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크로싱’ 감상문 공모전 최우수작 ‘단비와 꿀비’

‘시간이 없단 말입니다!’

재중 독일 대사관에 뛰어든 용수(차인표 분)가 다급하게, 그리고 절박하게 소리친다. 담당 공무원은 난감함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지금 저희로서도 방법이 없습니다. 시간을 가지고 좀 기다려 보시죠.’

영화 crossing의 한 장면이다. 이는 북한인권에 대한, 북한사회와 한국사회의 현재적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북한의 인권 상황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절박하다. 그러기 때문에 머뭇거릴 시간이 없지만, 그 절박함에 비한다면 한국사회는 너무도 차갑다.

얼마 전 북한의 실상과 인권문제를 다룬 영화가 개봉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사례는 적을뿐더러, 매우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출연 요청을 몇 차례 거절 하다가, 탈북자 수기를 읽고 눈물과 고뇌로 주인공을 결심했다는 차인표의 일기를 읽었다. 영화를 기획하고 만든 제작진과 배우들의 노고에, 개인적으로 매우 고맙고 감사하다. 영화 crossing은 뮤지컬 ‘요덕스토리’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문화 컨텐츠가 없는 상황에서, 북한인권문제 대중화에 ‘가뭄의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참으로 다행이다.

선생님, 도와주십쇼, 살려주십쇼!

‘북한의 참혹한 실상을 1/10도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제작진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영화를 본 필자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북한의 참혹한 실상을 이렇듯 시각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그 무엇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crossing은 북한사회의 일상적인 굶주림과 헐벗음, 질병과 폭력, 그리고 감시와 공포를 너무도 잘 묘사하고 있다.

더욱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건과 상황, 배경묘사 등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에 기초한다. 주인공 용수와 준이의 엇갈림은, 아들을 차가운 몽골사막에 묻고 외로이 한국으로 와야 했던 어느 탈북 부자(父子)의 실제 이야기다. 준이와 미선이가 신발을 꼭 끌어안고 자는 장면을 봤을 때, ‘자고 일어나면 신발까지 벗겨가는 사회가 북한이다’라는 어느 탈북자의 수기가 떠올랐다. 영화 중반에 용수처가 쌀독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쌀독에 쌀은 없고, 누리끼리한 무언가가 있다. 북한주민들의 일반적 주식은 쌀밥도 옥수수도 아닌, ‘강낭쌀’이다. 강낭쌀은 옥수수 말린 것을 먹기 편하게 쌀 크기로 잘게 부순 것을 말한다.

crossing이 보여주는 사실적 북한묘사의 극치는 바로 ‘장마당’ 장면이다. 필자는 북한의 실상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장면에서 분명히 눈물을 흘렸으리라 확신한다. 양쪽으로 줄을 이어 있는 장마당 마대의 모습, 쓰레기더미에서 먹을 것을 찾는 아이, 빵을 훔치다 잡혀서 매를 맞는 와중에도 정신 없이 빵을 입에 밀어 넣는 아이, 남은 국수국물을 얻기 위해 비닐봉지를 들고 손님이 국수를 다 먹기를 기다리는 어린 꽃제비들. 영화를 보던 필자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어린 꽃제비들이 입고 있는 옷과 행색,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자세, 무표정한 표정은, 몇 해전 중앙일보가 입수 발표한 함경북도 청진시의 신안장마당 영상(몰래 카메라)과 눈물이 날 정도로 흡사하다. 더욱이 crossing은 장마당 꽃제비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쌀 포대에 ‘대한민국’과 ‘USA’라고 쓰여진 모습을 담는 날카로움을 잊지 않았다.

이렇듯 crossing은 북한의 참상을 잘 보여준다. 흔히 영화는 ‘사실에 기초한 허구’라고 하지만, crossing의 모든 장면은 결코 거짓이거나 과장된 게 아니다. 교차검증 된 탈북자의 공통된 증언과 사진, 몰래 찍은 영상 등, 오히려 철저하게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어쩌면 오히려, 제작진의 말처럼 ‘북한 실상을 1/10도 표현하지 못해서’ 다행인지도 모른다. 만약 나머지 1/9를 마저 표현했다면, 그 영상이 너무도 끔찍하여 영화를 볼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살려주십쇼, 도와주십쇼, 선생님! 살려주십쇼!’

독일 대사관에 뛰어든 용수가 또 외친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용수만의 외침이 아니다. 영화에 등장한 용수 가족의 외침이며, 강을 넘다 죽은 탈북자의 외침이며, 노동 단련대에서 부지기수로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외침이며, 장마당에서 걸식하는 어린 꽃제비들의 외침이다. 그리고 너무 당연하게도,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의 실제 모델인 2천 3백만 북한주민 모두의 절박한 외침이다. crossing은 제일 큰 위험에 처해 있지만,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는 북한 주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대신 외쳐주었다.

잘못 했습니다, 잘못 했습니다!

영화를 본 후 주변사람들을 통해 여론조사(?)를 해보니, 관객을 가장 많이 울리고 가슴 아프게 한 장면은 아마도 용수와 아들 준이의 전화통화 장면인 것 같다.

‘잘못 했습니다, 엄마를 지키지 못했어요,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요, 잘못 했습니다!’

부자(父子)가 이별한 지 몇 개월 만에 이루어진 대화에서 준이가 처음으로 한 말이다. 아픈 엄마를 자기가 잘 보살피지 못해서 돌아가셨다고, 아버지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잘못 했다고, 또 잘못 했다고, 준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아버지 용수는 그런 아들에게 ‘아니다, 아니다, 네가 잘못한 거 아니다’며 입술을 깨문다.

crossing은, 앞서 말했듯이 북한사회의 전반적 ‘잘못’과 ‘비정상’의 실상을 너무도 잘 그렸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잘못’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 그리고 해결점은 무엇인지 그려내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공짜로 나눠주는 결핵약이 북한에는 왜 없는지, 성경책을 숨기고 한국영화를 본 죄로 한밤중에 갑자기 끌려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구호물자로 북한으로 들어간 쌀이 버젓이 장마당에서 팔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노동단련대에서 강제노동과 질병으로 죽어가면서도 혁명과 수령을 위한 ‘10대 원칙’을 외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영화에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필자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못내 아쉬웠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이야? 그 잘난 수령님 때문이지!’ 지나가는 단역이라도, 이 정도 수준의 대사가 한마디 정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물론 짧은 한 편의 영화에 모든 것을 담기란 쉽지 않다. 흥행의 보장도 없고 민감한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이기에, 정치적인 내용을 담기란 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영화는 어린 준이의 입을 통해, 그것도 굳이 4~5번을 연거푸 반복해서 ‘잘못 했다’는 말을 하게 한다. 엄마의 죽음이 준이의 잘못이 아니란 걸, 당연히 모든 관객이 알고 있다.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그럼 대체 누구의 잘못이란 말이지?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저렇게 온갖 잘못으로 뒤덮인 북한이 바뀌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자문을 던졌기를 바랄 뿐이다.

단비와 꿀비

남한과 북한에 엇갈려 있는 용수와 아들 준이를 이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비’다. 준이는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벌려 비를 맞는다. 용수는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두고 온 가족과의 행복한 한 때를 떠올린다. 이 부자(父子)에게 있어 ‘비’는, 고단하고 힘겨운 삶의 가운데에서도 놓치지 않는 ‘마지막 남은 한 가닥 희망’인 것이다.

‘꿀비’는 북한 말이다. 우리 말의 ‘단비’와 같은 뜻이다. 필자는 글의 서두에서 crossing이 한국사회의 북한인권문제 대중화에 ‘가뭄의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crossing은 ‘한국 가뭄의 단비’ 역할로만 그쳐서는 안 되며, ‘북한 가뭄의 꿀비’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용수와 준이의 ‘엇갈림’으로 우울하게 끝난다. happy ending이 아니다. 이는 참혹한 북한의 실상이 아직 끝난 게 아니며 현재 진행형임을, 또 다른 용수와 준이가 있음을 의미한다. crossing은 시작에 불과하며, 앞으로도 이런 영화와 북한인권을 대중화할 문화 컨텐츠가 더욱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굶주림과 헐벗음, 질병과 폭력, 그리고 독재의 감시와 공포로부터 북한 주민들을 구하기 위한 실제적 방안도 논의되어야 한다. 이는 냉큼 왔다가 번개처럼 사라지는 소나기 같은 관심이 아닌,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영화는 곧 막을 내리겠지만, 많은 이들의 꾸준한 관심과 열정 속에 북한과 북한의 인권상황이 ‘crying with us’가 아닌 ‘smiling with us’가 되리라 확신하며 글을 마친다.

명지대 북한학과 4혁년 정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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