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친구들은 김정일 충성심 같은 거 없다”

▲ 북한의 청소년들

“자유로운 곳에서 더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에 두만강을 건넜어요”

이달 초 옌지(延吉)에서 지난 2월 국경을 넘었다는 17세 탈북 청소년 성철이를 만날 수 있었다. 성철이는 함남 함흥 출신이다. 성철이가 제대로 학교를 다녔다면 지금쯤 고등중학교 6학년(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성철이의 장래 희망은 체육 교사. 그러나 성철이는 제대로 배울 것이 없는 학교에 일찌감치 흥미를 잃었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에 가는 대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우리식대로 하면 불량청소년인 셈이다. 그러나 그의 항변을 투정으로만 몰아세우기는 힘들어 보였다.

“학교에 나가봤자 배우는 게 없어요. 모범적으로 강의를 열심히 하는 선생님도 있지만, 열에 여섯은 수업시간 절반 가까이 농질(농담)이나 해요. 국어나 수학도 배우지만 어렸을 때부터 외워야 하는 혁명역사(김일성·김정일 우상화 교육)는 정말 싫었어요.”

“공부를 열심히 해도 대학은 못가잖아요. 공부는 못해도 돈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어요. 지금은 토대도 상관없이 무조건 돈만 있으면 돼요. 능력이 있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거죠. 학교에서도 보장을 못해줘요. 학교 자체도 힘들어서 선생님 월급도 제대로 못주는데요. 말만 학교인 셈이죠.”

결국 성철이는 학교에 등록만 하고 나가지 않았다. 선생님이 집에도 찾아오긴 했지만, 학교 간다고 거짓말 하고 다시 친구들과 놀러다니기 일쑤였다. “한국에서는 그런 학생들을 ‘불량 청소년’이라고 부른다”고 하니까 “거기(북한)에서도 ‘불량 학생’이라고 불렀다”며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나 성철이는 싸움을 하기 시작한 것도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방식이었다고 했다. “(북한은) 부자하고 주먹 센 놈만 사는 거예요. 부자도 아니고 주먹도 세지 않으면 바보 취급이나 받고. 그래서 힘이 세지고 싶었어요. 그래야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정을 받죠. 그런데 돈이 없으니 공부해서 뭐하냐. 대학도 못가고 출세도 못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죠.”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라나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도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김정일한테 충섬심 갖고 있는 애들은 무식하다고 놀리기까지 해요. 그런 생각 갖고 있는 애들은 지금은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김정일한테 충성심 가지면 무식하다고 놀려”

북한에서도 ‘모범생’으로 불리는 학생들은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지만, 성철이와 같은 아이들은 학교 시스템이나 가정 교육이 붕괴된 상황에서 길거리로 떠돌 수 밖에 없다.

‘불량 학생’이었던 성철이는 어느 날 더 이상 이렇게 지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선생님의 집을 찾아갔다. 선생님의 집안일을 도와주며 공부를 배우기 시작한 성철이는 더 큰 세상을 보기 위해 혼자 몸으로 길을 떠나게 된다.

“군대를 가고 싶기도 했는데 너무 길기도 하고 불량아여서 못 갔어요(웃음). 동네에서도 우리 패가 제일 세거든요. 그러다가 우리가 이렇게 주먹을 휘둘러서 뭐하냐는 생각도 들고 나이가 드니까 공부가 하고 싶은 거예요. 그때부터 선생님 찾아가서 일도 해주고 공부도 배우고 그랬죠.”

성철이는 “낯선 중국생활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거기서 많이 힘들어 봤으니까 여기서는 힘든 것 없다”며 일 없다고 말했다. 그러다 이내 의젓하게 “조선도 한국처럼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자유롭게 대학도 다니고 평등하게 살았으면…”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성철이의 가장 큰 재산은 친구들이다. 지금도 힘들 때면 친구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달래곤 한다. “친구들하고 같이 다니면 무서울 게 없었어요. 같이 싸움도 하고, 선생님도 놀려주고, 우리끼리는 못하는 얘기도 없었어요. 그런데 재미있어도 배는 곯잖아요. 어려운 친구들한테는 밥이랑 빵도 갔다 주고 그랬어요.”

“놀러나가도 돈이 없어서 힘들었어요. 100리 200리를 걸어갔다 오기도 하고. 어느 날은 만났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하루 종일 그냥 앉아있었던 적도 있어요.”

성철이는 지금도 식량난 시기를 기억하고 있다. “6살 때였는데 집이 너무 힘들었어요. 먹을 게 없어서 삵뿌리 먹던 생각도 나요. 그때 동생이 4살이었는데, 강도한테 맞아서 죽었어요. 동생이 죽은 날 아침 아빠가 멍하니 앉아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위로해주고 싶었는데….”

성철이는 나중에 북한에 돌아가면 부모님한테 효도하는 게 제일 큰 소원이라고 했다. “잘 돼서 엄마, 아빠한테 용서받고 싶어요. 학교도 잘 안다니고 주먹만 휘두르고, 지금도 이렇게 나와 있는데…” 부모님 얘길 하며 금새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이 영락없이 17살 소년의 모습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성철이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 건 “뭐든 많이 배우고 싶다”는 성철이의 반짝거리는 눈망울 때문인 것 같다. 언젠가 다시 만날 성철이가 자유 북한의 번듯한 ‘청년’이 돼어있길 진심으로 빌어본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