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기자들의 운명, 어떻게 갈리는지 아십니까?

지난 2000년 8월 남한 언론사 사장단 방북 당시 남한에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하나 있다.

양강도 보위부 출신과 북한 선전매체 간부를 지낸 인사가 전해준 이야기인데,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자유롭게 취재하는 남한 기자들을 보면서 떠오른 사건이다.

당시 남한의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단장이 되어 방북한 남한의 언론사 사장단 일행이 김정일을 만난 후 백두산을 오르는 일정이 있었다.

남한 언론사 대표단이 양강도(행정구역상 백두산은 양강도 삼지연군 소재)에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표단 영접을 위해 양강일보 사장과 양강도 방송위원회 위원장이 마중 나갔다. 양강일보는 말하자면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의 ‘양강도 판(版)’이다. 노동당의 주요 기사가 실리고 양강도 관련 기사도 게재된다.

남한 언론사 대표단이 도착하기 며칠 전부터 양강일보와 방송위원회는 도당 선전부에 불려가 주의사항과 행동수칙을 학습했다.

그러나 양강일보 사장과 방송위원장은 삼지연 비행장에서 남한 대표단을 영접하긴 했지만, 함께 백두산에 오르지는 못했다. 이들과 남한 언론인들의 접촉을 최대한 막으려는 국가보위부의 방해 때문이었다.

양강일보 사장 등은 남한 대표단이 돌아가는 길에 삼지연 휴양각에서 열린 연회에 참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서로 기분 좋게 술기운이 오르자 양강일보 사장이 남한 언론사 사장들에게 물었다.

“선생님들, 우리가 서울에 가게 되어도 이렇게 환대해줄 수 있겠습니까?”

이에 남측 대표단은 “북한 대표단이 오신다면 크게 대접할 것”이라고 말하고 공식초청의 뜻까지 밝혔다.

그 순간 옆에서 음식을 나르던 남성 접대원이 지나가며 양강일보 사장의 잔등을 쿡 찔렀다. 그는 흠칫하며 얼굴을 들었다. 주변을 서성대던 보위부 요원의 날카로운 눈길이 얼굴에 날아들었다. 양강일보 사장은 단번에 술기운이 확 달아났다.

그러자, 옆에서 이 광경을 파악한 양강도 방송위원회 위원장이 재치 있게 말을 받았다.

“우리가 서울에 가서 뭘하겠습니까? 그보다는 선생들이 안 좋은 시기에 백두산에 오신 것 같습니다. 백두산은 눈 덮인 2월(김정일의 생일이 있는 달을 의미)에 와 보셔야 합니다. 그래야 조선의 기상이 느껴지지요. 2월에 다시 백두산에 오십시오. 그때는 저희들이 지금보다 더 잘 대접하겠습니다.”

언론사 대표단은 겨울 백두산이 더 멋지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단이 돌아가자 다음날 바로 태풍이 몰아쳤다.

“건방지고 사상성이 없는 말을 지껄였다”는 이유로 양강일보 사장은 무려 한 달간 도당 선전부에 끌려 다니며 사상검토를 받았고, 끝내는 철직(해임)되었다.

양강일보 사장은 처음에 양강도 방송위원회 기자로 강등되었다가 한 달 반 만에 또다시 추락해 이름없는 공장 노동자로 쫓겨갔다. 양강일보 모든 기자들도 사상투쟁회의와 대논쟁(무대에 올려놓고 사상적 결함을 비판하는 회의)으로 밤을 새야 했다.

한편, 2월에 백두산에 오라고 말한 방송위원회 위원장은 “사태를 보기 좋게 역전시켰다. 장군님의 탄생일과 백두산을 잘 부각시켜 선전했다”는 칭찬을 들엇다. 그는 말 한마디로 국기훈장 2급을 받았다. 말 한마디의 차이로 운명이 하늘과 땅 차이로 갈린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남북정상회담에 투입된 북한 기자들의 운명도 이와 비슷하게 갈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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