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시한 올 연말 가능성”

찰스 프리처드 전 미 대북 특사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의 시한이 올 연말이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하고 6자 회담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6자틀내에서의 미국과 북한간 양자 대화가 보강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부시 1기 행정부 초기 대북 특사로 6자회담 협상에 직접 참여했던 프리처드 전 특사는 유엔군축연구소(UNIDIR)의 계간지 최신호 기고문에서 6자 회담의 막전 막후와 전망을 조명했다.

◇ 북핵 시한= 일시 중단된 대북 경수로 사업의 연장 시한인 오는 12월까지 북핵 6자회담에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미국은 경수로 사업과 그 기반인 제네바 합의의 종료를 공식화하고 이것이 동시에 현 북핵 상황에 대한 미국의 시한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 6자회담이 재개되더라도 ‘대화를 위한 대화’가 돼 북한이 더 이상 참석을 않거나, 미국이 시한 설정을 요구함으로써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나마 진전 가능성은 6자 틀내에서 ‘진지하고 실질적인’ 양자대화 요소를 보강하는데 있다.

◇ 북미 양자대화=1990년대 이래 남ㆍ북간이든 북ㆍ미간이든 양자 대화는 결실이 있었던 반면 다자 대화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1996년 4자 회담 (한국, 북한, 미국, 중국)의 경우 북ㆍ미간을 비롯해 4자간 양자대화적 요소가 강했기 때문에 현 6자회담 보다 더 집중적이고 빈번하게 회담이 열렸으며, 그것이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나 조명록 차수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상호 교환방문을 가능케 했다.

또 1996년 9월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후 미국이 한국의 동의속에 대북 대화에 나서 3개월만에 북한이 한국에 공개 사과토록 하는 결실을 맺었다.

1998년의 금창리와 대포동 미사일 발사 사건 때도 북ㆍ미 양자대화를 통해 의혹 지역 사찰과 미사일 발사 유예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 6자회담 막전 막후= 북핵 다자회담 틀이 처음엔 ‘P5+5(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한국, 북한, 일본, 호주, 유럽연합)’안에서 시작돼 북ㆍ미ㆍ중간 3자회담을 거쳐 6자회담으로 낙착됐다.

북한의 양자회담 요구에 미국은 P5+5안을 마련, 2003년 1월22일 (프리처드 당시 특사를 시켜) 뉴욕 채널을 통해 평양에 전달했다.

북한은 3일 후 이를 일축했고, 이어 2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취임식 참석 차 중국을 경유하는 길에 한국과 미국, 북한, 일본, 중국 5자가 참석하는 회담을 주최하는 방안을 중국측에 타진했다.

즉답을 하지 않은 중국은 3월초 첸치천(錢其琛)의 방북 때 이를 북한에 제안했으나, 북한이 거부하자 즉석에서 3자회담안을 내놓았다.

이같은 줄다리기 끝에 4월 하순 베이징(北京)에서 3자회담을 개최한다는 데 4월초순에 합의했다.

중국은 특히 3자회담 성사를 위해 ‘약간의 외교적 술수’를 써서 북한에 대해선 미국과 직접 양자대화를 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고, 미국에 대해선 말 그대로 3자회담이지 북ㆍ미간 양자회담 포장용이 아니라고 확약했다.

중국은 또 북ㆍ미간 뉴욕 채널 때문에 “선의의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도록 3자회담 얘기는 자신들을 통해서만 북한에 전달할 것을 미국에 요구했으며, 미국으로선 바라던 바이므로 이를 받아들였다.

당초 미 국무부 한국 과장과 유엔 주재 북한 대표 차석 대사간 실무접촉 창구였던 뉴욕 채널은 미국의 대북 특사와 북한 대사 사이의 정부 차원 채널로 격상됐었으나 이를 계기로 다시 격하됐다.

3자회담이 열리자 북한측은 미국측에 양자 회담을 요청했으나 엄격한 지침을 받았던 미국 대표단이 거부하자 북한 대표단은 서둘러 회담을 끝내고 귀국했다.

그러나 중국이 3자회담을 되살리려 하자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참여도 주장했고, 러시아의 참여 요구도 즉각 수용했다.

미국은, 북한의 입장을 감안해 3자회담을 요구하는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3자회담에 이어 곧바로 6자회담을 연다는 조건으로 3자회담에 응할 것임을 시사했으나 이 무렵 파월 장관이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대표단이 다자틀 안에서 북한과 직접 접촉해도 좋다는 승인을 받았다.

이에 북한은 2003년 8월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곧바로 6자회담을 갖되 거기서 북ㆍ미 양자대화를 갖자는 새 제안을 우리가 했다”고 신호를 보냈다.

2004년 9월24일 북한 고위관계자를 만나 들은 얘기에 따르면 3차회담 때 미국 대표단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해체(CVID)’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을 보고 북한측은 미국의 새로운 접근 신호라고 해석했다.

이에 북한은 미국의 제안을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9월 4차회담 재개에도 합의했으나, 회담 후 미국측에서 CVID 용어가 다시 나오자 ‘9월 4차회담 개최 합의의 기반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노련한 협상가에 백악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신뢰를 받고 있는 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 미국측 대표에 ‘가물가물한 희망의 빛’을 본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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