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식량지원 문제 윤리인가 정치인가

북한 정권을 다루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들 중 하나는 그들이 말하는 것 중에 무엇이 진실인지를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WFP와 FAO 그리고 NGO의 컨소시엄으로 이루어진 북한 식량실태 평가단은 지난달 북한 식량 사정을 조사한 이후 올해 늦봄까지 북한은 심각한 식량부족을 겪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북한에서 활동 중인 NGO들도 이러한 상황을 전하고 있다.  


북한 정권이 곡물을 푸느냐 거두어 들이느냐에 따라 북한 시장에서 쌀 가격은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시간의 추이에 따라 변동한다. 하지만 중장기간 경향은 국제시장에서처럼 상향세를 보이고 있다. 각 세대들은 여전히 시장에 의존하고 있으며 국가배급체계가 여전히 맥을 못 추고 있는 이 즈음에 일반 가정은 더욱더 시장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가격은 더 상승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정반대의 증거들도 포착했다. 유럽의 한 NGO는 북한이 받고 있는 고통의 정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가 하면, 평양에서 나오는 보고 내용과 탈북자 채널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도 이와는 정반대라는 것이다.


한편, 남한 사람들은 지난해에 있었던 북한의 군사공격 이후 북한 정권에 대해 냉소적으로 되었다.


이러한 여러 조건이나 상황들을 다시 한번 더 살펴보는 것보다는 의미가 있지만, 식량지원에 대한 찬반 의견의 근거를 짚어보고 점검해보는 것이 더 유익할 것으로 본다. 이러한 행위는 우리들에게 위기에 처해있는 근본적인 윤리적 문제들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논쟁 1. “북한의 상황은 1990년대 중반상황보다 나쁘지 않다.” 이 논쟁은 이상하게 보인다. 당시에는 기아를 통해 전체인구의 3~5 퍼센트나 죽었다. 설령 식량사정이 당시의 고난의 행군 당시보다 나쁘지 않을지언정, 인도주의적 사회는 여전히 그들을 돕기를 원할 것이다.


더욱이 대량의 식량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물류 및 조달 문제가 항상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상황이 더 극적으로 악화되기를 기다린다면 이미 시기는 늦어버릴 것이다. 또한 기아로 인한 사망만이 심각한 것이 아니라, 영유아와 어린이들을 포함한 취약계층을 위한 장기적인 문제를 야기시킬 영양실조 문제도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논쟁 2. “북한정권을 강화시키기 때문에 식량원조를 하면 안 된다.” 이 주장은 상당이 논리적이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북한 정권은 여전히 북한 사람들의 목을 이미 조르고 있고 곧 붕괴할 것이라는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 북한 시민들에게 이미 지속적으로 식량부족 상황을 강제하고 있는 정권은 외부 식량지원의 보류로 더 약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지원식량이 다른 목적들 즉 군대를 위한 자원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선량한 시민을 구했다면 그것이 잘못된 것일까?


논쟁 3. “북한이 식량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은 북한사람들을 먹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2012년 김일성의 백주년 생일을 위해서 비축하기 위해서 이다.” 이 논쟁 또한 논리가 없다. 만약 북한정권이 현재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왜 내년도에 자비를 더 베풀기 위해서 현재 부족한 상황을 지속시키겠는가? 오히려 현재의 식량비축이 군량미의 재비축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그 점이 더 우려된다.


하지만 다시 말한다면, 우리 자신의 우선순위부터 물어봐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비교적 간단한 개혁을 착수함으로써 북한 사람들을 손쉽게 먹일 수 있는 북한정권에 의해서 모든 북한의 궁핍이 발생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권이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도덕적인 딜레마를 해설해주지는 못한다.


논쟁 4. “외국지원식량은 단지 엘리트층에게만 돌아갈 것이다.” 이 지점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북한에 있어서 식량문제는 엘리트의 문제가 아니다. 즉, 점점 더 불공평해지고 있는 사회 내에서의 가난한 사람이 직면한 문제인 것이다. 식량지원은 식량이 절실히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6백만 명 가량의 시민들을 위해 더 많은 배급량을 제공해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식량가격도 낮추어 줄 것 이다. 


논쟁 5. “적합한 모니터링이 있기 전까지는 식량지원을 해서는 안 된다.” 모니터링은 식량지원을 효과적으로 진행하는데 결정적이다. 그리고 지금은 식량지원 프로그램의 조건과 관련해 열심히 협상할 때이다. 북한에 충분한 스텝만 허용 된다면 효과적인 식량 프로그램을 진행할 기술이 있다. 새로운 전자 기술을 사용해 원자제의 이동을 추적하며, 배급카드를 발행하고, 배급을 모니터링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어떤 모니터링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만약 완벽한 시스템만을 협상에서 요구한다면 우리는 식량지원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완벽함은 선(善)함의 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식량지원 문제가 이렇게 어려운 이유는 근본적으로 도덕적인 딜레마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북한정권이 정말로 이 문제에 책임을 져야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식량지원은 단순히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인가? 식량지원이 전용되지 않을 것인가? 등등의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다 어려운 문제들이다. 하지만 누가 고통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나 잘못된 위험 등에 초점을 둔 근본적인 인도주의적인 문제라고 그들은 주장하지는 않는다.


식량지원에 대한 비평가들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다. 북한정권은 더 많이 비축하기 위해서 어려움을 과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위기에 처해있는 다른 나라들에서 더 요긴하게 사용될 수도 있는 귀한 자원들을 낭비한 것이다.


하지만 과거 북한 당국은 그들의 문제를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과대평가도 했다. 대량아사 이전에 그들은 한번도 비상벨을 울린 적이 없지 않는가. 만약 식량지원 비평가들이 잘못되었다면 그 대가를 치를 비용은 상당이 높을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해거드 교수의 주장에 대한 반박글을 보내주시면 검토 후 게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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