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시장화 주역은 ‘중간도매상’

최근 북한 식량 및 원 달러 환율이 급락세를 보임에 따라 북한 시장경제의 허리역할을 하고 있는 중간 도매상들의 움직임에 관심이 집중된다.


화폐개혁 이후 시장상황을 관망하며 신화폐의 연착륙을 기다려왔던 중간 도매상들은 지난 2월 종합시장이 다시 문을 열고, 외화사용 규제마저 완화됨에 따라 움직임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들이 보유하고 있던 식량이 대거 풀리면서 2월말 kg당 1300원 이상까지 고공비행하던 쌀 가격이 최근 600원 이하로 떨어졌다는 소식도 이어진다.


‘화폐개혁→시장통제→외화통제→가격상한제’ 등을 통해 ‘가격통제력’을 확보하려던 북한 당국의 계획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직면하며 물거품으로 끝나고 말았다. 현재 북한의 인민경제는 사실상 모든 것이 화폐개혁 이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북한에서 상업의 유통은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중앙의 계획과 통제속에 관리됐다. 내각 상업성은 국가계획위원회의 통제에 따라 전국 상업망에 대한 지휘체계를 갖고 있었다. 상업성의 지도 아래 중앙도매소를 설치했으며, 각 도마다 상업관리소와 지구도매소도 뒀다. 또 군마다 상업관리소를 설치하고 군과 리마다 상점들을 관리하는 피라미드 식 통제체계를 유지한 것이다.


북한의 상업망은 도매상업망과 소매상업망, 사회 급양망, 수매망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소매상업망은 북한상업망의 기본을 이루며 취급규모에 따라 상점과 매점·매대, 품종에 따라 전문상점과 종합상점으로 구분됐다.


그러나 90년대 대량아사 사태이후  ‘국가 공급’이 중단 되면서 북한의 국가 상업망은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만다. 이때 부터 주민들은 국가 상업망이 아닌 개인 유통망을 통해 식량과 생활 필수품을 조달하게 됐다.
 
북한의 개인유통망은 주로 중소형 공장 기업소에서 8.3제품으로 생산되어 종합시장으로 흘러나오는 소량의 소비품 뿐 아니라 무역거래를 통한 수입으로 종합시장에 흘러들어오는 외제품까지 모두 포괄하게 됐다.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소비제품을 생산하는 지방 공장들은 기업소들 간 물물거래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유통단계가 늘어나고 유통과정에 참여해 이익을 챙기는 중간도매상들의 숫자와 규모가 급팽창 했다. 


공장, 기업소들에서 필요한 용접봉이나 피대, 면사, 동선, 베아링, 심지어 볼트나 너트같은 작은 부속들까지 중간 도매상들을 거쳐 거래됐다. 용접봉 10㎏이 필요한 제지공장의 경우 학습장 20권을 주고 교환했으며, 비누와 바꾸는 경우 10장, 소주와 교환하는 경우 2~3리터와 바꾸는 식이었다. 이런 방법으로 거래된 소비품들은 시장 판매원의 손을 거쳐 최종 소비자인 주민들에게 판매되는 것이다.


지방산업공장들은 생산에 필요한 자재와 공장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생산 제품에 대한 공식적인 매매를 진행했다. 이는 7·1 조치 후 국가의 승인하에 종합시장에서 공장, 기업소들에 배정된 5%의 매대들을 통해 이뤄졌으며, 또 공장부산물, 즉 생필직장(신발공장에서 남는 원자재로 고무 지우개를 생산 하는 형태)이나 가내반 등을 통해 생산된 생필품들은 30%내에서 시장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됐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개인유통업자들은 ‘차판장사’로 불리는 대형도매상과 ‘달리기’로 통하는 소형도매상, 시장 매대상인들로 대표되는 소매상 등으로 분화되어 북한 전역의 주민들에게 외제 생필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북한에서 ‘큰 손’이라 불리는 중간도매상들은 외화벌이 기관의 무역거래를 통해 직접 상품을 받는 사람들로서 이들은 ‘달리기꾼’이나 수매상점들에 직접 물건을 넘겨준다. 큰 손들은 화교, 귀국자(재일교포), 외화벌이 기관 간부들의 가족들이 주를 이룬다.


또 다른 부류의 중간 도매상들은 당 행정 간부들이다. 이들은 명목상으로 종합시장에 나가 장사를 할 수 없으므로 퇴근 후 중간 도매를 통해 돈을 번다. 특히 이들은 공장기업소에서 국정가격에 물건을 받아다 시장가격에 넘기거나, 뇌물로 축적한 물품 등을 소매상에 팔면서 적지 않은 이득을 챙긴다.


도매상인들로부터 물건을 넘겨받은 ‘달리기꾼’들은 북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시장 매대 상인들에게 물건을 넘긴다. 지역간 시세차익을 이용해 이윤을 챙기는 이들은 도매상에게 넘겨받은 가격에 30~40%정도를 붙여서 소매상들에게 넘긴다.


함경북도 청진시와 평안북도 신의주시를 오가며 ‘달리기’ 장사를 했던 탈북자 김 모씨(2009년 입국)는 함경북도 청진 무역상들에게 천을 넘겨받아  평안남도 평성에 내다 팔고, 그 돈으로 물건을 사서 다시 신의주에 와서 팔았다. 그는 다시 신의주-평성-청진 길을 지나며 물건을 사고 팔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18세기 조선시대 보부상인 셈이다.


김씨는 “보통 열차를 이용해 움직이면 30~40%의 이윤이 남지만 갖가지 명목으로 보안원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나면 실제 이익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청진에서 천을 넘겨받을 때 1미터 당 500~550원(구화폐) 정도 넘겨 받는데, 이를 평성 종합시장 소매상인들에게 팔때는 800원정도 받았다고 한다. 미터당 300원이 남는다면 이중 절반은 여행증명서 발급 과정이나 열차 이동 과정에서 기요원, 철도보위대, 열차검열원 등에 주는 뇌물로 쓴다. 여기에 숙식비로 지출되는 돈이 있으니 최종 이익은 미터당 100원 미만이라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평안북도에서 함경북도쪽으로 움직이는 달리기꾼들은 대체로 국경이나 나진-선봉을 통해 무역상들이 들여오는 천이나 신발등을 유통시킨다. 달리기꾼 한 사람이 보통 150~200㎏정도 갖고 다닌다. 열차 이동중에는 1인당 배낭 1~2개 정도만 운반 가능한데, 너무 많은 짐을 갖고 다니면 단속의 표적이 될 수 있고, 뇌물로 바쳐야 할 액수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달리기꾼들의 운행으로 움직여진 물품들은 시장의 소매상들에게 넘겨진다. 소매상들은 넘겨 받은 가격에 20~30% 정도를 더 붙여 주민들에게 판다. 결국 김 씨가 운반했던 천은 최종소비자에게 1미터당 1000원에 팔린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이 이번 화폐개혁을 통해 척결하고 싶었던 존재들은 바로 이런 중간 도매상들이 아니었나 싶다. 1차 생산지야 배급과 임금만 잘 주면 국가통제가 회복되고, 소매장사 꾼들이야 종합시장 문만 걸어 잠그면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중간 도매상들의 끈질긴 생존력과 왕성한 활동력은 불가항력에 가깝다. 중하급 간부들이 철저히 그들과 결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100:1 화폐교환’ ‘교환한도 10만원 제한’ ‘외화 사용금지’ 등 북한 당국의 융단 폭격에 살아남은 중간 도매상들이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시장을 무대로 북한 당국과 중간 도매상들이 2라운드를 시작할 모양새다. 한층 더 강력한 내성을 갖게 된 중간 도매상들이 북한 당국의 통제에 어떻게 대응할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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