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체제에 저항한 ‘러시아의 양심’ 솔제니친 타계

“중공과 북한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공산정권의 지도층에 가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하며, 그 가운데는 자신의 조국과 인간성까지도 부정해야 하는 것이 포함된다.”(‘치명적인 위험’ 中(알렉산드르 솔제니친))

구(舊) 소련 굴락(gulag, 강제노동수용소) 시스템의 공포를 기록한 책들을 펴내 ‘러시아의 양심’으로 추앙받아 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향년 8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인테르팍스 통신 등 외신들은 아들 스테판 솔제니친의 말을 인용 “3일 밤 11시 30분쯤 솔제니친이 심장마비로 숨졌다”며 타계 소식을 전했다.

솔제니친은 지난 1962년 데뷔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수용소 생활을 바탕으로 스탈린시대 강제노동수용소의 실태를 간결하고 진솔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고,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당국의 탄압 속에 ‘제 1원’과 ‘암병동’ 등 주요 작품들을 서방세계에 잇따라 내놓으면서 1970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3년 출간된 그의 대표작 ‘수용소 군도’로 반역죄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은 뒤 망명길로 올랐으며, 20년이 지난 1994년에야 다시 고국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수용소 군도’의 배경이 되는 1918년에서 1956년은,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의 사회 정치적 격변기였다. 솔제니친은 이 문제작에서 혁명 직후인 1918년부터 스탈린 격하운동이 한창이던 1956년까지의 반세기에 걸친 피의 숙청과 공포의 테러정치를 고발했다.

“인육도살기의 손잡이를 돌린 자들은 1937년이라 해도 이젠 모두 50세에서 80세까지 늙어버렸다. 그들은 자기의 청춘시절을 유복하게 배부르게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공평한 보복을 가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어버렸고 또 그들에게 그것을 보상받는다는 것도 이젠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관대한 태도를 보이도록 노력하자. 우리는 그들을 총살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들에게 소금물을 먹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빈대를 살포하지도 않고, 제비 고문을 시키지도 않고 1주일씩 잠 못 자게 세워두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장화로 걷어차지도 않고, 고무방망이로 때리지도 않고, 또 쇠고리로 뇌를 압착하지도 않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자도록 짐짝처럼 감방에 쓸어넣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했던 그 어떠한 고문도 우리는 바라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 조국과 우리 자식들 앞에 모든 죄인을 찾아내서 그들 모두를 재판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재판하기보다도,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재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그들 각자가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렇습니다. 나는 사형집행인이었고 살인자였습니다.’”(‘수용소 군도’ 中)

솔제니친은 1998년에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80회 생일을 맞은 자신에게 러시아 최고권위의 ‘성 안드레이 피르보조반니사도’ 훈장을 수여하겠다고 발표했으나 러시아를 파국으로 이끈 정권이 주는 상은 받지 않겠다며 거부하기도 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빈부격차 등 각종 사회적 문제들에 시달리는 러시아의 현 상황은 황제(차르) 체제를 무너뜨린 1917년 볼셰비키 공산혁명의 전야와 유사하다”며 최근까지도 비판을 가해왔다.

사망소식을 접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그의 가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했다고 전했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4일 애도 성명을 내고 “고인은 20세기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양심이었다”고 추모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들도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수전 손탁 등의 말을 인용해 솔제니친의 생애와 그가 러시아에 끼친 영향 등에 대해 상세히 보도하면서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한편, 2006년 발간에 들어간 그의 작품 전집은 오는 2010년 완결될 예정이었지만, 끝내 이를 지켜보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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