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장마당에 프린터는 없을까?

“‘고양이뿔’ 빼놓고는 다 있다.”

북한의 장마당에 어떤 물건들이 판매되냐고 물을 때면 북한 주민들은 종종 이렇게 대답한다. 없는 것 빼놓고는 다 있다는 말이다.

한국 정부의 햇볕론자들은 북한의 장마당이 이렇게 성행하는 것을 햇볕정책의 성과인양 내세우곤 하지만, 햇볕정책 이전에도 장마당은 있었다. 또한 북한의 장마당은 북한 위정자들이 그 무슨 선의(善意)로 도입하거나 허가한 것이 아니라 굶주림에 못이긴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고 지켜낸 전취물(戰取物)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북한 당국은 어떻게든 장마당을 없애고 통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북한 장마당에서는 컴퓨터도 거래된다. 물론 길바닥에 상품을 늘어놓고 판매하거나 그럴듯한 진열장을 갖추고 장사하는 것은 아니다.

“색 텔레비, 일본제 ‘토시바’, 새 것, 35만원, 중형, 가격 흥정 있음”, “냉동기 소련제 ‘세레나’, 새 것, 25만원, 대형, 가격 흥정 있음”, “녹음기, 쌍나팔, 일본제 ‘싼요’, 새 것, 12만원, 가격 흥정 없음”, “각종 중고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종이에 가격을 적어놓고 장마당에 앉아 있으면, 물건을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이 찾아와 흥정을 시작한다. 가격이 합의되면 집으로 데리고 가서 매매한다.

삐라 제조 우려, 프린터는 개인 소유 안 돼

최근 기자는 평안남북도 일대를 상권으로 장사하는 중국 화교에게서 북한 장마당의 컴퓨터 물가에 대해 들었다. (관련기사 “北 장마당에서 컴퓨터도 사고 판다” 참조)

그런데 문득 북한 장마당에서 ‘프린터(인쇄기)’는 얼마에 거래되는지 궁금해졌다. 컴퓨터가 거래된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누군가 ‘프린터를 사고 팔았다’는 이야기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취재원 역시 “한번도 프린터를 팔아볼 생각은 안 했다”며 자기도 그것이 궁금하다는 반응이었다. 이번 기회에 새로운 판매 품목을 개척할 수도 있겠다는 들뜬 목소리가 느껴졌다. 며칠 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럼 그렇지, 역시 조선은 조선입니다.” 이것이 그의 첫마디였다.

“조선에서 프린터는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물건입니다. 아직 그런 사례가 없지만, 만약에 걸리면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북한 고수입 노동자의 2~6년치 월급을 모두 모아야 살 수 있는 컴퓨터를 개인이 소유한다는 것은 아직 꿈만 같은 이야기지만, 설령 컴퓨터를 개인이 소유한다 해도 프린터는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간단하다. 북한 사회는 개인이 어떤 문건을 출력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따라서 개인이 프린터를 갖고 있다면 무언가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다는 증거 밖엔 안 된다. 예컨대 삐라(유인물)를 제작한다든지 하는 용도로 말이다.

만약 개인이 프린터를 갖고 있으면 번거롭고 귀찮기도 할 것이다. 인근에서 삐라 사건이라도 일어나면 곧바로 자기 집부터 수색을 당할 것이고, 시시때때로 공안기관에 불려가 조사를 받을 것이다. 무엇을, 무슨 용도로, 얼마만큼 출력했는지 낱낱이 보고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느니 안 갖는 게 낫다”고, “애초에 프린터를 소유할 생각조차 않는다”고 소식통은 전해왔다.

전화를 끊고, 소식통이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했던 첫마디가 자꾸 떠올라 하루 종일 씁쓸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럼 그렇지. 역시 조선은 조선이야.”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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