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국적 탈북자의 ‘인생유전’

’중국인 아버지와 북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어디에도 국적이 없는 탈북자.’

북한에서 30년 간 살다가 탈북했지만 무국적 불법체류자 신세로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돼 있는 한 탈북자의 사연이 소개돼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14일 북한인권시민연대는 “1992년 탈북해 2004년 입국한 김천일(44)씨가 국가정보원 조사과정에서 중국인으로 분류돼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화성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돼 있다”고 전했다.

북한인권시민연대에 따르면 김씨는 2005년 강제로 중국으로 추방됐지만 현지 공안은 김씨의 호구 및 국적기록이 없고 그의 아버지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며 다시 한국으로 돌려 보냈다. 김씨는 현재 탈북자도, 중국인도 아닌 상태로 외국인보호소에 갇혀 있는 셈이다.

김씨가 북한 공민에서 무국적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기까지 이야기는 그의 출생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인이었던 그의 부친(1990년 사망)은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로 만주지역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지원한 것이 인연이 돼 1945년 북한 당국의 초청을 받아 입국했다.

부친은 평양에 살면서 김씨의 모친과 결혼, 1966년 종파분자로 몰려 함경북도 경성군으로 추방되기 전까지 조선중앙방송위원회 번역원으로 근무했다.

김씨는 경성인민학교와 경성남자고등중학교, 청진시 종합기능공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까지 경성군 종합식료공장 보일러공으로 일했다.

애초 김씨는 북한 국적법에 따라 출생과 함께 북한 국적을 취득했지만 그가 만 17세가 되던 해 부친에 의해 ’화교’ 신분이 됐다.

경성군으로 추방당한 뒤 자녀의 안전을 걱정한 그의 부친이 김씨의 이름을 ’김화걸’로 개명하고 외국인체류증을 발급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씨가 부친의 사망 후 1992년 탈북했을 때 중국 어디에도 자신의 국적을 증명할 서류는 없었다.

1992년부터 2004년까지 20차례나 탈북자로 신고돼 북송 위기에 처했고, 수차례 베이징(北京) 한국대사관과 선양(瀋陽) 한국총영사관에 보호를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김씨는 2004년 10월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몽골을 거쳐 국내에 입국했지만 정부 관계자는 “평양에 있는 모친을 데리고 나오면 탈북자로 인정해주겠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주한 중국대사관에 확인 요청을 했지만 지금까지 국적 확인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평양에 거주하고 있는 김씨의 모친은 북한에 남은 가족의 안전을 걱정해 탈북할 의사가 없다며 1984년에 찍었던 가족 사진을 보내왔을 뿐이다.

김씨는 2005년 3월 화성 외국인보호소에 이송된 후 같은 해 8월 보호가 일시해제 됐지만 쉼터와 수도원 등을 전전하다 지난해 11월 다시 보호소에 수감됐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김씨가 탈북자로 인정돼 정착지원 혜택을 받는 것을 포기하고 한국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기만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김씨는 북한에서 출생하고 탈북 전까지 북한에서만 거주한 사실상 북한 주민”이라며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적지 않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무국적 탈북자를 위한) 법적.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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