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총리 “후세인 사형은 독재시절에 대한 선고”

지난 5일 사담 후세인에 대한 사형 선고에 이어 7일, 후세인 재판이 속개되었다. 사담 후세인에 대한 사형 선고를 둘러싸고 분위기가 엇갈린 가운데 이라크 특별재판부는 추락한 독재자에 대한 재판의 고삐를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7일 속개된 재판에서는 쿠르드족 학살 사건에 대한 추가 심문이 진행되었다. 쿠르드족 학살 사건은 일명 ‘안팔 작전(Operations Anfal)’으로 명명되었다. 이란과의 8년 전쟁의 막바지에 후세인이 감행한 이 작전으로 인해 쿠르드족 수십만명이 숨지고 수백만명이 난민 신세가 되었다.

모두 8회에 걸쳐 수행된 안팔 작전 중 가장 끔찍했던 사건이 할랍자 마을 주민들에게 자행된 독가스 살포 만행이다. 전 주민 5,000여명이 화학탄의 가스로 인해 단 5분만에 거의 즉사한 이 사건은 추후 전모가 밝혀져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특히 이 실상은 지난 8월 22일 재판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이미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심문이 마무리 되었다.

재판부는 사형 선고 직후 재판을 속개함으로써, 이번에 후세인에 대한 사형 선고의 죄목이 된 두자일 마을 학살 사건 외에도 그에게 사형을 언도할 혐의는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암시하였다. 실제로 이미 그에게 기소된 혐의는 쿠르드족 학살 사건과 쿠웨이트 침공 전범 기소 건, 시아파 대학살 사건 및 다양한 형태의 수많은 정적 암살 혐의 등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이라크의 신정부도 후세인의 이 모든 혐의들을 소상히 밝힘으로써 역사의 기록으로 남긴다는 방침이다.

이번에 후세인에게 법정 최고형을 적용한 두자일 마을 학살 사건은 1982년 후세인이 두자일 마을 주민 148명을 몰살한 사건이다. 이는 1982년 7월에 발생한 후세인 암살 기도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바그다드 북쪽 60km 지점에 위치한 시아파 두자일 마을을 통과하던 후세인의 차량 행렬을 향해 기습적인 암살 공격이 벌어졌으며 후세인은 겨우 목숨을 건졌다. 1982년은 1980년 후세인의 선제공격으로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이 교착국면을 지나 이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세가 기울던 예민한 시점이었다.

보복에 눈이 먼 후세인은 두자일 마을 주민들에게 암살 음모를 들씌웠다. 두자일 학살 사건이 후세인의 직접 지시로 집행되었다는 것은 지난 4월 19일 관련 문서의 서명자가 후세인 본인으로 확인됨으로써 확정이 되었다.

후세인에게 사형이 선고되자 두자일 마을은 환호를 질렀다. 수많은 주민들이 거리로 몰려 나와 차량의 경적을 울리고 소리를 지르며 후세인의 사진을 불태웠다. 주민들은 학살의 기억과 함께 격분을 터뜨렸으며 후세인의 즉각 처형을 주장하였다.

후세인은 재판부의 사형 언도에 크게 반발하였다. 그는 재판관의 선고문 낭독을 무시하며 아예 듣지 않으려 하였다. ‘이라크 만세!’, ‘반역자! 점령자의 하수인들에게 죽음을!’, ‘점령자를 타도하자!’ 라는 구호를 반복적으로 외치며 거센 몸짓으로 항의하였다.

이러한 재판정의 모습이 TV를 통해 방영되자 이라크 국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대체로 시아파들은 크게 환영한 반면 수니파는 격렬히 반발하였다. 이라크 정부는 충돌을 우려해 통금령까지 내렸으나, 시아파는 후세인의 사형을 환영하는 현수막을 내건 채 행진을 벌였으며 수니파는 소총을 공중으로 쏘아대며 항의 시위를 펼쳤다.

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선고가 있은 지 3시간 뒤 TV에 모습을 드러내 후세인의 사형 선고를 환영하는 연설을 하였다. 그는 “후세인에 대한 선고는 일개인에 대한 선고가 아니라 그가 집권했던 암울한 독재 시절 모두에 대한 선고”임을 분명히 하고 “이제 이라크는 법과 정의가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도 후세인 사형 선고 소식을 놓치지 않고 ‘이라크 신생 민주주의와 새로운 민주 정부가 이뤄낸 성과’라는 평가와 함께 ‘이라크 민주주의의 중요한 좌표’가 될 것임을 강조하였다.

한편 핵 문제로 미국 및 서방과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이란도 국영 TV를 통해 후세인의 사형 선고를 특별 방송하였다. 이란 외교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후세인을 ‘전범’이자 ‘흡혈귀’로 지목하며 그의 사형 선고를 크게 환영하였다. 이란은 시아파 신정 국가이자 후세인과는 8년 전쟁의 악몽을 가지고 있는 관계로 후세인의 운명에 대해서만큼은 이례적으로 미국과 일치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후세인의 사형 선고는 미국의 이라크 종전 선언 후 3년 반, 후세인 체포 후 2년 및 재판 개시 후 약 1년 만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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