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검증의 핵은 ‘시료채취’

“북.미간 검증합의에서 시료채취가 가능하게 된 의미를 간과해선 안 된다.”

북핵 현안에 정통한 한 외교소식통은 15일 미국 국무부가 지난 11일 발표한 핵 검증 합의의 핵심 내용은 시료채취(샘플링)였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 북한이 제출한 신고서 내용의 검증을 우선 실시하고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이나 미신고시설에 대한 검증을 순차적으로 하기로 했다는 점을 들어 미국의 ‘일방적 양보’라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실제 상황과 체감지수가 다른 지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 국부부는 앞서 북.미 협의에서 ‘샘플링과 실증적으로 규명해내는 과학적인 절차의 이용에 관해서 합의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시료채취를 어떻게 하고 이를 얼마나 첨단기술로 분석하느냐가 검증의 성패를 좌우할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 소식통은 “시료채취 장소에 따라 다소 달라지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미국의 기술수준은 첨단장비를 이용, 샘플을 채취해 분석하면 마치 나무의 나이테를 보듯 북한이 언제부터 몇차례에 걸쳐 재처리했으며 이를 통해 얼마나 많은 플루토늄을 추출했는지를 고스란히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른바 2차 위기의 핵심현안인 고농축우라늄(HEU) 문제도 장소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샘플채취의 다양한 기술을 통해 ‘진상파악’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 소식통은 “북한이 지난해 12월 미국에 넘긴 고강도 알루미늄관이나 지난 5월에 넘긴 1만8천쪽에 달하는 자료에서 HEU 흔적이 발견된 것처럼 북한의 영변 핵시설 주변에서 채취한 시료를 잘 분석하면 플루토늄뿐 아니라 HEU에 대한 정보도 파악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의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소장은 북핵 검증에서 플루토늄 생산 총량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군사시설이라며 접근을 거부하고 있는 핵폐기물 시설보다는 원자로에 대한 시료 채취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1992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원으로 북한 영변 핵시설에 대한 사찰 활동에 참여했었던 그는 이른바 미신고시설의 상징인 폐기물 저장소에 대한 접근도 꼭 필요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15년이라는 세월동안 북한이 이미 오래전에 핵폐기물을 다른 곳으로 옮겼거나 액체폐기물을 고체화하는 등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올브라이트 소장은 덧붙였다.

결국 앞으로 진행될 검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과거 핵활동을 추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서 시료채취를 할 수 있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북한은 미국 전문가들의 핵심시설에 대한 접근을 가급적 통제하려 할 수 있다. 또 시료채취의 경우 ‘미국의 위조가능성’을 들어 북한 밖으로 반출하는 것도 금지하려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런 제약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미국의 시료분석 기술이 첨단인지 여부가 향후 검증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1992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발견한 ‘플루토늄 추출량의 불일치’같은 중대한 사건이 이번 검증과정에서도 우연히 드러날 가능성이 있으며 그것이 2차 핵위기 발발 원인인 HEU 파문의 진상을 밝히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