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자 모녀 구출운동이 국민을 움직이고 있다






▲요코다 메구미(左)와 신숙자(右) 씨.
북한에 억류된 ‘통영의 딸’ 신숙자 모녀 구출운동이 전국민적 운동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숙자 씨는 독일 유학(서울대 졸) 중인 남편 오길남을 따라 1985년 북한에 입북했다. 그 실체를 알고 남편에게는 탈출을 권했지만 정작 본인은 두 딸과 함께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빈인간적인 삶을 강요당했다. 


신숙자 씨는 교수를 시켜주고 특별대우를 해준다는 윤이상의 꾐에 넘어간 남편을 따라 북한에 들어갔다가 나중에는 남편이 유학생 포섭 임무를 맡게 되자 “우리는 이렇게 되도 다른 사람까지 불행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남편에게 공작 중단을 단호히 요구한 여성이다. 또한 남편이라도 탈출하라고 등을 떠밀고 자신들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갈 정도로 반듯하고 희생적인 심성의 소유자다.


신숙자 모녀 구출운동은 북한인권단체인 세이지코리아가 처음 불을 지폈다. 이들이 신숙자 씨의 고향인 통영에서 개최한 북한 정치범수용소 전시회를 통해 신 씨 모녀가 수용소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통영의 딸’을 구하자는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통영 현대교회 방수열 목사를 중심으로 추진 중인 서명 운동은 이달 중순까지만 해도 참여 인원이 2만5천명 수준이었지만 며칠 사이에 7만 명을 돌파했다. 현재 서명운동에는 한국자유총연맹과 춘천기독교연맹 등이 적극 나서고 있으며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직접 서명하고 여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신숙자 모녀 구출 운동과 관련한 토론회를 개최한다. 장관식 국가인권위원회 사무관은 “신숙자 모녀 구출운동과 함께 정치범수용소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다음달 5일 토론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경남지역 한동대와 신숙자 씨가 다녔던 마산대학에서도 구출 서명운동이 전개되는 등 젊은 층의 참여도 가속화 되고 있다. 대학생들은 사이버 공간에 정치범수용소 체험관을 구축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22일 오길남 씨가 마산대를 방문한 자리에는 대학생들이 그의 주위를 에워싸고 신숙자와 혜원, 규원의 사진을 보며 구출을 다짐하기도 했다. 


신숙자 씨 모녀 구출운동이 이처럼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가장 큰 원인은 김정일 독재집단에 의해 죄 없는 세 여성의 삶이 짓밟힌 현실에 대한 보통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연민과 분노이다. 평범한 한 가족을 유인 납치하고 그들의 삶을 짓밟은 행위는 결코 용서 받지 못할 잔혹한 범죄행위라는 점에 국민들이 동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신숙자 씨 모녀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1990년대 후반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용소에서 10년 동안 생활하면서도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는 증거다. 그로부터 10년이 또 흘러 장담할 순 없지만 생존의 희망을 충분히 가져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구출운동은 명분과 당위가 아니라 실제 세 모녀의 목숨을 구하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들어 요코다 메구미 등 납치자 구출운동이 전국민적으로 전개된 바 있다. 중앙과 지방 정부, 의회와 각계각층이 메구미 송환운동에 참여했다. 그 결과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김정일을 만나 메구미 사망 사실을 전해 들었지만 일부 생존 납치자들은 직접 전용기를 통해 데려왔다.


납치자 문제 제기 이후 일본의 대북정책은 보다 분명해졌다. 이는 일본 사회가 북한 정권의 범죄적 속성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신숙자 씨 구출운동은 천안함, 연평도 사태에 이어 우리 국민들에게 북한 정권의 본질을 파악하고 엄정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만드는 또 하나의 기폭제가 될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