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참배 계기로 4·19 역사적 화해 시작돼야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 박사가 4·19묘역에 사죄참배를 갔다. 불발되었지만 참으로 기쁜 일이다. 이 원망을 푸는 데는 좀 더 큰 정성이 필요한 것임을 확인했지만 이는 새로운 갈등이 아니라 화해의 시작임을 소망한다.


이제 역사의 화해를 이룰 때가 됐다. 아니, 조금 늦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국부(國父)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세우기 위해 우리는 좀 더 마음을 쓰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3년 전 이 맘 때가 생각난다. 필리핀에 갔었는데 그곳에서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와 헤어지며 기념으로 돈을 주고 받았다. 역시 화폐에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내가 건넨 1000원짜리엔 퇴계선생이 근엄한 모습으로 있었고, 친구가 건넨 화폐에는 필리핀 독립과 건국의 영웅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가 퇴계선생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다. 복장이 특이해서 그랬던 것이리라. 부족한 영어를 엮어가며 조선시대의 학자라 설명했다. 그러자 그는 참으로 진지하게 물었다. “당신 나라 화폐에는 왜 봉건시대 사람들만 있는가? 건국의 영웅들이 없는가?”하고 말이다.



그는 또 물었다. “한국은 모든 개도국들이 부러워하고 찬탄하는 나라다. 피식민지 독립국들은 한국을 보며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그런데 그런 나라를 세운 건국의 영웅들을 왜 한국인들은 기념하지 않는가?”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부끄러웠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대한민국 건국의 영웅들! 광야에 대한민국의 씨앗을 처음 뿌린 이들은 개화파였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들이 목 놓아 부를 날을 고대하며 그들은 근대국가를 모색했다. 그들의 뜻은 독립협회의 청년 이승만에게로 이어졌다. 왕정을 폐하고 공화국을 꿈꾸던 청년 이승만은 체포되어 죽음 앞에 서기도 했다. 일제 병탄을 막기 위해 미국행을 했던 청년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통령이 되었다.


미국 시민권을 거부하고 일심으로 독립을 꿈꾸던 이승만은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되며 늙어갔다. 한 치 앞도 제대로 예측할 수 없었던 해방정국에서 건국에 이르는 과정은 이승만의 분투를 제외하고 설명할 수 없다. 그에게 분단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정확히 배치된다. 구 소련의 외교문서는 소련과 김일성이 이미 1945년 9월 말부터 북한에 사회주의혁명 정부를 추진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에게는 동서고금 모든 건국자들에게서 확인되듯이 공과 과가 있다. 마오쩌둥의 공은 현재의 중국을 건국한 것에 있을 것이다. 그는 대약진운동과 문혁으로 인해 수천만을 죽게 하고 중국의 문화를 20년 정도 후퇴시킨 과오를 범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마오의 공은 70이요, 과는 30이라 하며 그를 확고한 건국자로 아로새겼다. 건국의 입장에서 마오쩌둥과 비교하면 이승만의 공은 작지 않고 과오는 참으로 크지 않다.



해방정국. 자유민주주의자들이 꿈꾸었던 근대국가와 사회주의자들이 열망했던 근대국가가 격렬하게 충돌했다. 그것은 당시로서는 옳고 그름을 확고하게 가릴 수 없는 것이었다. 선각자들의 역사적 비전에 의지할 수밖에 없던 일이다. 이제 그 결과 앞에 남과 북의 사람들은 서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이 한반도에 전개될지 구체적으로 가늠할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의 성취가 확고한 기반이 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이제 불확실한 미래를 힘을 모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국민통합은 필요하며 그 첫걸음으로 역사의 화해는 불가피하다. 4·19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또 하나의 쾌거다. 그들이 이인수 박사의 사죄를 받아들이고 이승만의 역사적 공을 평가하는 것은 화해로 가는 첩경이 될 것이다. 이인수 박사의 노력과 4·19 단체의 역사적 도량을 축원한다.


※ 청년지식인 포럼 Story K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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