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훈아, 미국은 북조선 인민의 편이야”

영훈아. 정말 오랜만이다.
그동안 연락 못해 미안하다. 2000년에 고향땅을 떠나 중국에서 3년을 떠돌다 어렵게 남조선에 왔다. 개인적으로 그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져 소식 전하기 어려웠다. 생사를 오가는 일이어서 그랬다. 이해해주면 고맙겠다.

어머니는 잘 계시는지? 어머니 건강이 걱정된다. 늘 기침이 심하셨는데, 풀죽이라도 있으면 아들에게 밀어주고 어머니는 굶으셨지… 그게 벌써 5년이 넘었구나. 식량사정은 좀 나아졌는지 궁금하다.

내가 탈북하여 여러 곳을 둘러보았는데, 세상은 참 넓고 북조선보다 사람이 살만한 곳도 많구나 싶다. 지금은 남한에 정착하여 ‘사람다운 자격’을 가지고 살고 있다. 너도 알다시피 당생활총화요, 노력동원이요, 학습이요, 무슨무슨 교양이요 해서 우리는 우리 생각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지 못했다.

남한에 와서 보니 제일 좋은 게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북조선에서 받아왔던 30년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유롭게 내 생각을 말한다. 이것이 진정 자유의 고마움 아니겠나.

내가 본 미국

영훈아. 우리가 북조선에 함께 있을 때 늘 미국놈들 등쌀에 우리가 못산다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남조선에 와서 몇 해를 지내고 보니 그게 사실이 아닌 것같다.

해마다 6월이 되면 ‘6.25 – 7.27 미제(美帝)반대투쟁의 날’에 북조선에서는 반미투쟁선전을 지겹도록 했지. 구호를 외치고, 부수고, 총창으로 찌르고, 사람들 들볶고… 항상 나무 총을 메고 전시 비상배낭을 메고 다녔는데, 지금은 그런 부담이 없다. 평양과 지방에서 ‘미제’를 반대하는 군중대회를 열고, 신천박물관과 ‘102 어린이 묘’와 ‘400 어머니 묘’를 견학하고 미국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가졌었지.

그러나 남조선에 와서보니 북조선의 반미교양이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북에 있을 때 ‘조국해방전쟁’은 미제가 일으킨 북침전쟁이고 남조선은 미국의 식민지 예속국가라고 교양을 받았는데, 실제 와서 보니 우리는 엉터리로 배웠다는 것이 다 드러났다.

북침했다던 미군과 남조선 군대가 3일만에 수도를 빼앗겼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6.25전쟁은 김일성이 일으킨 남조선 침략전쟁이었고, 미국과 유엔군을 한편으로 하고 소련과 중국이 다른 편으로 한 국제전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미국은 ‘침략자’도, ‘승냥이’도 아니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주기 위해 온 지원군이었다. 북조선에서는 미국을 침략자라고 하지만, 그건 역사 날조라는 사실이 여기에 와서 분명하게 밝혀졌다.

북한정권이 미국을 계급적 원수로 적대시해온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본다. 북한에서는 지주 자본가 반동계급을 모두 숙청했고 그것은 이미 50년대에 다 끝난 이야기였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가 인민학교에 들어간 이후에 북한에 무슨 지주 자본가 계급이라는 게 있었나? 이미 오래 전에 숙청되었는데도 우리는 지주 자본가, 반당종파분자, 기독교인들 적대계층 사람들을 저주했다. 이미 세상에 있지도 않은 사람들을 저주하고 아무 죄없는 그 후손들까지 증오한 것이다.

그리고나서 또 미국을 계급적 원수로 적대했다. 북조선식으로 말한다 해도, 계급적으로 보자면 미국의 지주 자본가 빼놓으면 적대시 해야할 이유가 뭐가 있나? 그런데도 무조건 미국을 적대시한 것은 김정일 정권이 우리 인민들이 증오해야 할 대상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내 생각이 틀릴 수 있겠지.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라. 북조선에서는 늘 증오해야 할 대상을 만들어온 것은 엄연한 사실 아닌가. 지주 자본가 계급이 없어지고 나니 그 자리에 미국을 집어넣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북한정권은 그렇게 해야 정권이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김정일이 쪽잠자고 줴기밥 먹는 것 다 거짓말이다

지금 북조선 인민들은 북한정권이 ‘백년숙적’ 이라고 규정한 미국으로부터 근 10년 동안 식량을 지원받고 있다. 그러면 미국이 북한을 침략하겠다고 하면서도 식량을 지원해주는 까닭은 무얼까?

문제는 북조선과 미국간의 싸움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미국과, 북조선 인민들을 억압착취 하는 김정일 정권과의 싸움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60년 동안 이밥에 고깃국을 먹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실행된 것은 하나도 없고 300만 명의 솔직하고 고지식한 사람들을 죽인 것밖에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게 무언가?

그리고 수십만 명의 우리동포들이 그리운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해외에서 떠돌고 있다. 짐승도 제 새끼는 잡아먹지 않는다고 했다. 북조선 사람들을 굶겨죽인 게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인가? 군사압력 때문인가? 미국이 북조선을 먹어서 무엇 하나? 북조선 사람들이 굶어 죽은 것은 김정일이 개방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 북조선 인민들이 무리로 굶어 죽을 때 김정일은 쪽잠(새우잠)과 줴기밥(주먹밥)은 다 거짓말이고, 비싸디 비싼 외국제 고급요리를 먹고 수상스키를 타며 놀았다는 것을 옛 김정일의 요리사가 다 폭로했다.

북조선 사람들이 못사는 이유

수천만 명을 죽음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히틀러도 자기 국민을 죽이지 않았는데 김정일은 자기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수백만의 우리 동포들을 죽였다. 지금 김정일 정권이 하고 있는 반미교육은 북한인민들을 또다시 죽음으로 내모는 기만적인 교육이다. 한창 배워야 할 어린이들에게 나무 총을 메워 ‘총폭탄’이 되라고 강요하는 교양은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

우리는 전쟁을 겪은 민족으로 전쟁의 아픔을 안고 있다. 전쟁은 민족이 망하는 길이다. 영훈이 너도 잘 알지만 솔직히 북조선 인민들에게 핵무기라는 물건이 아무런 필요 없지 않나? 핵무기가 밥을 주나, 집을 주나? 핵무기란 것이 오로지 김정일이 자기만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물건 아닌가 말이야. 북조선 인민들이 뼈빠지게 번 돈을 가지고 김정일이 만든 범죄의 무기가 핵무기 아닌가 말이다.

영훈아.
자본주의 사회는 이미 먹을 걱정이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오직 공산주의를 한다는 나라들만 지구상에서 먹을 게 없어 가난과 굶주림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솔직히 북조선은 사회주의도 아니고, 오로지 김정일 한 사람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2300만 인민들이 무조건 봉사하는 사회 아닌가.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했다면 자기 가족 전체가 다 굶어 죽으면서도 “김정일장군님은 건강하십니까? 우린 죽어도 좋으니 심려를 끼쳐드리지 마시오…” 라고 천진하기 짝이 없고, 왜 죽는지도 모르는 바보로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올해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조선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규정하고 북조선에 자유와 평화를 약속했다. 부시의 말은 결코 북조선 인민들에게 한 선전포고가 아니다. 그것은 자유와 평화의 원수 김정일 정권을 목표로 한 선언이다. 북조선도 남조선처럼 매가정에 자기 자동차를 가지고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없이 살려면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고 개혁개방하는 길밖에 없다.

사담 후세인을 보라, 자기국민들을 억압하고 나라의 돈을 빼돌려 다른 나라 은행에 저금하고 영생을 부르짖다가 포로가 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김정일도 틀림없이 사담 후세인의 뒤를 따라갈 것이다. 너도 남조선 신문을 보면 후세인이 한 짓과 김정일이 하고 있는 짓이 어찌도 그렇게 똑같은지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훈아.
보고 싶다. 그래도 지금은 볼 수 없다. 김정일 정권이 살아있는 동안은 아마도 만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이 결코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회령에서 ‘김정일 타도’ 비밀조직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옛날에도 그런 소식을 들은 적은 있지만 한참 뒤에야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그 내막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었다. 북조선 인민들도 언젠가는 들고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그 맹아가 보이고 있다.

우리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날 너와 만날 수 있겠지. 그때 가서 너와 부둥켜 안고 마음대로 울고, 또 웃고 싶다.

자유로운 그날 너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 서울에서. 2005년 1월 28일 –

한영진(평양출신 2002년입국) 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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