 민혁당 사건이 발표되자 지하로 잠적해 3년여간 수배생활을 했다. 전향한 민혁당 성원들이 사건 발표 즉시 공안당국에 자수했던 것과도 대조되는 모습이다.  





이 후보는 2002년 5월 검거돼 구속됐다. 이후 그는 인터넷 매체 ‘민중의 소리’ 이사와 ‘사회동향연구소’ 대표 등을 맡아왔다.


◆후기 민혁당=1997년 7월 김영환이 주도해 민혁당 중앙위원회에서 2:1 찬성으로 민혁당이 해산되자 하영옥은 이에 반발해 당조직을 수습해 영남위원회와 경기남부위원회 등에 대한 조직관리를 지속했다. 그는 1998년부터는 북한에서 온 직파간첩을 직접 접선했다. 1998년 10월 하순경에는 직파간첩 원진우의 신분 위장용 주민등록증 발급을 돕는 등 간첩활동을 지원했다. 이후 새로운 대호명(對號名) ‘광명성’을 부여 받고 민혁당 총책에 임명됐다. 이석기는 김영환 등의 이탈 이후 하영옥으로부터 산하 경기남부위원회와 영남위원회 등에 대한 조직관리를 담당하라는 지시를 받고 조직관리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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