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주목받는 北의 ‘핵포기’ 주장

“북한의 궁극적인 핵포기를 위한 중요한 교두보가 마련될 수 있도록 각국과 협의를 진행하도록 하겠다.”

9개월여만에 재개되는 북핵 6자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8일 출국한 김 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번 회담의 중요 의제로 제시된 비핵화 3단계 협상을 개시하는 문제를 언급하면서 ‘핵포기’라는 말을 사용했다.

흔히 비핵화 3단계는 ‘핵폐기’라는 용어로 표현됐지만 김 본부장은 거듭된 질문 속에서도 ‘핵포기’라고 강조했다.

이 말은 2005년 9월 제4차 6자회담에서 오랜 협상 끝에 어렵게 합의한 9.19 공동성명에 규정된 표현이다. 당시 제1장에 규정된 내용에는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할 것’이라고 돼있다.

김 본부장이 ‘핵포기’라는 언급을 통해 9.19 공동성명의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해 준 셈이다.

회담 소식통에 의하면 성명 채택 당시 북한은 ‘폐기(dismantle)’라는 단어 대신 ‘포기(abandon)’라고 표기할 것을 강력히 주장해 관철했다. 포기라고 할 때는 자발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도 9.19 공동성명 채택 직후 미국의 평화연구소(USIP)에서 열린 한 강연회에 참석, “한국말로 포기라는 단어에는 자발성이 포함돼 있으며 북한이 이 표현을 선호했다”고 전한 바 있다.

문제는 북한이 이 말을 왜 강력히 선호했느냐다. 당시만 해도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 전이어서 북한의 의도를 헤아리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9.19 공동성명 채택 이후 1년여가 지난 2006년 10월,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해 자신들이 그토록 주창하던 ‘핵보유국’임을 선언했다.

결과적으로 ‘포기’라는 표현은 핵보유국으로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자기 스스로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버릴 수 있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맥락에서 더 주목되는 부분은 ‘핵보유국인 우리도 핵을 버렸으니 다른 보유국도 이에 상응하는 행위를 하라’고 나올 경우다.

특히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4일 담화에서 “원래 9.19공동성명에 따르는 전(全) 조선반도 비핵화는 검증을 전제로 하고 있고, 따라서 미국을 비롯한 모든 참가국들의 의무이행은 예외없이 검증을 받게 되어있다”고 밝혔다.

핵 신고서 내용 검증을 위해 북한에 대한 ‘확실하고도 완전한 검증 메커니즘’을 구축할 경우 북한 뿐 아니라 한반도의 비핵화를 확인하기 위해 한반도 남쪽(한국)에 대한 사찰도 함께 실시하자고 주장하기 위한 논리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북한이 9.19공동성명에서 ‘포기’라는 단어에 왜 집착했는 지를 이해할 수 있고 동시에 비핵화 3단계 협상에서 북한과 치열한 논리싸움이 전개될 것임을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정부 소식통들은 이에 대해 “북한의 논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6자회담 차원에서 함께 논의되고 확정되는 논리”라면서 “폐기냐, 포기냐의 단어에 매달리기 보다 북한의 핵시설, 핵무기, 핵물질을 완전하게 제거하는 작업을 실질적으로 유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포기’라는 자발성을 강조하면서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끝까지 고집하고 새로운 요구조건을 제시할 경우 6자회담은 ‘검증 단계’를 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특히 ‘핵보유국’ 행세를 할 북한이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핵보유국과의 ‘대응한 협상’을 요구하고 나설 경우 비핵보유국인 한국이 자칫 협상에서 소외될 가능성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오고 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