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현장 北 종합시장 둘러보니…

▲ 평양 낙랑구역 통일거리시장

7.1조치 이후 지난 5년간 북한에서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종합시장 운영의 활성화다.

북한 당국은 배급제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7.1조치를 단행했고, 이는 비배급 대상은 각자 알아서 살아가라는 의미다. 이 때문에 당국이 직접 나서서 통일거리시장을 확장하는 등 종합시장을 허용했다. 현재 북한에는 3백여개의 종합시장이 있으며, 평양에도 10여개가 된다.

물론 시장이 7.1조치 이후에 나타난 것은 아니다. 90년대 중반 식량난 시기 배급이 끊기면서 장마당이 산발적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각종 사회주의적 규제하에서 숨을 쉬지 못했다. 지금의 종합시장은 기존 장마당이 국가의 엄격한 통제에서 벗어나 법적으로 허가되었다는 데 차이가 있다.

외부에서는 7.1조치를 개혁개방 신호로 평가했다. 그러나 2002년 7월 26일자 조선신보는 “자본주의 국가들이 ‘시장경제도입의 징조’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사회주의에 대한 원리적인 이해도 없고,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적인 과정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도 없는 사람들의 변설”이라고 반박했다. 사회주의 과도단계에서 어쩔 수 없이 진행하지만, 사회가 안정되면 언제든지 폐쇄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배급제가 전면 복구할 수 없는 경제상황에서 한번 시장화의 길로 접어들면 시장이 다시 폐쇄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종합시장 상품유통과 분업화

현재 종합시장의 자금 유통규모와 상품의 거래물량을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다. 각자 알아서 상업활동을 진행하고 장마당 통제기관인 인민위원회 산하 시장관리위원회에 제대로 보고되지 않기 때문이다.

종합시장이 생긴 후 가장 두드러진 것은 시장 분업현상이다. 과거에는 한 사람이 철물, 전기제품, 집기, 가구 등 여러 항목을 다뤘다면 지금은 한가지씩 전문화 하고 있는 추세다. 즉 자기가 갖고 있는 물품을 팔아 필요한 것을 사다 쓰는 방식이다.

종합시장에서 판매되는 공산품은 중국산이 약 70%다. 일본 및 러시아산이 20%, 북한산이 10% 가량이다. 농토산물은 북한 자체에서 또는 중국산이 유통되고 있다. 북한에서 생산된 공업품은 주로 철물이나 학용품 등이다.

종합시장 규모는 시장경제 사회처럼 대형이 아니다. 서울의 가락시장이나 경동시장 규모에 비하면 많이 떨어진다. 상인들은 시장관리소에서 정해주는 자리에서 물건을 팔고 일정한 금액을 국가세금으로 낸다.

■ 쌀 장사, “혼자 벌어 4인 가족 먹여”=종합시장에서 가장 흥청대는 장소는 당연히 쌀 매대다. 쌀 장사로 4인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김순옥(가명)씨는 “쌀은 군대에서 몰래 빼내온 물량과 양정사업소, 농촌에서 넘겨 받는다. 시장가격보다 조금 싸게 받아 판다. 쌀 1kg에 천원씩 하는데, 거기서 30~50원씩만 남겨도 유통량이 많아 이윤이 괜찮다”고 말한다. 김씨는 “내 혼자 벌어 네 식구를 먹여 살린다”며 “하루라도 장마당에 안 나가면 뭔가 잃어버린 것 같다”며 시장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김씨가 쌀 장사로 소문나면서 쌀을 넘기려는 사람들이 찾아 온다고 한다.

한편 영세한 쌀장사들은 빈 배낭을 메고 농촌에 나가 쌀을 사들인다. 이때 ‘저울 꺾기’ ‘되박(쌀을 재는 그릇) 돌리기’ 등 갖은 묘술을 부린다. ‘저울 꺾기’는 쌀을 살 때 저울추를 조절해 한번 뜰 때마다 일정한 양만큼 떼는 방법이다. ‘되박 돌리기’는 두 개의 되박을 가지고 다니며 살 때 큰 되박으로 사고, 팔 때는 작은 되박으로 팔아 차익을 남기는 방법이다.

■ 북한판 ‘정육점’ 호황누려= 돼지고기 장사 역시 수입이 괜찮다. 청진에서 7년째 돼지를 잡아 팔아온 차신호(가명)씨는 “고기 1kg에 3,500원씩 한다. 아침에 한 마리 잡으면 저녁까지 거뜬하게 팔아버린다. 하루 수입이 2만원 가량 된다”고 말했다.

고기 장사들은 개인으로부터 한마리를 1kg당 1,500~1,800원에 통째로 산다. 그것을 잡으면 정육 50~60%가 된다. 물론 비육도를 정확히 타산하지 못하면 낭패를 보게 된다. 곡식을 먹인 돼지와 풀만 먹인 돼지의 비육도가 현저히 차이난다. 소는 국가소유이므로 판매가 금지된다.

차씨는 “일반 사람들은 못 먹어도 외화벌이 하는 사람들과 장사하는 사람들은 잘 사먹는다”고 말한다. 돼지고기 장사는 남한 정육점처럼 구청의 허가를 꼭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축 위생검역 시스템이 허슬한 점도 돼지고기 장사의 활성화를 부추기고 있다.

과거 북한당국은 개인이 돼지를 기르더라도 자의로 처분하지 못하게 통제했다. 그러나 식량난 때부터 돼지가 주민생계의 주요 밑천이 되면서 자유로이 처분하고 있다.

■ 시장통 ‘음식장사’, 밑천 없어도 가능 = 적은 밑천으로 시작할 수 있는 장사가 장마당 음식장사다. 온성군에서 국수장사를 했다는 탈북자 김순영(가명)씨는 “국수장사는 큰 밑천없이 몇 천원만 있어도 시작할 수 있다. 100원짜리 국수를 한 그릇 팔면 20원 가량 남는다. 강냉이 국수는 1kg에 300원 하는데, 그 1kg으로 5그릇을 만들 수 있다. 국수 1kg을 팔면 200원을 남길 수 있다. 하루 팔고 들어갈 때 식구가 먹을 식량과 다음날 팔 국수를 사가지고 들어간다”고 말했다.

시장통 음식장사들은 장작 곤로와 냄비까지 들고 나와 고기국을 즉석에서 끓여주기도 한다. 흔히 돼지머리, 족발, 고등어, 순두부탕 등이다.

■ 공산품 장사, 한번에 수십만원씩 움직여=돈이 있는 주민들은 공산품 장사를 한다. 한번에 수십만원에 달하는 물건을 움직인다. 상품은 중국화교나 ‘1차 달리기’(도매상)로부터 조달 받는다.

회령 시장에서 의류와 천을 전문 판매하는 김명자(가명)씨는 “중국 기성복과 천을 도소매 한다. 또 봉제사들이 천을 넘겨받아 옷을 가공하면 팔아 차익(마진)을 나눈다”고 말했다. 점퍼일 경우, 1벌당 400~500원씩 남기는 등 짭짤한 수입을 올린다. 철 따라 의류를 화교들에게 요구하면 그대로 날라온다. 잘 팔리는 의류는 재킷과 점퍼류이며 천류는 사아지, 모직 제품들이라고 한다.

▲ 통일거리 시장 가전제품 매대

■ 전기제품 장사 ‘큰손’으로 꼽혀=청진에서 컬러TV, 흑백TV, VCD, 녹화기, 녹음기 등을 장사하는 김철민(가명)씨는 그 일대의 갑부로 손꼽힌다. 그는 나진-선봉에서 나오는 일본산, 중국산 컬러 TV를 받아 함흥이나 기타 지역으로 도매로 넘긴다. 최근 붐이 일고 있는 노래방 반주기도 150만원~200만원에 판매한다고 한다.

전기제품은 단가가 높아 이윤도 많다. 이들은 VCD를 팔 때 남한 드라마를 담은 CD(알판)을 거래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국의 통제가 심해지면서 잘 아는 사람이라야 거래한다.

■ 자전거 장사, 일본제 수요 가장 높아=청진 수남구역 거주 장모씨는 지난 몇년 동안 일본 중고자전거 장사를 해서 큰 돈을 챙겼다. 일본을 들락거리는 무역선 ‘OO호’ 선장과 친척인 그는 달러를 직접 보내 1대당 30~50달러에 자전거를 사오게 한다. 그리고 부두에서 직접 중고자전거를 넘겨받아 시장에 넘긴다.

중고자전거는 쌍라이터(조명 두개)와 외라이터(조명 한 개)의 값이 틀리다. 또 체인을 씌운 통커버의 경우 안 씌운 것보다 값이 배로 비싸다. 장씨에 따르면 쌍라이터 중고차의 값은 약 100달러, 외라이터의 값은 50달러에 거래된다.

핵실험 이후 북한선박의 일본 입항이 금지되면서 최근에는 중국산 자전거가 인기다. 평양에 입주한 천진 디지털 자전거 공장에서 생산된 ‘모란봉’자전거가 시장을 선점했다. 자전거로 장사짐을 나르는 사람들은 자전거 짐틀이 든든한 중국산 28인치 형 자전거를 선호하고, 골동품, 금장사 등 ‘신사형 장사꾼’들은 간편하고 속도가 빠른 일본제 자전거를 선호한다.

▲ 통일거리 시장 약품 및 잡화 매대

■ 시장통 ‘종합약국’=종합시장 한 구석에는 어김없이 약장사가 차지한다. 북한은 제도상으로는 무상치료다. 하지만 의료시설과 약품의 절대부족으로 병원은 형식상 진찰만 무료로 해준다. 병원에서 진찰은 해주되, 약은 주지 않는다. 과거에는 진찰과 함께 처방약을 내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약을 얻으려면 시장에 나가야 한다. 시장에는 항생제, 소염제로부터 감기약에 이르기까지 다 갖춘 종합약국을 방불케 한다.

함흥 의사출신 약장사 김준애(가명)씨는 “장마당 약장사들은 과거 의사이었거나, 중국 연고자들이다. 나는 의사였기 때문에 약에 대해 잘 알아 설명도 해준다. 내 적성에 맞는 장사다”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병원에서 배급을 주지 않자, 병원에서 사직한 후 중국화교로부터 약을 팔아 보라는 제의를 받고 지금까지 약을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 현재 함흥에서 소문난 약 장사로 꼽힌다. 그는 “내 이름이 소문나면서 수십 리 떨어진 농촌에서 환자들이 찾아와 약을 지어간다”고 말했다.

약품은 중국, 러시아에서 들여오며 유엔약품들도 나온다. 2004년 3월 용천폭발사고 이후 국제사회에서 지원된 마취제와 항생제, 주사기가 청진, 함흥시장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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