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잘리고도 감사했다”…북한 인권유린 충격

북한인권 실태 조사를 위해 방한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20일 연세대 새천년관 대강당에서 탈북자를 대상으로 북한인권 공개청문회를 개최했다.


이날 북한 14호 개천수용소 출신 신동혁 씨는 북한인권 실상에 대해 증언했다. 신 씨는 수용소에서 태어나 24년 동안 수용소에서 생활하다 2005년 탈북, 완전통제구역에서 탈출한 유일한 탈북자다. 


신 씨는 이날 증언에서 어머니와 형이 공개처형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어머니와 형의 수용소 탈출 계획을 엿듣고 이를 몰래 수용소 간수에게 알렸다”면서 이 때문에 자신과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1996년 12월 어머니와 형이 공개처형됐다며 읍소(泣訴)했다. 


신 씨는 가족을 밀고한 대가로 포상을 기대했지만, 수용소 간수들은 신 씨에게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고문을 가했다. 그는 “고문과정에서 뜨거운 불 위에 매달려 졌고 간수들은 그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꼬챙이로 배를 찔렀다”면서 “고문의 후유증으로 등에 심한 화상을 입었고 많은 흉터를 생겼다”고 증언했다.


가족의 탈출 계획 밀고로 고초를 겪은 신 씨는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이후 처형을 지켜보면서도 슬퍼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그는 그때의 상황들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 아직도 벗어나지 못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신 씨는 당시 수용소 간수들의 고문에 대해 “태어날 때부터 죄수였고, 늙어 죽을 때까지 죄수라는 신분이었다”면서 “간수가 시키는 일만 하고 때리면 맞았기 때문에 죄수여서 당할 것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형의 탈출 계획을 왜 간수에 말했느냐’는 질문에 “수용소에서 살 때 가족이란 개념을 몰랐다”면서 “엄마, 아빠 표현이 있어 불렀지 엄마, 아버지도 나와 같은 죄수였고,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고, 부모 자식 간의 감정도 느껴보지 못해 지금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회상했다.


신 씨는 수용소에서 태어나 11살때까지 어머니와 같이 생활했지만, 이후에는 간수들에 의해 격리됐다. 아버지 역시 12살까지는 따로 살았고, 드물게 보긴 했지만 자주 보지 못해 아버지에 대한 별 다른 감정을 갖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수용소 내에서 ‘좋다, 나쁘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면서 “자식으로 아버지에 대해 느껴본 적이 없고, 탈출 전날 만났지만, 아버지한테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탈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용소 내 식량 실태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신 씨는 숟가락 3, 4개 분량의 옥수수밥, 풀을 뜯어먹고, 땅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어먹는다고 말했다. 또한 쥐는 간수한테 보고해서 승인을 받아야 잡아먹을 수 있고, 옥수수와 소금에 저린 배추 반찬이 전부였다.


수용소 내에 가축도 있고, 농사도 짓지만 수인들은 먹을 수 없고, 만약 몰래 먹으면 총살한다는 규정이 있어 엄두도 내지 못한다. 때문에 항상 배고팠고, 간수한테 다른 수인들의 잘못을 신고해서 뺏어 먹을 생각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신 씨의 증언에 따르면 수용소 내에서 기물을 파손하면 규정에 따라 공개처형된다. 신 씨도 기물을 파손해 공개처형 위기에 놓였지만, 손가락 절단으로 무마됐다.


그는 “2003년 미싱(재봉틀)을 파손해 처형 당할 수 있는 상황에 처했는데, 다행히 공개 처형 안 당하고, 손가락 하나만 잘렸다”면서 “손목도 아니고 손가락을 자르라고 지시해서 간수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며 당시 상황을 토로했다. 


이번 북한인권 조사위원회의 공개청문회는 오는 24일까지 진행된다. 조사위원회는 이번 방한 결과 등을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를 내달 제24차 유엔인권이사회와 10월경 제68차 유엔총회에 중간 활동을 보고한다. 또한 2014년 3월 제25차 인권이사회에도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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