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기 위해 남조선 깔고 앉아야”

16일 조간신문에 보도된 한국갤럽이 80년 이후 출생자 8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유심히 봤다.

응답자의 65.9%가 “북한과 미국이 싸우면 북한 편에 서겠다”고 밝혔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그러나 북한에 가서 살고싶다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신세대는 북한을 ‘적’도 아니고 ‘우리’도 아닌, 그저 불쌍하니까 도와주어야 할 대상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세대들의 관점이 과연 옳은 것일까. 북한에서 살다 온 기자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거짓말도 열 번하면 진실이 된다고 한다. 북한의 거짓말 공세가 지구성(持久性)을 띠고, ‘민족공조’에 장단을 맞추고 있는 현 정부의 무책임하고 안일한 태도 때문에 신세대들의 의식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더 이상 적이 아니며, 우리의 적이 될 만한 대상이 못 된다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지금 남한은 못살고 못사니까 도와주어야 한다는 인본주의 논리로부터 시작해 북한의 ‘민족공조’에 동조하면서 자발적 무장해제를 자초하고 있다.

“우리가 살기 위해 남조선 깔고 앉아야”

2000년 남북정상회담 후 북한을 방문한 남한사람들은 거리곳곳에 붙여진 “조국통일” 구호, 만나는 사람마다 “통일”을 외치는 모습을 보고 “북녘사람들은 모두 통일열병에 걸려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 DJ가 평양을 다녀간 다음 북한사람들은 금세 통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떠 있었다. 셋이 모이면 “북조선의 정치와 남조선의 경제가 합치면 우리 나라는 정치대국, 경제대국, 군사대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음미해보면 북한의 수령-당-대중을 일컫는 일심단결의 정치구도 아래서 남한의 경제를 흡수하겠다는 뜻이다.

또 북한당국은 각종 남북회담과 6자회담이 결렬될 때마다 “미국의 압력 때문에 우리가 못산다”는 해괴한 논리로 주민들에게 반미감정을 심어 왔기 때문에, 가난에 찌들리고 분노밖에 남지 않은 주민들은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는 남조선을 깔고 앉아야 한다”는 언사도 주저하지 않는다. 남한 경제를 먹어야 우리가 산다는 뜻이다.

이것 또한 지난 세월 미국은 침략자, 남조선은 그의 식민지라는 세뇌교육을 많이 시켜온 결과, 비뚤어진 북한 주민들의 통일관이다.

‘민족공조’ 잇는 통일방안 없어

설문에 응한 젊은이들에게서 통일에 대한 뚜렷한 견해나 대책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평화주의와 안일에 빠져있다. 그러기에 “북한이 미국과 싸워 이기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질문에는 대답이 없다.

이 또한 북한을 경시하는 사회교육이 낳은 절름발이식 병폐다. 사회제도가 다르고 이념이 다른 두 체제를 어떻게 정합시키는가 하는 문제를 젊은이에게 응당 교육을 시켰어야 옳다.

뚜렷한 통일대안도 없으면서 북한이 외치는 ‘민족공조’를 똑같이 외치는 것은 북한의 전략에 끌려 들어가는 결과밖에 없다. 통일로 가는 뚜렷한 수순과 이정표도 없이 그저 도와주다 보면 북한도 변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은 김정일 독재정권의 수명만 늘여주는 것이다.

대북지원을 하더라도 북한의 수령독재체제를 변화시키면서 퍼주어야 제대로 된 수순이 아닌가.

평화적 무장해제, 평화적 약탈주의

지금 북한이 노리는 것은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민족공조’를 통한 ‘평화적인 무장해제’이며, 하나는 자세를 낮추고 남한에 붙는 척하며 실리를 챙기는 ‘평화적 약탈주의’이다.

‘민족공조’와 ‘우리민족끼리’ 구호로 남한을 무장해제시키고 등을 두드려 오로지 경제지원을 타내는 것이 북한의 속내다.

북한주민들은 남한의 경제가 선박, 자동차, 반도체, 건설, 철강 등 5대 분야에서 세계적인 선진국가 수준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남한의 선진적인 경제를 바탕으로 핵무기를 보유한 ‘김정일식 통일국가’를 세우려는 것이 꿍꿍이다.

물론 김정일이 그런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과 실제 남한을 접수할 능력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별개이긴 하지만, 적어도 김정일이 핵무기를 기반으로 그런 속셈을 갖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지금 김정일은 중국의 지원과 남한경제를 뜯어먹는 것 외에는 달리 독재체제를 유지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을 너무 경시하고 있다. 그러나 ‘별것 아닌’ 북한이 핵무기를 빌미로 남한경제를 인질로 삼아 ‘우리 같이 망할래, 경제지원 할래’ 식으로 노골적으로 나오는 날이면 남한경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지금 김정일은 그런 상황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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