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의 11년 KEDO 경수로사업…잘못된 합의의 종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대북 경수로 제공사업이 현장인력의 전원 철수에 따라 사실상 그 마지막 국면에 이르렀다.

1994년 10월21일 제1차 북핵 위기를 봉합하는 북미 기본합의(제네바합의)에 따라 탄생한 KEDO경수로가 웅장한 원전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채 한낱 콘크리트 더미로 그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가 불거진 게 이번 종말의 직접적인 배경이 된 만큼 이 경수로는 핵 문제 때문에 생겨났다가 다시 핵 문제 탓에 생을 달리한 셈이 됐다.

그런 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1년여의 세월이었다.

이 경수로는 제네바합의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등장했다. 북한이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2003년까지 100만kW급 경수로 2기를 제공하고 그 완공 전에는 대체에너지로 중유를 제공한다는 게 합의의 골자였다.

당시 북한은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경제가 내리막을 걷는 가운데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정권붕괴가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많았던 상황이었다.

1995년 치열한 협상을 통해 한국 표준형 원자로를 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갔고 그 해 12월에는 KEDO와 북한이 경수로제공협정에 서명하면서 구체화됐다.

1997년 8월4일에는 금호지구 현장과 주계약자인 한국전력 사이에 8회선의 전용선을 개통한 데 이어 같은 달 19일에는 북한의 허 종 외교부 순회대사와 장선섭 경수로기획단장, 스티븐 보즈워스 KEDO사무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착공식을 가졌다.

제네바 합의 이후 첫 삽을 뜨기까지 만 3년이 걸린 것이다. 이 때만 해도 경수로는 북핵 문제의 해결을 통해 한반도 안정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남북협력을 통한 통일과정의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사업비용 문제에 대한 협상의 결과로 KEDO이사회는 1998년 11월 우리가 총공사비 46억달러의 70%, 일본이 22%를 각각 부담하고 미국은 중유공급과 나머지 부족분 조달에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쪽으로 비용분담 결의안에 합의했다.

우리 정부는 전기료에 이를 부과하는 방법을 검토하다가 부정적인 반응이 많자 결국 국채 발행을 택했다. 지금까지 국채로 조달한 자금은 2조7천억원이 넘는다.

2000년 10월에는 속초와 함경남도 양화항을 잇는 정기선이 다니기 시작했고 2001년 3월부터는 우즈베키스탄의 노무인력을 투입, 그 해 8월 정지공사를 마무리했다.

2002년에는 금호항 및 여객터미널 공사가 끝나고 금호병원이 준공되는 등 기반시설이 제모습을 갖춰가고 1호기의 콘크리트 작업에 처음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2호기에 콘크리트 타설을 시작한 다음 달인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국 특사의 방북과정에서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계획을 시인했다는 미국측 발표와 함께 제2의 북핵 위기가 터지자 경수로사업은 송두리째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이는 1996년 강릉앞바다 잠수함 침투사건이나 1998년 8월 북한의 이른바 `대포동1호 미사일’ 발사, 1998∼1999년 금창리 지하핵시설 의혹 등처럼 그 전까지 경수로사업 과정에 겪었던 악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몰고 온 것이다.

더욱이 미국에는 제네바합의를 일궈낸 민주당 정권이 떠난 자리에 제네바 합의 당시에도 경수로 제공에 부정적이었던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 있으면서 `경수로 불가론’이 확산됐다.

KEDO의 미국측 프리처드 집행이사는 2002년 12월 북한이 HEU계획을 포기하더라도 원전을 재래식 발전소로 대체해야 한다고 했고 2003년 1월 당시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제네바합의를 대체할 새로운 합의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북미 간에는 대결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한반도 긴장은 고조될 수 밖에 없었다.

KEDO는 2002년 11월14일 제네바합의에 따른 미국의 대북 중유공급을 중단하고 경수로사업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했고 북한은 이에 12월12일 핵동결 해제를 선언하고 이듬 해 1월10일에는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이에 따라 KEDO는 2003년 2월부터 공사속도를 늦췄고 북핵 문제의 진전이 없자 그 해 11월에는 12월부터 1년간 공사중단(suspension)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북한은 이에 반발, 11월6일 외무성을 통해 “미국이 중유 제공 중단에 이어 경수로 건설공사까지 그만두면서 조(북)미 기본합의문을 일방적으로 완전히 파기했다”며 “이에 대해 끝까지 계산할 것이며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금호지구에 들여온 장비, 설비, 자재와 기술문건의 반출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보상을 요구했다.

KEDO는 또 2004년 11월 공사중단 조치를 1년간 연장했다. 미국은 사업을 완전히 접겠다는 입장이었지만 북핵 문제 해결시 사업이 재개돼야 한다는 반론에 따라 죽어가는 경수로 현장에 다시 한번 보존.유지(P&M)조치라는 `인공호흡기’를 단 것이다.

이에 따라 2002년 중반 1천500명을 웃돌던 현장 인력들은 점차 줄기 시작했고 2003년 12월 우즈벡 인력에 이어 2004년 2월에는 북측 인력 100명도 모두 철수해 120여명만이 잔류하게 됐다.

사업비도 2000년 4억1천300만달러를 비롯해 2000∼2003년에는 매년 3억달러를 웃돌았지만 2004년 9천800만달러로 줄고 2005년에는 3천만달러에도 못 미쳤다.

현장 상황을 보면 종합공정률 34.45%에 취.배수 방파제와 용수 및 전력공급설비, 진입도로, 복지시설 등 원전 건설에 필요한 기반시설은 완공됐지만 발전소 본관 구조물은 21.6%의 공정률에서 멈췄다.

이 가운데 경수로 1호기는 원자로 건물의 외벽 및 보조건물 기초공사 등 구조물 작업까지 들어갔지만 2호기는 원자로 건물의 기초 콘크리트만 타설하고 2003년 12월 중단돼 콘크리트 더미로 남아 있다.

국내외에서 이뤄진 원자로설비 제작은 69.5%, 터빈발전기 제작은 47.5%, 보조기기 구매 및 제작은 20.6%의 공정률에서 더이상 진척되지 못했다.

KEDO는 그러나 청산비용 분담 문제를 놓고 이사국 간에 협의를 진행 중이어서 어느 나라가 얼마 만큼을 부담하게 될 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