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찾아주세요’ 자전거 선물, 흔적없이 사라져

1990년 초 평양 가는 길에 중국 텐진(天津)을 방문했다. 경제특구를 조성하느라 어수선했다. 경제특구를 둘러보니 이제 시작이라 어려움이 너무 많을 듯하여 구경만 하고 자전거 공장을 방문했다.

나는 값싸고 튼튼한 텐진 자전거를 미국으로 수입하기 위해 평양 가는 길에 텐진공장을 방문해 수입상담을 했다. 당시 한 대당 30달러 정도면 미국 서부항구까지 도착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

미국 자전거 시장은 대만, 일본 순으로 수입되고 있었다. 미국으로 우선 100대를 주문하면서 문득 북한 생각이 났다. 북한은 교통수단이 너무 어려워서 이산가족을 찾는데 하루 수십리를 걸어 다녀야 한다. 그 고생을 상상해 보니 안타까웠다. 힘없고 배고픈데 매일 같이 수십리를 걸어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니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네들도 다 그렇게 어렵게 살았건만 잊혀진 옛 이야기처럼 돼 버렸다. 이제는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될 정도로 교통이 발달했다. 필자는 이산가족은 아니지만 이산가족의 아픔을 달래는데 일익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왈칵 내 가슴을 두들겼다.

이 자전거가 북으로 가면 이산가족을 찾는 데 일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측에서 이산가족 생사확인을 신청하면, 북한 내 관계자들이 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생사확인과 가족들의 안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산가족을 위해 수고하는 일꾼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산가족 생사확인용으로 자전거 선물

당시 평양까지 도착하는 가격을 20달러로 하고(장바구니와 잠금장치 포함), 즉시 평양을 방문해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안내원에게 100대의 자전거 선물을 ‘이산가족 사업용’으로 제안했다. 조건은 내가 지정하는 공장에 10대, 나머지 90대는 이산가족 찾으러 다니는데 교통수단으로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평양에 머무는 동안 답을 달라고 했다. 평양을 떠나기 전에 주문결정을 하기 위해서였다. 며칠 후 안내원이 대뜸 “그 자전거 살 돈을 현금으로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이유를 물으니, 애써 묻지 말라는 거다. 그렇게는 안 되고 자전거를 사서 보내주겠다고 대답했다. 당시의 총 경비는 평양까지 운반비 합해서 3000달러면 충분했다.

출국하면서 다시 말했다. 현금은 절대 줄 수 없고 자전거로 보내줄 테니 생각해 보고 연락을 달라했다. 두 달 후 평양을 방문하니 재차 현금을 요구했다. 이유를 또 물었다. 안내원은 공화국이 직접 주문하면 더 싸게 살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당시 나의 심경이 오락가락했고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현금을 줘야 하나? 냉정히 끊어야 하나? 며칠을 생각해 보자 하여 냉전이 계속 되던 어느날 다시 현금을 요구해 왔다. 에라! 한번 믿어 보자!

현금 3000달러를 건네주면서 영수증을 써 달라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찬구 선생은 속아서만 살았습니까” 영수증 서명 거부

그는 “찬구 선생은 속아만 살았습니까? 기분 나쁩니다!”고 했다. 당연한 상거래가 여기서는 통하지 않았다. 그 후 6개월 동안 수 차례 갈 때마다 ‘자전거 타령’을 하면서 확인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미 국가에서 구입해서 필요한 부서로 보냈다고만 말하고, 보여주지를 않았다. 그 이후로 자전거를 본 일은 영원히 없었다.

얄미워서 갈 때마다 자전거 타령을 했다. 나중엔 안내원이 바뀌고 말할 상대가 없어 잊혀지고 말았다. 거래하는 공장 사장에게 혹시 해외동포원호위원회에서 자전거 10대준다는 말 없었느냐고 물었더니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다. 거래하는 공장에 10대가 필요하다고 했던 것이 묵살되고 말았던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눈뜨고 날강도를 맞은 허탈감 때문에, 그리고 이 사람들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건지? 앞으로 이런 일들이 가끔은 있을 텐데, 나는 속이 상해 허탈감으로 괴로웠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대한다.

북한을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으로 그들에 대한 불신과 배신감과 황당함으로 나는 참으로 괴로웠다. 이후에도 이처럼 약속이 빗나간 사례가 밥 먹듯이 반복됐다. 자전거와 함께 북한에 대한 나의 신뢰 한 기둥이 무너지고 있었다.

김찬구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필자약력> -경남 진주사범학교 졸업 -국립 부산수산대학교 졸업, -LA 동국로얄 한의과대학졸업, 미국침구한의사, 중국 국제침구의사. 원양어선 선장 -1976년 미국 이민, 재미교포 선장 1호 -(주) 엘칸토 북한담당 고문 -평양 순평완구회사 회장-평양 광명성 농산물식품회사 회장 -(사) 민간남북경협교류협의회 정책분과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남대 북한대학원 졸업-북한학 석사. -세계화랑검도 총연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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