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선교는 북한 사람이 해야”

“북한 선교는 북한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세기 동안 이질적인 문화에서 살았기 때문에 북한 사람에게 복음을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북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탈북자 선교사들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최광(열방빛 선교회 대표·50) 목사가 1998-2001년 중국에서 탈북자를 대상으로 사역활동을 펼쳤던 경험을 ’내래, 죽어도 좋습네다’(생명의말씀사 펴냄)라는 책으로 엮어냈다.

최 목사는 2001년 6월 중국 공안에 체포돼 추방될 때까지 3년간 지린(吉林), 지난(濟南), 시안(西安), 충칭(重慶) 등 여러 지역에서 350여 명의 탈북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선교활동을 펼쳤다.

이 가운데 250여 명은 예수를 믿게 되었고, 70여 명은 선교활동을 할 수 있는 ’일꾼’이 됐다.

“탈북자를 북한 선교사로 세운다는 것은 열이면 열 사람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엔 ’외계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북한 사람을 대했으니까요. 탈북자들과 3년간 합숙하면서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우리의 핏줄인 것을 확인했습니다. 남한 사람을 ’뿔 달린 도깨비’로 상상했다는 그들이 차츰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최 목사가 처음 중국에 갔던 1998년은 북한의 식량난으로 탈북자가 양산된 시기였다.

배고픔에 허덕이는 북한 동포들을 보면서 그는 “이 사람들을 도우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남은 생명을 바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이런 결심을 하면서 그는 한 학기만을 남겨놓은 신학대학원 공부를 중단했으며, 목사안수도 포기하고 탈북자 선교에 매달렸다.

부인과 네 명의 자녀, 노모까지 모두 중국에 살면서 김치와 된장을 담그는 등 탈북자들을 함께 섬겼다.

“중국 공안과 북한 보위부의 눈길을 피하느라 3년간 거처를 90여 곳이나 옮겨다니며 사역을 했습니다. 탈북자를 대개 13-15곳의 아파트에 분산해 합숙하도록 했는데 쫓기는 상황에 놓여 있는 탈북자들끼리 칼을 들이대고 싸우는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문제들을 수습하기 위해 매일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탈북자들의 숙소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탈북자의 80-90%는 배고픔 때문에 국경을 넘었지만 특수부대 출신,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등 정치적 사연 때문에 탈북한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책에는 탈북자 사역 때 겪은 다양한 일화가 ’북한 특수부대 출신 주광호 선생’ ’북조선에 예수의 피를 뿌립시다’ ’감옥에서 살아 돌아온 소광 선생’ 등 소제목을 달고 생생하게 소개돼 있다.

“2001년 추방된 뒤 비자를 받지 못해 다시 중국에 가지 못했습니다. 제가 추방될 당시 체포돼 북송된 탈북자 가운데 일부가 순교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는 간첩활동을 하지 않으면 기독교를 접한 탈북자를 엄하게 다스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려와 북한 당국이 기독교에 대해 약간 너그러워진 것 아닌가 생각도 해 봅니다.”

올해 9월에야 뒤늦게 목사안수를 받은 최 목사는 한국에 돌아온 이후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열방빛 교회를 세워 남한 내 탈북자들의 선교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그가 돌보는 탈북자 가운데 3명은 올해 신학대학원에 들어갔고, 몇 명은 신학대에 들어가 다가올 통일시대에 북한 선교의 큰 일꾼이 될 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핵 사태로 긴장국면이 지속돼 북한이 고립되면 1997-98년처럼 대규모 탈북 사태가 다시 생기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이런 상황이 정치적으로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선교사들은 탈북자들에게 더욱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복음을 전해야 할 것 입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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